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조지아 여행 / 트빌리시 Kvarts coffee, 한인민박
10.27_2022
오늘은 잉잉이가 초상화 그려주는 카페를 가고 싶다고 해서 트루소 같이 갔던 한국인 동행들과 2시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트루소 동행 중 제일 막내였던 친구는 아침에 메스티아로 넘어가서 못 봄. 나 메스티아 데려가ㅜㅜ
<Ocafe Tbilisi> 크루아상+커피 큰 거 12라리
오전에 푹 잔다고 잤는데도 너무 피곤하고 힘이 쭉쭉 빠지고 약간 몸이 계속 안 좋은 느낌이었다. 걷기도 조금 힘들고 그냥 뭘 좀 먹고 싶어서 걷다가 보이는 카페에 냅다 들어가 봤다.. 왜인지 카페에서 연어 롤을 팔고 있었는데 너무 비싸서(36라린가.. 그랬음) 그냥 크루아상이랑 커피 큰 걸 먹었다.
초코 그냥 데코인 줄 알았는데 안에 초코로 가득 차있었고요.. 웃긴 건 힘들어서 멍 때리면서 커피 먹는데 계속 K-pop 나와서 저항 없이 한국 카페 마냥 넋 놓고 있다가 화장실 갈 때 '아차차 짐 가져가야지' 하면서 정신 차림. 이번에 조지아 여행하면서 (특히 트빌리시에선) 카페나 사람들 벨소리나 그냥 지나가는 애들이 듣는 거나 K-pop 정말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K-문화가 부흥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덕에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있었겠지.
커피를 먹어도 그다지 개운해지지 않는군요ㅜ 약속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서 트빌리시 MoMA(Museum of Morden Art)에 가봤다.
티켓은 10라리로 알고 갔는데 15라리로 가격이 올랐다. 10.27 기준으로 주라브 쩨레텔리(상설 전시)와 이탈리아 사진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맨 끝 층부터 관람을 하면 된다고 해서 3층에서부터 시작. 이런 동상도 중간중간 전시되어있음.
3층은 주라브 쩨리텔리 작가의 사진이 전시되어있다. 역시 유명해지면 그냥 일상 사진도 작품이 되는군요.
2층이 주라브 쩨리텔리 작품이 있는 메인 공간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이 낙서 같은 작품 제 취향이네요. 진짜 달력 같은 거에 낙서해놓은 것도 전시되어있었는데 현대 미술의 재미있는 점이 그런 부분인 거 같다.
작가가 <광대>, <찰리 채플린>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이 그림들이 쩨리텔리 작품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아닐까 싶음. 광대&찰리 채플린이란 영감으로부터 먼 그림들도 좋았지만 확실히 뮤즈를 만난 뒤 작품들이 작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거 같았다.
<Waiting for guest> 시리즈도 반짝거리고 풍성한 포도알이 가득한 그림으로 작가의 섬세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현대 미술관"을 기대하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조지아 대표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조지아 여행을 하면서 종교 외 예술 작품을 볼만한 곳이 딱히 없다는 점,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 시간 나면 한 번쯤 와볼 만한 듯.
전시 보다가 방명록 있어서 한글로 남겼는데 어떤 친구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너 한국인이야?”이러면서 자기 지금 k-pop 듣고 있다고 하며 헤드셋 속 익숙한 멜로디를 들려줬다. (미술관 안에 방문객 자체가 나 말고 2~3명밖에 없었다ㅋㅋㅋ) 내년에 한국 여행 가려고 준비 중이라고 그래서 준비하면서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하라며 인스타 친구하고 헤어졌다. K-문화가 인기라는 걸 또 한 번 체감함. 케이팝 짱!
1층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은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정말 좋았는데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설명을 제대로 읽지 못함^_ㅜ
MoMA에서 Kvart Coffee까지는 지하도 하나만 건너면 돼서 열심히 뛰어갔다. 잉잉이는 아직 안 오고 삼촌이랑 오라비만 와 계셨는데 트빌리시에서 보니까 또 반가웠다. 카즈베기에서 만났을 때 둘 다 트빌리시에서 이발을 하겠다고 했는데 머리 너무 많이 자르신 거 아니냐며ㅋㅋㅋㅋ
잉잉이랑 나랑 둘 다 초상화를 그렸는데 머리 빼면 똑같은 거 아닌가요ㅋㅋㅋㅋ 그래도 그림 그려주는 친구가 레이시스트는 아닌 거 같았다..^^ 그리고 초상화나 캐리커쳐 이런 거 한 번도 안 그려봐서 그림 그려줄 때 앞에서 빤히 눈 마주치고 있는 게 참으로 쑥스러운 일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됨. 그림 그려주는 친구 눈이 정말 예뻐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잉잉이는 오늘 저녁 기차를 타고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일정이라 같이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잉잉이가 친구들한테 편지 쓰는 동안 카페 휴지에다가 짧게 잉잉쓰에게 편지 써줬음. 영어로 편지도 쓰고 많이 컸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쓴 편지지만 잉잉이랑 너무 재밌게 놀아서 곧 헤어져야 된단 사실이 안 믿겼다.
근데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너무 힘들고 더웠다(?) 카페 화장실이 고장 나서 숙소 화장실 (3분 거리임)에 갔는데 네..? 생리요..?ㅎ 생리통이었음. 모든 상황 납득 완료. 어쩐지 피부가 안 좋고 너무 과하게 피곤했음..
예정일이 아니었는데 피로가 쌓여서 일찍 하게 된 거 같았다^^ 계획에 없었지만 생리대를 샀는데 역시 한국보다 저렴했다. 2500원 정도에 중형 8갠가 10갠가 들어있음. 여행하면서 생리대 한국보다 비싼 곳 못 본 듯. 한국 생리대 왜 비싼 거죠..
하여간 이유를 알게 되니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납득돼서 나가서 좀 걷자고 했다. 오랜만에 트빌리시 거리를 걷는 건데 너무 익숙하고 불과 며칠 전 일인데 진짜 오랜만에 그리웠던 곳에 다시 온 기분이 들고 묘하게 슬프고 좋았다. 그땐 미국인 친구와 같이 걸었는데 그 친구는 아마 살면서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테고.. 트빌리시를 떠나면서 다른 도시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은근히 맘 졸였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헤어졌다. 여행 끝이 다가오니까 생각이 많아져서 여행이란 결국 이별인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다가 다리 위 노점에서 기념품이랑 액세서리 파는 걸 구경하게 됐다. 잉잉이랑도 오늘이면 헤어질 텐데 선물해주고 싶어서 고민하던 참이라 잉잉이가 보던 반지로 우정 반지를 하자고 했다. 1개당 8라린데 2개 해서 15라리에 해주심. 노점 아저씨한테 100라리짜리 밖에 없는데 괜찮냐고 하니까 지나가던 현지인(아는 사인지 아닌지 모르겠음ㅋㅋㅋ)한테 조지아어로 말하더니 돈을 바꾸셔서 잔돈 챙겨주시는 게 조지안스럽고 웃겼다. 잉잉이가 "나는 너한테 해줄 게 없는데"라고 해서 말레이시아 돌아가면 카메라로 찍은 사진 보내주라고 했는데 잉잉쓰는 거짓말쟁이였음ㅜ
와인샵 가보자고 해서 갔는데 시음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서 정말 구경만 했다. 그리고 이 거리 호객 장난 아니었다. 거의 모든 가게에서 나와서 "우리 노래방도 있고~ 조지안 푸드도 있고~" 이러면서 호객하는데 노래방이 고팠던 삼촌은 가라오케란 말에 분위기 확인까지 하고 오셨다ㅋㅋㅋ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노래방 분위기는 아니었고 가격도 한화 10만 원 정도랬다. 나는 한국 가니까 한국 가서 코노 만원 어치 질러야지..^^
잉잉이 자석도 사고 오라비들 환전도 하고 걷다가 잉잉이랑 헤어질 시간.. 잉잉이가 미리 숙소에서 편지를 써왔다. "우리가 같이 본 산 기억하지?" 이러면서 카즈베기 산봉우리 엽서에 써옴.. 저기요. 저를 울리시고 싶으신 건가요? 한국어로 내 이름이랑 자기 이름 찾아서 적어온 거 보고 여기서 읽으면 백퍼 눈물이다. 이건 평생 놀림감이다 싶어서 가방에 넣었다. 아무것도 없다면서요.. 거짓말쟁이ㅜ 말레이시아는 가까우니까 꼭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꼭 지킬 거임.
삼촌과 오라비께서는 한인 민박에 머물고 있었는데 난 일단 메스티아에서 만난 언니에게 한인민박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감사하게도 저녁에 삼겹살 같이 먹자고 해주셔서 까르푸에 들려서 와인 사갔음.
근데 언니가 왜 여기서 나와요…?
코룰디 같이 다녀온 언니이자 한인민박의 존재를 알려준 그 언니, 그리고 아침에 저 트빌리시 왔다고 연락드렸을 때까지만 해도 아르메니아에 계신다던 언니가 한인민박 들어가자마자 서 계셨다(???) 약간 꿈인 줄 알고 리액션 고장 나서 냅다 안아버림ㅋㅋㅋㅋㅋ 오후까지 아르메니아에 계시다가 내일 터키 넘어가시려고 딱 방금 트빌리시에 돌아오셨다고 했다. 정말 어떻게 만날 사람들은 다 만나는구나 하면서 언니 손 붙들고 한참 얘기했다.
트빌리시 한인 민박집 사장님은 고기계의 1등 굽러임.. 이 정도면 문화재 등록..? 뭐 이런 거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도 이만큼 맛있는 고기 먹기 힘든데 정말 맛있게 먹고 이야기하고 놀았다. 얘기하면서 놀다 보니 11시임ㅋㅋㅋㅋㅋ 생리통..? 까먹었어요.. 살짝 식은땀 흘려가면서도 꺄르륵거리면서 잘 놀았음.
늦은 김에 새벽 3시에 공항 가는 삼촌까지 배웅해주기로 하고 열심히 놀았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메스티아 마지막 날 밤에 버스터미널에서 만나서 잠깐 같이 술 마셨던 언니가 들어오심. 정말 만날 사람은 다 만난다.. 여행은 아주 재밌는 거야..
삼촌 가시는 거 배웅하고 언니들도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 인사하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이별을 너무 많이 해서 조금 슬펐다. 메스티아 떠날 때는 메스티아를 남겨두고 내가 떠나는 거라 진짜 울 거 같았는데 이런 이별은 나는 남아있는 쪽이니까 실감이 안 나서 슬픈 여운이 계속 남는다. 떠나는 쪽이든 보내는 쪽이든 이별은 역시 어려워..
그래도 메스티아에서 보고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언니들을 트빌리시에서 다시 만난 걸 보면 만날 인연은 약간의 노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만난단 말을 믿게 된다. 이별에 매번 서툴지만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다 보면 좀 더 능숙해질 수 있겠지? 내가 만났던 모든 인연들이 앞으로도 즐거운 여행을 이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