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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율 Jul 15. 2024

뒤집어지다

프롤로그 - 부럽다, 인생 2회 차

  어느 날, 어제와 비슷하게 흘러갈 것만 같던 나의 하루가 갑자기 뒤집어졌다. 

  2023년, 대한민국의 교사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다는 3월부터 이어지던 바쁜 일상 중에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아침 출근길에 받은 전화 한 통. 지방에 계신 아빠께서 새벽에 심정지로 쓰러지셨는데 구급차로 이송되셨다는 소식이었다. 휴대폰을 쥔 손이 덜덜 떨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여기저기에 연락하고, 내 직장인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이미 초등학교에 등교한 아이를 찾아서 지방으로 달려갔다. 제발, 아빠를 다시 볼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다행히 응급 처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진 덕분에 아빠는 가족 곁에 계실 수 있었다. 병을 발견하게 되어 이제는 치료와 관리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지만, 그래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무사히 돌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곁에 있는 사랑하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머리로만 알던 걸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큰 일은 지나갔으나,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뒤집어져버리던 순간이었다. '죽음'은 먼 곳에 있지 않았고 내 삶 가운데에 성큼 다가왔다. 2023년을 맞이하며 생각했던 내 목표나 계획, 인생의 가치관 전부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2023년의 늦가을날, 나는 한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남쪽으로 달려가는 기차 위에 있었다. 기차의 차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볕은 유난히 따뜻했다. 오후를 향해 달음질치는 졸음이 사람들 사이에 내려앉은 KTX의 좌석 위에서, 철학 문구를 보기 쉽게 모아놓은 책을 뒤적이다가 문득 깨달았다. 소크라테스가 남겼다고 하는 이 유명한 글귀를 보면서, 나에게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을.


  바쁜 일상과 현실에 안주하고 매몰되어 허덕이며 살아왔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집에서는 엄마와 아내, K-장녀로.

  사회에 나와서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분주했지만 결혼과 출산 후의 삶은 더욱 정신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살다 보면 하루하루는 쏜살같이 흐른다. 꼬물거리던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등하교 정도는 혼자 그럭저럭 할 수 있을 만큼 자라니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버티기만 하던 생활이 아주 조금씩은 나아졌다.

2023년 서이초 순직 선생님을 추모하는 리본 (사진 출처 : 인디스쿨 등 교사 카페)

  2023년의 여름은 유난히 슬프고도 우울했다. 교사라면 누구나 방학임에도 그 해 여름날에는 마음이 어지러웠으리라. 여름내 그토록 뜨거웠던 무더위 속에서도 더 달아오르며 어두운 학교 현실을 외쳤던 검은 점들의 간절한 외침과 나 또한 눈물로 공감했던 것을 기억한다.


  가을날에는 전국의 선생님들이 각자 고민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연대했던 9월의 하루가 특별했다. 2023년은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벚꽃이 피던 봄날과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까지도 이어지며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나에게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나도 충분히 고민해 보고 이제는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생에 리셋이 가능하다면. 

  요즘엔 웹툰이나 웹소설만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에서도 인생을 되돌려서 역전하는 이야기가 벌써 몇 년째 유행인 것 같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살아본다거나 불륜으로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 통쾌하게 갚아주면서 사랑과 성공까지 이루는 드라마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은 걸 보면, 인생 2회 차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인가 보다. 재미 삼아 읽던 웹소설의 독자로 살아온 지 벌써 이십 년도 넘은 내게는 이미 익숙한 주제인, 회․ 빙. 환. 즉, 회귀, 빙의, 환생이 장르를 불문하고 통속소설에 양념처럼 첨가된다.


  부럽다, 인생 2회 차. 누구나 인생을 다시 살아본다면 바꾸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거다. 소설과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인생 2회 차를 살면서 완벽한 성공을 거두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내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순간과 선택이 있다. 만약에 내가 대학 진학 때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대학 졸업 후에라도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교사로 살기엔 지쳤고 녹록하지 않다.

  

  내가 진심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생각’ 한 후에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숙고하고 결단을 내릴 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2023년의 내 삶에는 이미 여러 가지 신호가 나타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서 모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작게는 독감과 코로나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생사를 오가는 어려움에 처했던 가족도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어? 나 삼재인가 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재가 이어졌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족의 일을 겪고, 사회적 이슈가 된 교사에 대한 여러 사건들을 보며 나는 과연 ‘죽음’ 앞에서 내 인생도 이대로 괜찮은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한 시간과 더불어 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해 볼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돌연 휴직을 결심하고 실천했다. 인생 2회 차까지는 불가능해도 계속 굴러가기만 하던 바퀴를 잠시만 멈추어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학교를 떠나고 싶어졌다. 잠시일지, 영원일지 모르겠다.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데,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Blue, '우울'이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파랑새'처럼 '희망'과 '행복', 문학적으로는 물을 통해 대표되는 '생명'을 뜻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나만의 파랑새를 찾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파란(波瀾)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내 삶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와 함께 각자의 파랑새를 찾을 수 있길 기원한다.

                                                                                                          [내 길 위의 파랑새를 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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