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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의 미학(美學)

축구 4. 골키퍼(上)

by 박인권

축구 4. 골키퍼(上)


#가위바위보와 골키퍼 포지션

1970년대 초중반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공터에서 축구 게임을 할 때면 골키퍼는 인기가 없었다. 골키퍼를 맡겠다는 아이가 아무도 없어 툭하면 가위바위보로 그 자리를 정하곤 했다. 잘해야 본전이고 자칫 골이라고 먹으면 졸지에 패배의 덤터기를 혼자 뒤집어써야 하는 음지(陰地)의 포지션이 골키퍼라 다들 꺼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지금의 중앙 공격수), 그다음이 미드필더, 수비수의 차례였고 골키퍼는 언제나 맨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라 예나 지금이나 스포트라이트는 골을 넣는 아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전술의 진화에 따른 경기 양상의 선진화로 포지션별 중요성이 상향 평준화됐다지만 여전히 축구의 묘미가 골에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골키퍼에 대한 인식이 지금에 한참 못 미친 예전에야 말할 것도 없다.


1961년 11월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버플레이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구소련의 국가대표 골키퍼 레프 야신이 슈팅을 막는 모습.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레프 야신(Lev Yashin)

축구를 좋아하는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1929~1990)이라는 축구 선수가 있다. 옛 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FC 디나모 모스크바의 원클럽맨(1949~1971)이었던 그는 총 812경기에 출전해 무실점 방어 경기인 통산 추정 클린 시트만 470회를 기록했다. 올림픽 축구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4년 뒤 유럽 축구 국가 대항전인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초대 대회에서 소련이 정상에 오르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야신은 서른네 살이던 1963년 골키퍼로는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골키퍼의 발롱도르 수상은 현재까지도 야신이 유일하다. 1956년에 제정된 발롱도르는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꿈의 트로피다. 한 해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시상하는 발롱도르는 프랑스어로 황금 공, 영어로는 골든 볼을 뜻한다. 트로피의 디자인도 황금 공 모양이다. 리오넬 메시(1987~)가 개인 통산 8회로 최다 수상자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시껄렁한 잡담(雜談)으로 시간을 때우던 아이들 사이에서도 야신을 모르는 아이보다 아는 아이가 더 많았다. 미디어의 보급 수준이 지금보다 형편없고 영상 자료가 드문 시절인데도 야신의 철벽 방어 퍼포먼스는 늘 화젯거리였다. 아이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야신의 플레이를 직접 본 것처럼, 입에 침을 튀겨가며 지껄였는데 그 출처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의 조각들에 상상력을 덧칠한 것이라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축구를 좀 안다는 아이들로서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어 이렇다 할 대꾸를 주저했고, 축구에 문외한인 아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발롱도르 트로피. ⓒAnk Kumar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흑(黑) 거미의 경이로운 방어력

운동장 축구와 동네 골목길 축구에서 골키퍼가 인기 없는 포지션인 것과 상관없이 야신 흉내를 내는 아이는 제법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검은색 모자와 검은색 유니폼 하의에다 검은색 장갑을 끼고 맨땅에서 다이빙 캐치를 서슴없이 하곤 했는데 팔꿈치에 긁힌 상처를 자랑스러워했다. 별명이 흑(黑) 거미, 거미손인 야신을 흉내 낸 행동이었다. 야신은 그만큼 대단한 골키퍼였다.


야신은 지금 골키퍼로서도 평균 이상인 189cm의 훤칠한 키와 빼어난 위치 선정과 동체(動體) 시력, 감각적인 반사 신경으로 국가대표 A매치 평균 실점이 게임당 0.89골(78경기 출전, 70골)에 불과했다. 야신이 현역으로 활약한 1950~60년대 세계 축구의 전술적 패러다임이 오늘날과 달리 공격 일변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방어력이다. 더군다나 현대적 개념의 수비 전술이 정립되지 않은 때라 골키퍼가 홀로 골을 막아야 한다는 고립무원의 압박감에 시달렸을 거라는 점에서 야신의 실점률은 철벽(鐵壁)이랄 만 하다. 펠레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골키퍼라는 일화도 전해진다.


#스위퍼 키퍼의 선구자

축구 골대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골키퍼의 방어력이 미치기 힘든 지역으로 골대 좌우 맨 위의 구석 자리가 그곳이다. 너비 7.32m, 높이 2.44m의 골대 가장 구석진 자리라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가는 공의 속도를 신체 반응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어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곳이다. 그런데도 야신은 최고급 슈퍼 세이브랄 수 있는 골대 사각지대로 날아오는 공을 잘 막아냈다고 한다. 축구계에서 이곳을 ‘야신 존’이라 부르는 이유다.


야신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선방(善防)을 밥 먹듯이 하고 수비수들을 조율하는 능력과 유사시 페널티 박스 바깥까지 돌진해 과감한 태클 방어를 감행하는 등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공격 지향적인 미래형 골키퍼의 전형(典型)이었다. 수비 뒷공간을 책임지고 빌드업에 적극 참여하는 스위퍼 키퍼의 선구자로 골키퍼 역사상 진정한 GOAT(Greatest Of All Time)로 평가받는 레프 야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지난 2020년 개봉되기도 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의 방어 장면. ⓒVillarroel-Anniel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스위퍼 키퍼(sweeper keeper)는 수비 범위가 넓어 수비수들의 뒷공간 커버와 긴 패스를 이용한 빌드업 능력이 뛰어난 골키퍼를 말한다. 유사시 손을 쓸 수 없는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까지 전진해야 해 발밑 능력이 필수적이다. 최후의 수비수이자 최후방 공격수라는 개념을 골키퍼 포지션에 적극적으로 적용한 개념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1986~)가 스위퍼 키퍼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위퍼 키퍼는 전술적 활용도가 높아 현대 축구의 새로운 골키퍼 유형으로 정착됐으나 골문을 비워둔 상태로 페널티 박스 언저리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실점할 위험성도 있다. 축구계에서는 현대적 스위퍼 키퍼의 개념이 잉태되기 시작한 시기를 골키퍼에 대한 백패스 금지 규칙이 도입된 1992년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대표를 지낸 김병지(1970, 현 강원 FC 대표)가 스위퍼 키퍼 부류의 골키퍼라고 할 수 있다.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

골키퍼의 위상(位相)이 몰라보게 달라진 현대 축구에서도 야신은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고 있다. 골을 넣어야 이기는 축구 경기의 속성을 뒤집으면 골을 내주지 않아야 이긴다는 전제도 성립한다. 전 세계 유수의 프로팀에서 우수한 골잡이를 스카우트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듯이 걸출한 골키퍼를 확보하려는 경쟁도 뜨겁다. 다른 포지션이라고 다를 게 없다. 포지션별 우선순위가 없고 전 포지션이 다 중요한 시대다.


야신이 사망하고 4년이 지난 1994년 그의 업적을 기리는 야신상((FIFA World Cup Yashin Award)이 제정됐다. 월드컵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친 최우수골키퍼에게 시상하는 상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부터 골든 글러브로 명칭이 변경됐다. 초대 야신상 수상자는 벨기에 골키퍼 미셸 프뢰돔(1959~)이다. 프뢰돔은 그해의 유럽 최우수골키퍼에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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