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폴 세잔(1839~1906)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이름 폴 세잔. 우리는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부른다. 미술사학자들이 부여한 이 영예로운 칭호는 현대미술이 세잔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흐, 고갱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세잔은 인상주의 그림의 약점인 형태의 비공고성(非鞏固性)을 극복하는 방법에 사활을 걸었는데, 그가 찾은 해법이 다양한 얼굴로 진화와 변신을 거듭한 현대미술 역사의 뿌리가 됐다.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인 가장 큰 이유다.
세잔이 집요하게 탐색한 과제는 사물의 본질이었다. 사물의 본질은 근원적으로 변하지 않는 고유의 모습, 원래의 상태, 본래의 성질이다. 세잔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원형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깨우쳤다. 위대한 발견을 가능케 한 첫 번째 시도는 대상의 단순화요, 두 번째 시도는 대상을 다시점(多視點)으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 세잔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색깔이 있기에 색깔이 곧 형태요, 형태가 색깔이라고 내다봤다. 색을 칠할 수록 형태도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색과 형태를 동일시한 세잔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색의 대비와 색의 조화로 명암과 원근법, 입체감 효과까지 창출할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 47.5 x 57cm, 1894-1895. 오르세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세잔은 대상의 단순화로 본질의 민낯을 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아무리 복잡하고 중층적인 사물이더라도 생성 순서를 거꾸로 되짚어가면 결국은 최초의 출발선에서 서로 만난다는 원형 동일성의 법칙을 기하학적 회화원리로 체계화시켰기 때문이다. 세잔이 도출해낸 원형 동일성의 법칙은 모든 사물을 기하학적으로 분석하면 구와 원통, 원뿔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동물도, 나무도, 산도, 건물도, 기하학적으로 해체하면 결국 구나 원통, 원뿔 모양과 같은 도형으로 환원된다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 원형 동일성의 법칙을 입증했다. 세잔에게 세상 만물은 동등했고, 모든 것은 우주의 부분이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연작과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은 세잔이 어떻게 대상의 단순화에 성공했는지, 그만의 필살기(必殺技)를 확인할 수 있는 업적이다.
다시점 관찰법은 인간의 눈은 사물을 360도 방향에서 온전하게 볼 수 없기에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참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시점을 동원해야만 사물의 속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사고의 결실이다. 말년 작품인 ‘사과와 오렌지’(1895-1900), ‘목욕하는 사람들’(1906)에서 피카소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입체주의의 원천기법인 다시점 화풍을 엿볼 수 있다.
대상의 단순화와 다시점 관찰법은 세잔이 얼마나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탐구에 몰두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사물의 본질을 찾기 위한 세잔의 두 가지 탐구 기준은 훗날 기하학적인 요소로 그림을 규정한 추상미술과 전방위(全方位)에서 바라본 대상을 조합한 입체주의의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오늘날 현대미술이라고 일컫는 미술사조가 개화한 최초의 수확이 입체주의란 점에서 세잔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현대미술의 씨앗을 뿌린 원조(元祖)다. 세잔은 현대미술이 발아하는 데에 필요한 종자를 땅에 심었고, 피카소는 세잔이 발명하고 파종한 현대미술의 씨앗을 천재적인 감각으로 개량해 입체주의라는 미술사를 뒤흔든 획기적인 사조(思潮)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로 단숨에 현대미술의 총아(寵兒)로 부상한 피카소가 콧대 높은 자존심을 뒤로 하고 세잔을 유일한 스승이라고 치켜세운 이유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화가의 눈과 머리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현대미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맨 처음 밟는 데 성공한 세잔은 1906년 폐렴으로 죽을 때까지 병든 노구를 이끌고 그림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그가 죽기 전에 그린 ‘목욕하는 사람들’은 피카소가 완성한 ‘아비뇽의 아가씨들’ 작품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세잔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구와 원통, 원뿔로 귀착된다는 신념을 캔버스에 구현하기 위해 정물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탐구의 실행방식은 그림의 주제를 강조하는 대신, 대상과 인물의 형태 및 변하지 않는 색깔의 근원적 실체와 단순명료한 구도 포착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원근법과 입체감을 존중하는 기존의 회화 문법을 밀어낸 세잔의 혁신적인 예술적 성과는 너무나도 유명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4-1895)로 화려한 결실을 거뒀다. 연작으로 제작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200점 넘게 그린 정물화와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과 함께 세잔이 가장 좋아했던 소재였다.
오십 줄로 접어든 1889년, 세잔은 파리 생활을 접고 나고 자란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갔다. 어릴 때부터 농촌 지역인 고향의 농민들 생활을 보고 성장한 터라 세잔의 머리에는 늘 농민들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농민이다. 세잔이 50대 때 그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모두 5점의 연작으로 2명 또는 3명이 모델로 나온다.
5점 중 마지막 작품인 이 그림은 2명의 농부가 마주 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세잔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걸작이다. 인상파 미술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오르세미술관에 소장 중인 이 그림에는 세잔이 평생 몰두했던 대상의 단순화, 간결하고 명료한 화면구성, 절제된 색채 구사 등 만물의 근원에 대한 집요한 탐색의 결과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다른 버전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드로잉과 초상화, 수채화 등 수많은 습작 과정을 거쳐 유화로 완성됐다. 당시에 유럽의 농촌에서는 고단한 일과를 끝낸 농민들이 카드놀이를 하며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게 일상적이었다.
화면구성부터 특징적이다. 가운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공간을 완전히 둘로 나누는 좌우 대칭구도를 이룬다. 특히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포도주병은 좌우 화면의 대칭성을 무한대로 확장 시킨다. 카드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의 양팔과 어깨,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도 구도의 대칭성을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간결한 화면 구도 구축에 공들인 세잔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포도주병을 꼭지로 테이블 위에 덮인 테이블보가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포진돼 있다. 말없이 카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조용하고 온화하다. 승패가 갈리는 카드 게임의 긴박성과 대비되는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어둡고 칙칙한 색의 옷을 입은 왼쪽 인물과 달리 오른쪽 인물의 옷을 밝게 처리한 것도 대비효과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왼쪽 사람이 물고 있는 담배 파이프와 손에 쥐고 있는 카드, 두 사람의 셔츠는 모두 흰색인데, 이 또한 전반적으로 우중충한 황토색 풍으로 절제된 그림 속 다른 색깔과 대비된다. 밝고 어두운색의 대립적 배치는 붓 터치가 거칠고 그리다 만 것 같아 평면적이어야 하는 데도 묘하게 질감과 입체감을 자아내는 효과를 낳고 있다. 색채만으로 원근법과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한 전통적인 회화 법칙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세잔의 또 다른 위대성이다.
두 사람의 머리를 보자. 구(球)처럼 보이지 않는가. 세부 묘사를 생략한 손도 마찬가지. 모자와 목, 몸통, 팔과 다리는 원통처럼 묘사돼 대상의 단순화, 사물의 근원적 본질 포착에 충실한 세잔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림은 분명 카드 게임을 하는 두 남자를 그린 것인데, 둘 다 사람이라기보다 포도주병이나 탁자, 테이블보와 다를 것이 없는 정물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순하고 대칭적인 구도, 대상의 단순화, 간결한 배경, 절제된 색채 구사,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평한 화면 처리 등 세잔이 추구한 현대미술의 개척 정신이 다 들어 있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