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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Dec 29. 2023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8)

오르티지아에서의 쿠킹클래스

다음날 리조트 안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콘티넨탈 스타일, 영국/아일랜드 스타일, 그리고 토종 치즈와 함께 이태리 스타일의 세 종류가 뷔페식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메뉴는 여느 호텔과 비슷하지만  자체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그랬을까 정성껏 준비한 차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다 붐비지 않는 넓은 공간과 세련되고 쾌적한 인테리어는 편안하고 즐거운 식사를 위한 세심한 배려를 곳곳에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정성스럽게 마련된 아침식사는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는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시라쿠사Sycacuse의 오르티지아Oritigia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에 도착하니 쿠킹클래스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곱슬머리에 아담한 체구를 가진 전형적인 남부 이탈리아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다정한 성격에 붙임성도 좋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쿠킹클래스는 자기 집에서 하는데 먼저 시장부터 보자고 한다. 색다른 채소와 과일, 그리고 향신료가 있는 좌판을 제외하면 오르티지아 시장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여느 재래시장과 비슷하다. 능숙하게 생선을 다듬는 생선가게 주인, 지나가는 손님을 성가시게 호객하는 과일가계 주인, 이 외도 각종 채소류, 견과류, 그리고 집에서 만든 듯한 각종 치즈들도 좌판에 놓여 있다. 어느 나라이든 야외 시장은 그 나라 사람들의 가식 없는 모습과 인심을 볼 수 있어 좋다. 예전에 북유럽에서 보았던 차분한 야외시장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시칠리아의 시끌벅적한 시장의 분위기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동감이 훨씬 더 진하게 느껴진다.

오르티지아 시장의 모습

쿠킹 클라스 메뉴는 칼라마리와 봉골레 파스타라고 했다. 먼저 어물전에 가서 주재료인 오징어와 바지락 조개를 샀다. 그리고 빵가루, 마늘, 레몬, 파슬리, 파마산 치즈 등 부재료도 함께 구입했다. 8명의 일행들은 어미를 따라가는 오리새끼들처럼 붐비는 인파속에서 선생님을 놓칠까 꼭 붙어 따라 다녔다. 재료구입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부두 앞에 바다를 향해 길게 늘어선 4층의 연립 건물이었다. 모두 선생님 소유의 건물이라고 했다. 대부분 사무실로 임대를 주고 있고 4층 중 일부를 본인의 주택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삐걱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선생님 집 거실에 들어서니 가구며 장식품들도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베여 있었다. 피아노도 그렇고 모두 100년은 족히 넘은 것 같았다. 창으로 밖을 내려다 보니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가 바로 보였다. 큰 부두가 아니어서 배의 크기도 그만 그만했다. 여기에서도 시장과 마찬가지로 분주하게 오가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짐을 싣고 내리는 사람, 배 수리를 하러 온 사람, 배에 식품이나 기계부품을 공급하러 온 사람 모두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도 가끔 들렸다. 선생님은 간단히 집을 구경시켜주고 나서 모두를 주방으로 인도했다. 


드디어 쿠킹클래스가 시작되었다. 모두 선생님을 둘러 싸고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첫번째 메뉴는 우리나라 떢복이 집에서 파는 오징어 튀김과 비슷한 칼라마리였다.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오징어를 깨끗이 손질한다. 다리를 분리하고 몸통에서 내장을 제거한 뒤 껍질을 벗기고 찬물에 헹군다. 몸통은 고리모양으로 가로로 썰고 다리는 그대로 둔다. 별도의 얕은 그릇에 밀가루, 소금, 마늘 가루, 파프리카를 섞어 골고루 잘 섞는다. 손질한 몸통과 다리를 밀가루 혼합물로 만든 튀김옷에 넣고 고르게 바른 뒤 여분의 밀가루는 털어낸다. 선생님은 손질한 오징어와 튀김옷 재료를 그릇과 함께 주면서 여기까지 직접 해보도록 실습을 시켰다. 평소 위트와 유머로 일행들을 즐겁게 해주는 박사장님이 제일 열심이었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선생님과 요리하는 모습

“오늘은 남편 여러분들이 요리하여 부인들에게 대접하겠습니다. 부인들께서는 손하나 까딱하지 마시고 구경만 하시기 바랍니다.”


오징어에 튀김옷이 입혀지자 선생님은 프라이팬에 튀김용 기름을 약 5센티 정도 깊이까지 채운 뒤 중불에서 기름을 가열했다. 그런 뒤 튀김옷을 입힌 오징어 몸통과 다리를 뜨거운 기름에 조심스럽게 넣도록 하면서 주의를 준다. 


“팬에 기름이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선생님은 튀김옷이 고루고루 황금빛 갈색으로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계속 뒤집었다. 오징어가 적당히 튀겨지자 선생님은 튀김 건지개로 건져 기름을 털어내고 종이 타월이 깔린 접시에 옮겼다. 선생님은 기름이 어느 정도 빠진 오징어를 서빙 플래이터에 배열하고 레몬 웨지로 예쁘게 장식했다. 남자들이 대견한 듯 박수를 치면서 칭찬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파스타를 만들어 볼까요?” 


선생님은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봉골레 파스타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봉골레 파스타는 신선한 조개, 마늘, 화이트 와인과 파스타의 풍미를 결합한 고전적인 이탈리아 요리입니다.  그리고 오늘 사용할 파스타 종류는 링귀니입니다.”


선생님은 시장에서 사 온 재료를 하나씩 손질하기 시작한다. 먼저 조개를 찬물이 채워진 그릇에 담으며 말한다. 


“조개는 찬물에 문질러 모래나 이물질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중 열려 있으면서 두드려도 닫히지 않는 조개는 모두 버려야 합니다.”


조개 손질은 최사장이 하겠다고 자청해서 나섰다. 최사장은 평소엔 말이 별로 없지만 가끔 한번 씩 던지는 말로 일행들을 웃기곤 했다. 옆에 있던 박사장이 끼어들어 입을 벌린 조개를 손가락을 튕기면서 감별을 거들었다.


“이놈은 입을 닫기는 하는데 좀 비실비실하네. 버릴까 말까? 에라, 내가 먹지 뭐.”


조개 손질이 끝나자 선생님은 큰 냄비에 소금물을 넣고 끓였다. 그리고 준비된 봉골레 파스타 면을 삶았다. 면을 삶는 요령은 우리나라의 라면처럼 포장지에 적혀 있었다. 면이 다 삶아지면 물을 1/2컵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따라낸다. 그리고 별도의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중불로 가열하고 다진 마늘을 넣는다. 향이 날 때까지 1분 정도 충분히 볶고 손질한 조개를 팬에 넣기 전에 불을 좀 더 올린다. 그런 뒤 조개를 넣고 화이트 와인을 몇 술 부은 뒤 팬을 덮은 채 익힌다. 조개가 모두 열릴 때까지 그대로 두는데 대략 5분정도 걸린다. 이때도 열리지 않은 조개는 버린다. 선생님은 익힌 조개는 다른 그릇에 옮기고 팬에 남아 있는 조개 국물에 익힌 파스타와 소스를 넣어 섞은 뒤 중불로 다시 내렸다. 


“소스가 뻑뻑한 것 같으면 남겨둔 파스타 삶은 물을 조금 넣어 풀어주세요. 소금과 간 후추로 간을 하면 맛이 훨씬 더 깊어집니다.”


먹음직스럽게 조리된 파스타에 다진 파슬리를 넣고 다시 섞은 뒤 각자의 접시에 나누어 담았다. 그 위에 익힌 조개를 얹고 남은 소스는 파스타와 조개 위에 뿌려 주었다. 잘게 썬 파슬리를 추가로 장식하고 접시에 레몬 웨지를 얹었다. 맛있는 봉골레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먼저 만든 칼라마리를 마리나라 소스와 함께 식탁에 올리고 막 요리를 끝낸 파스타도 그 옆에 올렸다. 부인들을 위해 모처럼 남자들이 정성껏 만든 요리들이다. 선생님은 냉장고에서 화이트와인을 꺼내 왔다. 타오르미나에서 마셨던 카리칸테다. 한 잔씩 따르자 지금까지 말없이 선생님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들었던 전사장이 건배를 자청하고 나섰다. 


요리후 와인과 함께 시식

“지중해의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게 해 주신 선생님을 위하여, 살루티Sal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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