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쉴 수 있어서 미안해요

by 오롯이

언덕을 뛰어 올라간다.

찬바람이 귓볼을 스치고 코 끝이 찡해진다. 겨우 아물었던 터진 입술이 다시 갈라진다. 아프다. 숨이 찬다. 숨이 차서 죽을 것 같다. 당장 발걸음을 멈추어 서고 싶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뒤돌아 가고 싶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돌아 따뜻한 집으로 가고 싶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집으로, 내가 해결해야할 일은 오늘 아침식사 말고는 없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계속 뛴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다리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돌아갈 수 없다. 앞은 안보이지만 설 수도, 돌아갈 수도 없어 계속 나아간다.

남편은 산소발생기를 끼고 집에 있었다. 산소발생기에 연결된 3m 호스가 행동반경의 전부였다. 산소발생기를 꽂은 채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잘 때도 꽂고 있었다. 태풍이 몰아닥쳐 정전이 된 새벽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비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던 그 어두운 새벽, 모든 불이 다 꺼진 그 어둠 속 현란하게 돌아가던 앰뷸런스의 불빛.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정전으로 숨을 쉬지못해 응급실에 가야했던 그 새벽, 모든 것이 기가차서 통곡 하고 싶었지만 늘 그랬듯 그 통곡은 목을 넘어오지 못했다. 대신 태풍이 잦아들고 해가 뜨는 모습을 응급실에서 지켜보며 우린 일상-정전이 되면 응급실에 오는 것이 일상인듯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날 아침 응급실 밖은 혼돈 속의 아름다움이었다. 깨끗해진 공기와 엉망이된 거리, 난 왜 여기서 이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지 감사하면서 동시에 슬펐고 죄스러웠고 미안했다.


숨을 쉰다는 것, 원하는 만큼 내가 들이키고 내쉬는 것은 축복으로 여겨짐과 동시에 죄책감의 출발점이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마다 생각났다. 얼마나 괴로울까. 24시간 내내 산소가 모자라 숨을 몰아쉬는 기분은 어떨까.


달리기를 하면 내가 내려놓을 수 없었던 깊은 감정들이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어느정도 객관화가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달리기를 하면서는 죄책감도 조금 덜 수 있었다. 나도 숨이 차니까, 어지러울 정도로 숨이 가쁘니까. 우리 오빠가 이렇게 숨이 차는구나. 난 달리고 있어요. 미안해요. 난 달리고 있어요. 숨을 쉬고 있어요…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달리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숨을 쉬는 것은 죄책감인 동시에 사명감이 되어갔다.


지금도 같은 길을 계속 달리고 있다. 언제나, 단 한 번도 변함없이 생각한다. 미안해요. 숨쉬어서 미안해요. 숨 쉴 수 있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