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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Jan 15. 2024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10)

시라쿠사의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

다음 행선지는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 Parco Archeologico della Neapolis이다. 버스가 도착하고 가이드가 탑승하라고 하자 여자들은 안가겠다고 손사레를 친다. 자기들은 여기에서 천천히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쉬고 있을 테니 남자들만 갔다 오라고 한다. 두시간 가까이 걸어 다니느라 많이 지친 듯했다. 같이 가자고 설득하다 그만 둔 박사장님이 마지막으로 차에 올라 밖을 내다보며 여자들에게 말했다.


“돈 많이 벌고 계세요”


여기는 이태리의 고급 브랜드 물건값이 한국보다 많이 싸다. 그래서 물건을 많이 산 날 여자들은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오늘은 얼마 벌었다고 말하곤 했다. 이러한 여자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박사장님이 던진 익살이다. 


차량이 출발한지 10분쯤 됐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광대한 공원에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유적들이 있다고 한다. 네아폴리스라는 공원의 이름은 기원전 5세기 경 세워진 고대 그리스 도시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네아폴리스가 나중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부 유적은 로마 스타일로 개조되면서 그리스와 로마 유산이 혼합되어 있다. 독특한 이곳의 유적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주요 관광명소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가 먼저 버스에서 내린 곳은 허물어진 신전 터였다. 거대한 돌이 길게 직선으로 놓여져 있다. 제단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곳이 신전이었는지 알기가 힘들다. 이 제단은 세계에서 제일 크며 길이가 무려 200 미터라고 하는데 한번에 최대 소 450마리까지 제물로 비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곳 유적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지진, 침략 및 기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여기저기 남아있는 기초의 흔적을 보아 그 규모는 아테나에서 본 것을 압도한다.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 Parco Archeologico della Neapolis 의 신전 터에 있는 200미터가 넘는 제단

옆에는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최대 16,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인상적인 원형 극장이 있다. 세계에서 서너 번째로 큰 고대 그리스 원형 극장이며 보존 상태도 훌륭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연과 행사에 사용되고 있다.  시칠리아에 왜 규모가 큰 유적들이 본토 못지 않게 많이 남아 있을까 의문이 든 최사장님이 가이드에게 물었다.


"오르티지아의 아폴로 신전에서도 느꼈는데 왜 그렇죠?"

"오늘날 그리스가 하나의 국가이다 보니 예전에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문이 생기죠. 그래서 시칠리아를 당시 고대 그리스의 변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의 설명에 다르면 고대 그리스는 통일 국가가 아니고 폴리스 단위의 독립된 도시 국가들의 연합체 개념이었다. 이들 폴리스들은 스파르타와 아테나간의 펠레폰네소스 전쟁 때 처럼 패권을 놓고 충돌하면서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외세가 침입하면 연합하여 함께 대항하기도 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 부터 6세기에 걸쳐 다양한 이유로 본토를 떠나 지중해 연안과 흑해 연안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으며 이들은 본토의 폴리스와는 독립적인 정치적 단위였다.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도 그 중 하나인데 한 때 아테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만큼 세력이 막강했다고 한다.


최사장님은 가이드의 설명을 내가 통역해 주자 고개를 끄떡이며 한마디 했다.


"그래서 여기가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스럽네.” 


이곳은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 지역과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전망을 제공한다. 유리피데스Euripides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많은 작품을 포함한 그리스 연극이 고대에 이곳에서 공연되었다고 한다. 원형 극장은 고대 그리스인의 사회적, 문화적 만남의 장소였으며 공연은 중요한 공개 행사였다.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 Parco Archeologico della Neapolis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

이 외 라토미Latomie 채석장, 놀라운 석회암 동굴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귀, 로마 원형 경기장이 주변에 있는데 왜 고고학 공원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라토미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감옥과 같은 울타리로 변형된 고대 채석장을 의미한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당나귀의 귀'라고 불리는 Ear of Dionysius 인데 방문자는 신비한 음향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이 동굴의 이름은 기원전 4세기 시라쿠사를 통치했던 폭군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Dionysius는 동굴을 감옥으로 사용했으며 동굴의 독특한 모양과 음향 효과를 활용하여 죄수들의 대화를 도청했다고 한다. 동굴의 높이는 약 23미터이며 절벽 쪽으로 약 65미터까지 뻗어 있다. 사람의 귀를 닮아 오목한데 동굴 앞쪽의 좁은 개구부는 뒤쪽으로 갈수록 넓어져 음파가 반사되어 입구 쪽에 집중되는 구조다. 그래서 아주 미세한 소리도 입구에서는 선명하게 들린다고 한다.

라토미Latomie 채석장에 있는 '당나귀의 귀'Earof Dionysius

박사장님이 자기는 입구에 있을 테니 내가 안쪽에 가서 속삭여 보라고 한다. 3-40미터쯤 걸어가 속삭여 보았지만 멀리서 보기에 알아 듣는 것 같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많아 모두 속삭여 대니 내 말을 알아들을 턱이 만무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낼 수도 없고. 고대 그리스는 지금 처럼 국경내에서 폴리스간에 영토가 이어지는 통일 국가가 아니었다.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폴리스, 즉 독립된 도시국가의 연합체이다 보니 본토에 있는냐 다른 지역에 있느냐는 당시 세력의 척도가 아닌 것 같다. 현재 남아 있는 이곳 유적의 규모는 당시 시라쿠사가 얼마나 강성한 폴리스였는지 말해 주고 있다. 


시라쿠사는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출생지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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