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드라마 속 레퍼토리.... 나도 모르게 이등시민 며느리가 되었다.
남편은 내가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말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 참 좋은 사람이야. 모두들 인정한다고..
넌 피해의식이 절었구나. 복 받은 줄 알아.”
우리 엄마가 너에게 시집살이시키지도 않는데 왜 그래.
나는 잠시 생각했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권리인가 보다.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니 정말 좋은 분인가?
잠시 어머님이 어떤 분인가 생각해 본다.
어머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다. 성격은 온유하고, 아들 사랑은 지극하다.
동네에서 칭찬을 받고, 사람들에게는 명랑하며, 좋은 어머니이자 현명한 아내로 살아오셨다.
그 좋으신 어머님은 주말이면 종종 2박 3일씩 우리 집에 머무신다.
우리가 주말마다 내려오면 힘들다고... 배려를 하시는 모양이다.
아버님 어머님 한 짐을 싸가지고 오셨다. 결혼했다고 아들이 보고픈 걸 못 보게 하는 막돼먹은 며느리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하시는 아버님과 함께....
어머님은 또 부지런하시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신다. 우리 집에 와서도 예외는 없다.
아직 어둑한 시간, 주방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불속에서 잠깐 숨을 고른다.
나가서 도와야 할지, 아니면 아들처럼 쿨쿨 계속 자도 되는지 생각하다 보면 내 머리는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운 머리로 나는 나가서 같이 일을 거드는 척을 하지만 정신은 혼미하다.
어머님은 나와 격 없이 지내고 싶어 하셨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 나에게는 따로 찬밥을 나눠 먹자고 하신다.
감동을 받아야 할까?
보통 편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텐데 넘버원 아들을 두고 나랑 그토록 격이 없이 지내고 싶으신지 몰랐다. 특별히 게장 양념이 맛있다며 밥을 비벼 먹으라고 먹다 남은 양념을 권하신다.
특별히 하사된 음식이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남편을 불러 함께 먹자고 한다.
그러면 어머님 표정은 좋지 않다. 그걸 왜 걔를 주느냐며 치워버리신다.
나는 왜 화가 나셨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날도 어머님은 친절하게도 나 대신 설거지를 하신다고 한다.
옆에 시아버님이 말씀하신다. " 너네 엄마 봐라 며느리한테 아주 잘해!
하하 호호 가족들 사이에 웃음꽃이 핀다.
왜 설거지를 어머님이 하면 내가 배려받는 구조인지 미숙한 나는 알지 못하여 같이 웃지는 못했다.
어머님은 나를 믿으시는 분이기도 하다. 남편이 몸이 좋지 않은 채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아이 때문에 휴직 중인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제 네가 가장이라고. 남편이 혼자 벌어 스트레스가 쌓였을 거라고.
여자도 남자랑 같이 일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참으로 진보적인 말이다.
뭐 평소에 월급 같은 직장이니 내가 가장해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아직 아이는 기저귀도 못 떼었다.... 평소에 어머니는 여자는 아이를 잘 챙겨야 한다고
그건 여자일이라고 했는데.... 내가 능력이 많다고 생각해 주시니 인정받은 느낌이다.
그런데 남자의 일은 그럼 무엇일까 생각은 해본다.
우리 어머니와 나의 남편은 참으로 사이가 좋다.
남편이 어머니를 믿는 만큼 어머님도 아들이 특별하시다.우리 아들은 너무 착하다고 한다.
어머니의 아들인 남편은 늘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 엄마는 진짜 부지런하다고.
아마도 뒷말은 나는 부지런하지 않다는 뜻인가 싶다. 왜 나를 본인의 엄마와 비교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우리 아빠와 남편을 잠시 비교하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내보내진 않았다.
아빠와 남편을 비교하다니 가당치도 않은 것 같다.
아빠가 자랑스러우면 내가 본받아 행하면 그뿐. 남편을 보고 닮으라는 소리는 안 될듯한데.....
생각의 차이를 설명해 보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혼 전 나는 방 청소 하나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이었고, 남편도 사과 하나 깎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사람들이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이상하다.
친정어머니도 내가 잘해야 한다 하고 많이 못 가르쳤다 한다.
시어머니도 나에게 무얼 계속 가르쳐 주시려고 한다.
나는 직장에서 10시간이 넘도로 야근이 잦은 사람이라
눈만 뜨면 회사가기도 바쁜 그 시절의 나에게 한두 시간 있는 집안일을 왜 이리 알려주시려 했을까.
어머님은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명랑하시다. 언제나 격 없이 다가오시고, 늘 옳은 말을 하신다.
다만 어리석은 나는 가르침의 대상이 언제나 내가 되는 이유는 알지 못하여
주위에 조언을 구 할 때면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한 여자가 사랑받는게 아니라 지혜로운 여자가 사랑받는 거야."
여우 같은 여자가 되라는 뜬금없는 소리도 듣는다.
결국 나 하나만 바뀌면 모두가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해지나 보다.
마치 내가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같아 우쭐해진다.
사랑 받기보다 존중이 필요한 나는 아예 발상이 발칙한 여자인가 보다.
나는 시댁이라는 국가에 사람들이 칭송하느 시어머니군주를 마주하고 있다.
사랑과 배려를 거부하고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고 발칙한 이등시민 며느리이다.
주제파악을 못하고 은혜를 배척하니 어찌 돌이 날아오지 않겠는가?
이해할 수 없으나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내가 대화라고 시작한 말은 싸움이 되고 그 싸움의 결론은 못돼 먹은 여자.
불평불만이 많은 어리석은 여자로 귀결된다.
오늘도 남편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어때서. 설거지하나를 네가 제대로 하기나 해."
문득 거울을 보니 싸움의 끝에 길길이 날뛰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와우! 이등시민 주제에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 그 모습은 참 우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