“하고 싶지만, 왜 자꾸 하기 싫을까”

— ADHD와 자기결정성, 그리고 레베카 챔프의 통찰

by 지엔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 하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까 의욕이 안 나요.”
“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면, 갑자기 몸이 굳어요.”
“계획은 실컷 세워두고 정작 마음은 안 따라지는 나... 난 대체 뭐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힘이 빠져요.”


이 모순된 경험 속에는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스위치가 서로 엇갈린 상태가 숨어 있습니다.


ADHD는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다른 리듬으로 작동하는 마음이에요.


즉, ADHD의 어려움은 게으름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과 ‘해야 하는 마음’이 계속 부딪히는 데서 생깁니다.

뇌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움직일 이유를 잃은 상태인 거예요.


이 리듬의 어긋남을 설명해주는 심리학적 틀이
바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Deci & Ryan) 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국의 심리학자 레베카 챔프(Rebecca Champ) 가
이 이론을 ADHD의 실제 경험에 적용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실행기능의 결함’이라는 말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


ADHD의 어려움을 단순히 ‘집중력의 부족’이나 ‘계획의 실패’로만 해석하면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맥락이 사라집니다.

주의를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사실 ‘기술’이 아니라 관계적·정서적 에너지의 흐름이에요.


즉, 집중력은 감정이 안정될 때 피어나고,
계획은 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 때 지속됩니다.

그 흐름을 이어주는 힘이 바로 자기결정성(Self-Determination) 입니다.



레베카 챔프의 연구 ― ‘창조적 알아차림 이론(CAT)’


영국 허더즈필드대학의 심리학자 레베카 챔프(Rebecca Champ) 연구팀은
ADHD 성인 27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실제 ‘자기조절 경험’을 탐색했습니다.

그 결과, ADHD의 자기조절은 단순한 인지적 기술이 아니라
대인관계, 감정, 그리고 의미가 얽혀서 이루어진 과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연구팀은 이 과정을 “창조적 알아차림 이론(Creative Awareness Theory, CAT)” 으로 정리했고,
이를 자기결정성(SDT) 의 틀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즉, ADHD의 어려움은 ‘통제가 약한 뇌’가 아니라,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환경적 불균형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챔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ADHD의 자기조절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기 스스로와의 연결, 그리고 타인과의 연결에서 비롯된다.”


즉, 주의력·억제력·계획력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자율성과 감정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능력이라는 거죠.



자기결정성이란 무엇인가


자기결정성 이론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일 때

가장 지속적이고 건강한 동기를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즉, “외부의 통제”가 아니라 “내면의 자발성”에서 오는 행동이 진짜 동기라는 뜻이에요.

이때 충족되어야 하는 세 가지 기본 심리욕구가 있습니다.


자율성(Autonomy) — 내가 선택했다고 느끼는 감각

유능성(Competence) —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감각

관계성(Relatedness) — 나는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각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스스로를 조절하고 성장시킬 힘을 갖게 됩니다.


유능감, 자율성, 관계성 세 가지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모여질 때, ADHD의 자기결정성이 살아납니다.


ADHD와 ‘자율성의 회복’


ADHD의 뇌는 ‘해야 한다’는 외적 요구에 특히 민감합니다.

“해야 해”라는 문장은 뇌에게 통제 신호로 인식되어
도파민 회로를 차단시켜 버리죠.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내가 선택한 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운동해야지” → “몸을 깨워줄 거야.”

"설겆이해야지" → "싱크대만 딱 정리할거야."
“공부해야지” → “이걸 배우면 나중에 더 편해질 거야.”


이처럼 의무의 언어를 선택의 언어로 바꾸는 것
자율성을 회복시키는 첫 걸음이에요.

ADHD에게 필요한 건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는 구조’ 입니다.



유능감의 손상과 회복


ADHD는 반복된 실패 경험으로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라는 생각에 자주 빠집니다.


하지만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작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ADHD의 실행은 느린 게 아니라,
도파민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입니다.


한 번 몰입이 걸리면 누구보다 집중력이 강해요.

그래서 ADHD형 실행에는 ‘작은 성공 경험’을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5분짜리 행동, 즉각적인 피드백, 빠른 완료감.
이런 구조 속에서 ‘할 수 있다’는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유능감은 한 번의 완벽보다, 짧고 자주 반복되는 ‘작은 완성감’ 속에서 자라납니다.



관계성 — 함께할 때 살아나는 집중력


ADHD는 혼자일 때 동기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누군가와 함께할 때 놀라운 실행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건 단순한 의존이 아니라 관계 기반 동기(Related Motivation) 의 작동이에요.
‘함께하기’, ‘응원받기’, ‘피드백 나누기’ 같은 경험이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며 실행을 유지시킵니다.

“비판보다 ‘지금까지 한 걸 보여줘!’라는 말에 더 반응해요.”


ADHD의 자기조절은 통제가 아니라 연결에서 시작됩니다


ADHD의 자기조절은 고립 속에서 약해지고, 정서적 연결 속에서 활성화됩니다.
신뢰와 지지가 있을 때 뇌의 보상 회로가 열리며, 실행력이 자연스럽게 회복돼요.

혼자일 때는 주의가 흩어지지만, 함께할 때는 ‘관계의 리듬’이 집중을 이끌어줍니다.

“잘했어, 거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이 한마디가 뇌의 에너지를 다시 흐르게 합니다.


즉, ADHD의 실행은 ‘자기결정’만큼이나 ‘함께 결정된 동기’로부터 자라납니다.

ADHD 코칭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목표를 코치와 함께 설정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코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그 동기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방해가 아니라 신호


ADHD의 자기조절은 감정이 연료예요.
기분이 좋으면 행동이 일어나고,
성취는 다시 도파민을 생성해 동기를 강화합니다.

반대로, 비난과 압박은 그 회로를 닫아버립니다.


따라서 감정을 억제하기보다
“내 감정이 지금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정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으라는 내면의 안내판이에요.


결함이 아니라, 리듬의 차이로 보기


ADHD가 보여주는 여러 어려움 — 계획을 잊어버리거나, 감정이 흔들리거나, 시간감각이 뒤섞이는 순간들.

이 모든 것은 의지의 결함이 아니라,
내적 동기와 감정의 리듬이 어긋날 때 생기는 현상이에요.


레베카 챔프의 연구는 이 리듬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ADHD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연결이며,
조절은 억제가 아니라 자율성과 감정의 흐름 속에서 배워진다.”


ADHD는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다르게 작동하는 마음의 리듬을 이해하고 설계해가는 과정입니다.


멈춰버린 기능을 고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다시 살아나는 법을 배우는 것


나는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의 리듬을 다시 배우고 있는 사람이에요.





참고 및 인용

https://blog.naver.com/starmindlab/224068227100 [출처] � ADHD 에이디에이치디는 자기조절, 실행기능 결함이 아니라 자기결정이론의 문제예요 _CAT 통합모델로 보기|작성자 별마음심리상담센터

Champ, R. E., Adamou, M., & Tolchard, B. (2023). Seeking Connection, Autonomy, and Emotional Feedback: A Self-Determination Theory of Self-Regulation in ADHD.

Deci, E. L., & Ryan, R. M. (2017). Self-Determination Theory: Basic Psychological Needs in Motivation, Development, and Wellness.

Barkley, R. A. (2014).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 Handbook for Diagnosis and Trea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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