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깃털과 벌집의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이용 크레타 섬의 미로에서 탈출한 다이달로스 부자. 아버지는 아들인 이카로스에게 지나치게 높게도 낮게도 날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일단 날아오르자 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한 채 태양을 향해 솟구쳐 오릅니다. 태양 가까이 가자 날개를 붙인 밀랍이 태양열에 의해 녹기 시작하고 깃털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면서 이카로스도 바다로 추락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카로스 콤플렉스란 용어가 있습니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까불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이카로스를 닮은 인물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이카로스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날개로 남보다 수월하게 날아오릅니다. 일단 날아오르면 자신감이 생기며 이는 곧 오만으로 바뀌게 됩니다. 늘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자기중심적인(narcissistic) 사람이며 남의 충고는 이미 아는 이야기라며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이들은 지나치게 야심적(over-ambitious)이며 태양의 위치를 넘보는 이카로스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올라가려 합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강한 반발(backlash)을 초래하는 인물의 유형이며 이들의 끝은 이카로스처럼 대개 비극적입니다. 이카로스 신화는 우리에게 이카로스형 인간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이카루스 형 인간들은 끊임없이 출현합니다.
1592년에 태어난 이카로스 형 인물을 만나봅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말로우가 쓴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극』의 주인공 파우스투스 박사입니다. 평범한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비상한 두뇌를 갖고 태어난 파우스투스. 그는 뛰어난 머리로 독일 명문인 휘튼버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신학과 논리학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내가 제일 잘 나가는 학자라는 자부심과 오만한 성격 그리고 한계를 모르는 그의 야망은 그로 하여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 모든 비밀의 열쇠를 갖고자 합니다. 이카루스가 향한 태양이며 하나님의 위치입니다. 자신이 가진 날개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그곳. 그는 자신의 영혼을 넘기는 대가로 24년간 악마 메피스토펠리스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끝나고 야욕은 충족되지 못한 채 파우스투스 박사는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오만으로 똘똘 뭉친 그는 자신의 지식에 대한 넘치는 자부심으로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그의 한계를 넘는 곳까지 날아 올라갔으나
하늘은 그의 날개를 녹여 버려 그를 추락시켜 버렸죠. (서막, 10-28)
학문적 재능과 오만, 강한 자존심과 야망이 하나 되어 비극을 초래한 파우스투스 박사는 이카로스형 학자입니다.
맥베스 부부
1606년. 새로운 유형의 이카로스가 탄생합니다. 둘이 협력하여 정상까지 잠시 올라갔다 추락하는 이카로스형 커플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나오는 맥베스부부입니다. 남편은 스코틀랜드의 장군으로 던컨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입니다. 그는 타고난 불굴의 용맹과 지치지 않는 힘으로 노르웨이 침략군을 격퇴시켜 왕에게 승전보를 전합니다.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 도중 황야에서 만난 세 마녀로부터 왕이 될 거라는 예언을 들은 맥베스. 그에게 최고 권력자의 자리는 이카로스가 날아서 가고자 한 태양이며 포스터스 박사가 원했던 세상 모든 비밀의 열쇠입니다. 왕이 될 생각을 하니 자신이 앉을 왕좌와 군주의 봉이 벌써 눈앞에 어른거려 흥분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야심만 있지 왕을 살해할 배짱이 없습니다.
이때 망설이는 맥베스를 아내가 부추깁니다. 권력욕에 눈이 먼 그녀는 “남편에게 왕을 죽이지 못한다면 남자도 아니다.” “우리의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다.” “왜 그렇게 겁이 많나.” “예언이 실현되려면 왕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우리가 함께 하면 우린 강하고 위대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며 남편을 심리적으로 조종하며 다그칩니다. 이에 굴복한 맥베스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던컨 왕을 살해하고 부부는 그토록 탐내던 왕과 왕비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막상 차지하니 이제 최고 권력자로서의 안위가 더 걱정됩니다. 주변 인물들이 다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맥베스는 어떤 싸움이든 이길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과 자신의 운명마저 싸워 바꿀 수 있다는 지나친 오만의 자세로 적을 맞이합니다. 그런 자신감과 오만 그리고 왕과 동료 장군을 죽였다는 죄의식은 독이 되어 맥베스의 날개를 마비시키고 결국 그는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이에 정신이 나간 맥베스부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내라도 겸손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입니다.
1851년. 이카로스의 계보는 허만 멜빌이 쓴 『모비 딕』의 주인공 에이허브 선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이카로스형 인물입니다. 자신의 비극에 죄 없는 부하들까지 동참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포경선의 선장으로 고래잡이 갔다가 모비 딕이라 불리는 흰 향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게 됩니다. 이후 모비 딕은 선장의 인생 목표가 됩니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그 고래를 잡기 위해 그는 다시 피쿼드라는 이름의 포경선에 오릅니다. 피쿼드 호의 선원들은 그를 당당하고 불경스러운 신 같은 사람 ("grand, ungodly, god-like" man)이라고 묘사합니다. “Grand”는 “당당하다, 기품이 있다, 위엄이 있다”라는 의미로 그가 리더 격 인물임을 말해줍니다. “ungodly, god-like”는 자신 이외의 어떤 권위도 어떤 파워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 즉 즉 자신이 지존임을 시사합니다. 신 같은 존재 (god-like)라는 말인데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불경스럽고 (ungodly) 오만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이 최고이며 자신 만이 옳다고 믿는 에이허브 선장은 영락없는 이카로스형 리더입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한 번 목표를 세우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돌진하며 그 과정에서 그 누구의 충고와 설득도 통하지 않습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선원들에게 “흰 고래를 추적하여 죽이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그의 부하 스타벅은 선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그 고래는 본능적으로 당신의 다리를 박살 낸 멍청한 짐승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이허브에게 고래는 단순한 짐승이 아닙니다. 고래는 마스크이고 그 가면 뒤에는 알 수 없는 악의 근원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이허브는 그 악이 진정한 적이라고 역설합니다. 흰 고래를 쫓는 도중 영국 포경선을 만나는데 이 배의 선장인 부머도 모비딕에게 팔 하나를 잃어 의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비 딕을 봤냐고 묻는 에이허브에게 부머 선장은 “그놈을 죽이면 영광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지요. 해서 나도 한 때 쫓아다녔으나 이젠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곤 포기했습니다. 그놈은 내버려 두는 게 최선 이에요.”라고 말하며 에이허브의 의족을 흘끔 바라봅니다. 두 발 다 잃는 것보다 한 발이라도 있으니 다행이 아닌가 하는 태도입니다. 모비 딕 추적과정에서 만나게 된 또 다른 포경선 레이철 호. 이 배의 선장은 모비 딕을 추적하다가 선원들과 아들이 탄 보트를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간곡히 도움을 요청합니다. 어떠한 이성적인 설득도 윤리적인 호소도 철옹성 같은 에이허브 선장의 아집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러나 에이허브의 진정한 적은 고래가 아니라 그의 지나친 자존심입니다. 그에게 고래는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유일한 동물입니다.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전리품을 빼앗긴 아킬레스가 느낀 모욕감,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김영철이 이병헌에게 애인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느낀 모욕감은 모두 상처받은 남자의 자존심에서 비롯된 겁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모욕하는 게 있다면 태양이라도 박살을 낼 거야.” 태양은 사실 모비 딕입니다. 이 같은 에이허브의 오만은 기독교 칠죄종(seven deadly sins) 중 첫 번째 죄이며 하나님께 도전했다가 지옥으로 떨어진 사탄이 저지른 바로 그 죄입니다. 그는 마침내 모비 딕을 만나 싸우지만 우리는 그가 고래와 싸우는지 그 자신의 에고와 싸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카로스가 향했던 태양을 목표로 삼으니 결론은 비극입니다. 그의 오만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자신만 떨어져야 하는 지옥에 선원들을 (그의 이야기를 전달할 한 사람만 빼고) 모두 끌고 간다는 점입니다. 이카로스 형 리더보다 더 위험한 인물은 없습니다.
이카로스 형 인물은 끊임없이 출현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나타났습니다. 허구 아닌 실존인물로 파우스투스, 맥베스 부부, 에이허브를 모두 합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카로스형 인물이자 커플이자 리더입니다. 아버지가 달아준 날개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여 아홉 번 도전 끝에 검사가 된 경력의 소유자. 그가 검찰총장에서 최고 권력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 파우스투스가 생각납니다. 그에게 법과 언론은 파우스투스를 섬긴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나 다름없습니다. 멕베스 부부도 빠질 수 없습니다. 멕베스가 개선 길에 들은 마녀의 예언은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대권에 도전할 때 주위에 있던 주술사 천공 건진법사 명태균의 점괘입니다. 맥베스 부인은 누가 보아도 김건희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최고의 학력 최고의 미 최고의 자리를 지향해 온 욕망의 여인. 게다가 나름대로 주술 관련 분야 전문가로 남편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 온 그녀는 업그레이드된 레이디 맥베스의 재림입니다.
부부 합작으로 대권을 손에 쥐자 그는 에이허브 선장으로 변합니다. 이제 그의 주적은 야당이 장악한 국회입니다. 그는 야당주도의 국회를 제거하고자 군대까지 동원합니다. 국회를 패악질을 일삼는 정치 패거리라는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사사건건 방해하여 만인지상의 자세로 살아왔던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가시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나를 모욕한 자는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자세를 가진 남자. 아킬레스, 김영철, 에이허브의 후예입니다. 그는 메갈로마니아 캡틴 에이허브처럼 모비 딕을 제거하고자 돌진합니다. 경제, 국가 신인도, 국민의 삶에 관한 어떤 충고도 무시합니다. 그 고래만 없앤다면 온전한 권력을 누리는 왕이 될 수 있으니 마음은 이카로스처럼 태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한 이카로스처럼 그도 아버지의 말을 지독히도 안 들었다고 하죠. 역사는 분수를 모르고 까부는 자는 추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보아도 독특한 이카로스형 리더입니다. 보통은 함께 싸우다 다 같이 죽지만 그는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전부 지옥으로 보내고 자신은 살겠다고 숨어서 버티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변종 이카로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