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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Mar 06. 2022

왜 결핍 투성이었던 그 시절이 그리울까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라떼적 시절이나 적용됐을 구닥다리 속담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1년이란 시간 안에서도 다이내믹한 변천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릴 적 친구들과 웃으며 나눴던 농담 속에서 "혹시나 미래에는 이런 게 생길지도 몰라." 했던 것들이 추측을 뛰어넘어 실제의 문명으로 만들어져 이젠 우리 곁에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친한 언니 한 명이 15년의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강남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그 언니는 편리해진 문명에 연신 감탄을 하며

"강남 버스 정류장은 의자가 따뜻해. 전기가 들어오나 봐."

"와~정말? 대단하네요. 역시 우리나라 최고예요. 근데 너무 과한 거 같아요. 뭘 그렇게까지. 그러니 한국인들 외국 나와서도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큰일 나는 줄 알죠."


이제 오 개월째 생활하고 있는 언니는 놀랍게 변한 문명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이젠 사람들의 정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아직도 상해에 있는 지인들한테 되도록 늦게 귀국하라 그런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받는다 싶으면 당장 게시판에 올려버려. 사람들이 너무 예민해. 생활의 질은 업그레이드됐으나 정서는 너무 메말랐어."


올 해로  해외 부동산 일을 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나의 주 고객들은 한국에서 막 파견되어 오는 주재원들이다.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해마다 새로 발령 나오는 주재원들을 통해서 한국의 문명이 나날이 어떻게 발전되는가를 느낀다.

첫 해 부동산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요청은 기본 가전 가구에 정수기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도어록 요청이 몇 건씩 들어오고 연수기 설치를 부탁하더니 점차 품목이 늘어나서 공기청정기, 오븐, 비데, 건조기, 식기 세척기, 안마의자 등 해마다 원하는 기본 품목이 늘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스타일러스라는 품목이 등장했다. 당연히 한국에서나 유행하는 스타일러스를 외국인들이 알리가 없다. 난 옷 냉장고라는 원초적인 표현으로 설명을 하지만 외국 집주인들은 이런 것까지 해줘야 하냐며 고개를 젓는다.  


난 여전히 한국을 떠나오기 전 그 자리에 대충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문명이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현실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사용하던 것들이 갖춰져야 외국 생활도 평탄하고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세월 따라 최고의 문명을 갖추고 살아가고 있는 들의 행복 지수는 최고점인가?

이들이 더 행복한 건 잘 모르겠다. 왠지 젊은 연령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따스한 정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이기심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아 문명이 이들에게 여유로운 행복까지 선사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행복 지수가 가장 높았던 때를 되새김해보면 우리 집에 소유한 것들이 가장 적을 때였다. 문명이라고는 흑백텔레비전이나 하루에 두세 번씩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는 버스가 전부였을 때 우린 가진 게 없이 참 가난했다. 도어 록은커녕 자물쇠도 없이 문고리를 걸고 숟가락 하나 꼽는 게 문단속의 전부였다. 사실 젊고 힘 좋은 장정 하나가 문을 세게 잡아당기면 훅 하고 열릴 창호지를 바른 나무 문 두쪽이 다였던 우리 집은 열고 들어와도 훔쳐갈 것도 없었을 거다. 그래도 방문을 열고 나가면 툇마루가 있어 그 위에 요강을 두고 밤에 깜깜한 푸세식 화장실로 볼 일을 보러 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마당 한켠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펌프는 얼마나 멋졌던가! 펌프 하나에 온 식구가 썼던 물을 의지 했다. 물 한 바가지를 퍼붓고 두 팔에 힘을 팍 주고 위아래로 정신없이 펌프질을 해대면 폭포수 같은 물이 쏟아져 나왔다.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굵은 물줄기는 펌프질하는 두 팔의 노동 따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저 물 한 바가지만 있으면 사시사철 우리에게 단맛이 나는 물을 한없이 제공해 주는 기특한 물건, 더불어 이것은 물세 부담이 전혀 없는 노동과 자연으로부터 제공받는 천혜의 수혜였다.


-그래요. 자연스러움을 혐오하고 인위적인 것들을 추종하는 세상이 됐어요. 우리처럼 물로 닦지 않고 화장지를 사용해야 문명 생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어디 정말로 그런가요. 강은 더 더러워졌고, 나무들은 더 없어졌지요."
그 옆의 남자도 한탄을 했다.
-그 결과 세상은 점점 위선적이 되어버렸어요. 명상적인 생활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요. 무엇으로든 가려야만 문명인이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도리밖에 없었다. 자연스러운 볼일을 보는데도 지팡이만 한 어린 나무에 몸을 가리려고 허둥대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배낭을 잃어버릴까 봐 잔뜩 끌어안고서.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나는 여행> 중에서


아주 어린 시절 아빠는 신문지나 종이를 가위로 늘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변소라고만 불리던 곳에 갖다 놓았고 글자를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변소에 쪼그리고 앉아 조각난 신문 기사의 글들을 읽었다. 그런 조각 기사들을 읽는 재미에 냄새나는 푸세식 변소에 오랫동안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푸세식 변소 대신 수세식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뻣뻣하던 신문지 대신 하얗고 보드라운 화장지가 대체되었다.

외국에 몇 년 살다 잠깐 들렀을 때였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였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친정집 화장실엔 비데가 놓여 있었다. 어느새 부모님은 비데 없는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며 한 달에 얼마씩 관리비를 지불해가며 필터 관리를 받는다.

화장실의 변천사가 문명의 변화대변해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행복이 뻣뻣한 신문지에서 비데로 옮겨졌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의 질은 높아진 것 같진 않다.


사실 예전과 비교하면 끝도 없이 변한 것들을 읊어댈 수 있다. 개수대는커녕 주방에 수도 설치도 안되어 있어서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빨간 대야에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엎어놓을 싱크대는커녕 좁다란 부뚜막 하나가 다였을 텐데 대가족이 먹을 음식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시골에 연탄이 들어오기 전엔 조그만 아궁이 앞에 앉아 풍로를 돌려대면 작은 불씨가 금세 마른 짚단에 붙어 나무 장작에 안착을 했다. 그 아궁이 하나가 한겨울 온 집 안 온기를 돌게 하고 따뜻하게 세수할 물을 만들어 주었고 구수한 누룽지를 먹여주었다. 

언젠가부터 부엌에 곤로가 보이기 시작했고 곤로 위에서 생선도 구워 먹을 수 있어지면서 밥상 위에선 고소한 기름 냄새도 피어 올랐다.


아주 어린 시절, 사방에서 여우가 튀어나올 것 같던 산골 깊숙이 살고 있던 이모네 집엔 전기도 없이 초롱불로 밤을 밝히고 있는 걸 보고 그래도 전기라도 있었던 우리 집이 참 대단하구나 생각했었다.

명절을 언저리가 되어야 뜨끈한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그때 모두가 똑같이 빨강 내복을 입고도 부끄럼이 없던, 그 시절이 살면서 가장 풍족한 문명을 누리는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난 때때로 우리 아이들이 최고 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론 결핍한 모습을 보면서

내 어릴 적 생활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발끝만큼도 못 따라갈 만큼 가진 게 없이 살았어도 마음은 풍족하여 이웃을 위하고 서로 나눔을 실천했던 그때의 모습을. 


얼마전 TV에서 전쟁의 피폐함 속에서 고단하게 지내고 있는 라오스 국민의 현재 삶을 보게 되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조막만 한 손으로 핸드폰 하나씩 쥐고 게임에만 몰두해 있는 라오스 아이들의 표정없는 얼굴이었다. 이 모습은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의 표상이 아닐까.


우린 문명이 발전하면 사람들의 행복 지수도 덩달아 올라가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최고의 문명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왜 난 자꾸 결핍 투성이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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