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이 Aug 08. 2021

때론 이별이 아름답다

모카와 라떼 이야기

살다 보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생각이 모자라 미처 훗날의 결과를 예측 못하고 예측 못한 그 훗날은 현재가 되어 이미 벌어진 사태 앞에서 난감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일거다. 뜻하지 않던 일들이 일상에 들어왔다 사라지면 그 낯섦은 나를 한차례 변화시킨다.


코로나로 인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다. 작년 12월 어느 날 지루함을 견디다 못한 작은 아이가 또 작은 반란을 일으킬 태세로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 했다. 고양이를 데려온 지 한 달이 채 안 됐던 것 같은데 이젠 병아리라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작은 아이의 소망을 묵살해 버렸다. 한 번 무엇에 꽂히면 포기가 쉽지 않은 아이는 유정란을 사다 부화시킨다며 부화기를 사달라고 조르더니 결국은 유정란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부화에 실패한 건지 상심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엔 병아리를 사달란다.


아니 고양이와 병아리가 상생이 가능해?

아직은 작은 아기 고양이라 하지만 병아리보다는 나름 큰 덩치에 쫓고 무는 게 유전인 고양이 앞에서 벌벌 떨고 지내야 할 병아리 모습을 상상하자니 가엾기 그지없다.

근데 주책 같은 내 머릿속에 문득! 갑자기! 왜! 어릴 적 보았던 그림책이 떠올랐을까?

털실을 굴리는 새끼 고양이 옆에 병아리가 오도카니 서있던 모습이 왜 같이 놀고 있는 그림이라고 착각을 한 건지. 아마도 찰나의 순간 병아리를 키우고 싶었던 어릴 적 내 마음이 잠시 스쳐간 듯싶다.

"그래, 키우자."

냅따 허락을 했다. 하지만 그 허락의 속마음엔 병아리를 키우고 싶었던 어릴 적 순수함과 키웠던 병아리들이 끝내 큰 닭으로까지 간 적이 없었던 불순한 계산이 공존했다.


다른 건 시키면 귀머거리 행세를 하는 아이가 잽싸게 몇 분만에 검색을 하더니 병아리 파는 곳을 찾아냈다.

허락을 해놓고도 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병아리가 없어서 빈손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순수함이 빛바랜 어른의 마음이 불쑥 솟았다.

이런 나의 불순한 희망은 두 시간 만에 두 마리 새끼 오리를 데리고 나타난 아이에 의해 무참히 깨어져 버렸다.


"아니 병아리를 사 오랬더니 오리를 사 왔어?"

"병아리는 없대. 난 오리도 너무 좋아."

"그래. 엄마는 관여 안 할 테니 너네가 알아서 키우도록 해."

뭐 병아리나 오리나 매 한 가지인 동물이니 오래 살지는 않겠지 싶었다. 아파트에서 오리를 키운다는 건 새끼일 때나 가능하니 일주일쯤은 참아주겠다 싶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이 전혀 없는 아이들의 포부는 대단해서 두 마리 오리가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서 온 집안을 오리 천국으로 만드는 거였다.


매번 동물 이름 짓기에 제 멋대로인 작은 아이가 이번에도 오리 이름을 지었다. 모카와 라떼란다. 난 매번 아이가 지은 이름을 무시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길들여 지기 전까지는 고유 명사가 아닌 그냥 명사로 부르는 건조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그저 오리이고 아이들에게는 모카와 라떼인 이 둘은 내 예상을 깨고 정말 무럭무럭 자랐다. 새끼일 때는 상자 안에 종이를 깔고 키웠는데 금세 커버려 상자 밖으로 폴짝 뛰쳐나왔다.  아~ 감당이 안됐다. 왜 매번 반대 경우는 예측을 안 하고 즉흥적인 감정에 휩쓸려 일을 저질러놓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건지. 내 지나친 단순함은 종종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준다.


고민 끝에 베란다 두 곳 중 빨래를 널지 않는 베란다에 풀어놓고 기르기로 했다. 제 방 청소도 여러 번의 잔소리 끝에 겨우 하는 아이들이 희한하게 오리 똥은 날마다 치워줬다. 먹이도 어찌나 세심하게 챙겨주는지 잡곡, 채소, 벌레 등 영양 불균형이 안 생기게 골고루 챙겼다. 해가 질 무렵이면 아이들은 오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모카와 라떼는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엄마라 생각하는지 샛길로 안 새고 뒤뚱뒤뚱 잘도 따라다녔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서 마주치기 힘든 풍경에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고 한다. 아이들은 오리를 키우며 삭막한 코로나 환경 속에서 따스함을 전파했다.

좀 더 예쁜 모습을 많이 찍어두지 못해 미안하다



띵동!

모카와 라떼가 우리 가족이 된 지 세 달쯤 되었을까? 경비가 찾아왔다. 아랫집에서 그 집 베란다 위로 떨어지는 이물질 때문에 투서를 넣었다고 한다. 경비가 찍어온 사진을 보니 흩어져 있던 오리 모이가 밑에 집으로 떨어져 지저분한 모습이다.

사실 그동안 나도 참느라 힘들었다. 오리 때문에 베란다 문을 꽉 닫고 사느라 맞바람이 통해야 할 집은 늘 갑갑했고 문을 닫아도 집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오리 똥 냄새는 정말이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이젠 이웃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오리를 키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덩치가 커져버린 오리들에게 좀 더 쾌적하고 넓은 자연의 공간이 어울린다. 오리를 보내주자고 아이들을 설득했다.

아이들은 모카와 라떼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던 추억과 그래도 집오리라고 날마다 목욕시켜주고 청소하고 먹이를 주던 잔정들을 쉽게 떨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관계를 떼어버리는 것은 사실 지켜보는 사람도 쉽지는 않다.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를 하는 큰 아이는 집에서 기르던 오리를 방생하면 금방 죽는다고 걱정을 했다. 새끼 때부터 키우던 오리를 막상 보내려니 자생 능력이 없어 굶어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조언을 듣고 검색을 해서 모카와 라떼가 지낼만한 농장 한 곳을 찾아내었다. 전화를 걸어 키우던 오리를 받아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데려오라 했다.

집에서도 가깝고 작고 아담한 농장이라 때때로 찾아가서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카와 라떼를 차에 싣고 도착한 농장은 예상보다 쾌적하고 깔끔한 모습을 갖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동물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 다른 동물들에 치여 괴롭힘을 당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가 모카와 라떼의 안부를 살폈다. 작은 연못도 있고 상큼한 초록 들판에 어우러져 그 속에서 지내는 모습이 훨씬 때깔이 좋아 보였다. 그곳에 보내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고 또 들었다.

역시 자연의 섭리는 지켜야 한다. 다 제각각 살아야 하는 곳에서 살아야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

모카와 라떼가 새로 터를 잡은 농장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길




우리 가족은 모카와 라떼를 데려온 날부터 오리 고기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키우던 초창기에 아무 생각 없이 마트에서 훈제 오리 고기를 사 왔더니 아이들이 오리를 키우고 있는데 같은 종족을 어떻게 먹냐고 거부를 했다. 냉장고 안에서 몇 달 자리만 차지하다 유통 기간이 지나 버려졌다.


모카와 라떼는 농장으로 보내지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 가족의 일부였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나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깊은 의미로 남겨졌을 테지만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더 허전하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코로나가 더 기승을 부려 말레이시아의 락다운 단계가 더 강화되었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울타리에 갇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모카와 라떼가 우리와 한 공간에 살았던 시간들도 희미해져 간다. 오랜만에 사진을 들여다보니 녀석들이 그 농장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졌다. 농장의 출입이 자유로워지는 날 모카와 라떼의 안위를 확인하러 다녀오리라.


작가의 이전글 맥주 세 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