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
17세기 서양미술사는 바로크 미술의 시대였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가 어원으로 과장되고 왜곡된 예술 양식을 말한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과 건축 분야로까지 확장돼 18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과장과 왜곡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시사하지만 바로크 미술 사조 앞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바로크 미술은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 르네상스 정신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빛과 그림자, 즉 강렬한 명암대비와 역동적인 생동감이 특징인 혁신적인 문화예술 운동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기지개를 켠 바로크 미술은 남유럽 가톨릭 국가 일대를 휩쓸며 숱한 거장들을 배출했다. 특히 카라바조(1571~1610)는 3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을 강타한 르네상스 미술을 밀어내고 바로크 시대를 앞장서 개척함으로써 근대 사실주의 회화가 탄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캔버스에 유화, 44.5 x 39cm, 1665년경,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실마리의 내용은 종교화의 주제를 신화에서 일상의 삶으로 변환시킨 것과 빛을 이용한 명암효과 연출, 극적인 화면 구성, 사실적인 묘사였다. 루벤스(1577~1640), 벨라스케스(1599~1660), 렘브란트(1606~1669),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 바로크 미술의 전성기를 이끈 쟁쟁한 후배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이어받았다.
바로크 미술이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가톨릭 국가를 중심으로 번성한 것은 반(反)종교개혁의 깃발을 내건 교단(敎團)이 가톨릭 신앙 강화와 선교활동의 구심점으로 미술계를 대대적으로 활용하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바로크 미술은 각 나라가 처한 정치 상황과 사회적 여건에 따라 전개 양식이 일부 다르게 나타났지만,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역동적이며 사실적인 표현을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 교회의 권위와 왕권 강화의 수단으로 미술을 끌어들인 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네덜란드의 바로크 미술이다. 다른 국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는 이유에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무역 강국이었다. 네덜란드 경제부흥의 원동력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주식회사를 앞세운 해외식민지 개척과 튤립 투자 열기였다. 동인도회사는 1602년 자바섬을 중심으로 한 동인도제도 무역 육성과 식민지경영을 위해 설립한 회사로 1799년 문을 닫을 때까지 200년 가까이 번창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델프트의 풍경, 캔버스에 유화, 96.5 x 117.5cm, 1660~1661년경,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튤립은 한 송이값이 네덜란드 중산층 1년 생활비의 10배에 이를 정도로 전 국민이 투자에 매달린 메가톤급 재테크 상품으로 경제 호황을 이끈 주역이었다. 이 결과 엄청난 부(富)를 쌓은 시민계층이 사회 지배계급으로 부상하면서 강력한 미술 컬렉션 붐이 일었다. 이들은 고리타분한 역사화와 종교화보다는 화가들의 후원자로서 재력을 과시하고 저택을 장식하는 데에 어울릴 풍경화와 픙속화, 정물화를 선호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풍경화 등 풍속을 그린 장르 그림이 유행한 배경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적 흐름에는 그것을 가능케 한 군계일학의 명장을 필요로 하는 법, 렘브란트와 동시대에 활동한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페르메이르가 거장인 이유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삶과 풍속에도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일깨웠다는 데에 있다. 그 비결은 흔하고 익숙한 사물과 행위도 빛의 은덕(恩德)을 입고 진인사(盡人事) 하면 지고지순한 감동을 안길 수 있다는 탁월한 발상과 예술적 솜씨다. 그 정점에 있는 그림이 ‘우유를 따르는 하녀’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년경)와 함께 페르메이르 화풍(畵風)의 전범(典範)으로 평가되는 그림이다. 배경은 중산층 집안의 실내, 그림이 작고(세로 45.5, 가로 41cm) 정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며 등장인물은 여성 한 명. 그림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우유를 따르는 장면이다. 차림새로 보아 이 여인은 하녀로 보인다. 부엌에서 주인집 식구들을 위한 식사 준비에 한창인 이 모습은 하녀가 날마다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녀는 지금 늘 그래왔듯, 몸이 명령하는 대로 큼지막한 대접에 우유를 따르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빵과 바구니, 식탁도 색다른 게 없고 하녀의 오른쪽 뒤로 보이는 벽에도 못과 못 자국이 선명하고 회반죽이 갈라져 있는가 하면 흠집과 얼룩이 휑하게 드러난 것도 단출하고 소박한 부엌살림의 민낯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 캔버스에 유화, 45.5 x 41cm, 1660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새로울 것 하나 없는 흔하디흔한 광경인데 지금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페르메이르 그림의 필살기인 빛은 조금 있다 다루기로 하고 하녀의 자세에 집중하자. 당당하고 다부진 체구에서 노동으로 단련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입을 굳게 다물고 무심히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구도자의 수행처럼 순간적으로 멈춰버린 것 같은 동작에서 일체 동요도 찾아볼 수 없는데, 가만히 보면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여인의 두 눈은 붉은빛이 감도는 점토로 구운 항아리 모양 주전자를 시작으로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뽀얀 우유 줄기를 거쳐 쪼르륵 소리를 내며 하강 중인 우유를 다소곳이 받아내고 있는 대접에 이르는 세 지점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무아지경의 진중함이다. 가사(家事)에 달관한 듯, 말없이 차분하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꺾은 모습은 우리에게 겸손하지만 엄숙한 기운으로 다가오는데, 경건함의 아우라다.
순간, 우유를 따르는 단순한 행위는 하찮은 가사노동에서 존엄한 의식의 영역으로 치환된다.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동작, 매사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 있을 땐 당연시하지만 없으면 큰일 나는 단순 노동에 깃든 소중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 페르메이르는 세 가지 메시지를 통해 대수롭지 않은 일상에서 고귀한 가치를 일깨우는 데에 성공했다. 사회적인 이슈가 아닌, 삶 언저리에서 예술성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회화 고유의 근원적인 가치를 탐색한 것이다.
울트라 마린 안료.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하나 더 있다. 페르메이르 스스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 노동행위에 내재한 신성함을 부각하고자 의도적인 시도를 한 점이다. 여인의 치마 색을 보자. 울트라 마린 블루로 불리는 군청색이다. 울트라 마린 블루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사용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보석 중 하나인 청금석(靑金石)을 빻아 만든 분말에서 얻어지는 색이다. 값이 비싸 화가들이 구하기 힘든 재료인데다 하녀에게는 분에 넘쳐 어울리지 않는다는 통념을 페르메이르가 깬 것이다. 이 그림이 풍속화지만 명화(名畫)로 칭송받는 이유다.
이제 빛을 살펴볼 차례. 페르메이르는 빛을 다루는 솜씨가 신출귀몰한 빛만큼 능수능란했다. 대수롭지 않은 인물과 소재만으로 특별한 가치를 길어내는 그만의 연금술적 역량은 빛을 그림의 주체로 내세우는 획기적인 발상에 힘입어 서양미술사에 길이 남을 눈부신 성취로 이어졌다. 빛의 특성을 조형적으로 이용한 화가는 여럿 있다.
그러나 페르메이르는 빛을 대상의 표현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 수단 또는 종속변수로 취급한 다른 화가들과 달리 빛 자체를 그림의 독립변수로 예우했다는 점이 특별나다. 페르메이르 그림 속 빛은 스스로 온전하게 그림을 구성하는 독립된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인물이나 물체에 비치는 빛의 각도와 빛의 양, 빛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함으로써 공간적인 느낌과 깊이는 물론 원근법의 효과까지 낼 수 있었던 것도 빛의 독립성 때문이다.
특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빛의 움직임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은 페르메이르가 거의 유일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평범한 일상은 특별함으로 다시 태어나 진한 여운을 남긴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처럼 보색(補色)관계인 파란색과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 것도 빛의 움직임이 자아내는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훗날 빛과 물체, 빛과 색채와의 역학관계 탐구에 몰두했던 인상파 화가들이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연구한 점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 빛이 출발하는 진원지는 왼쪽 창문이다. 깨진 유리 틈을 뚫고 들어온 빛은 벽에 걸린 바구니와 주전자를 스치듯 훑고 내려와 식탁 위에 놓인 빵과 식기들 몸통 전면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환한 빛은 오른쪽 대각선을 향해 방향 전환을 해 여인의 팔뚝과 상체를 강하게 어루만진 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허름한 벽 전체를 쓰다듬고 있다.
여인의 치마 앞쪽과 창문 및 식탁 아래는 빛의 기세에 눌린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명암대비가 격렬하다. 그림 전체를 빛이 장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스러기까지 눈에 보일 정도의 사실적인 빵의 질감과 인물, 소품들의 색감이 생생하게 와 닿는 것도 빛의 속성을 꿰뚫은 페르메이르의 탁월한 조형 감각 덕분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페르메이르의 손을 거치면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 되는 것이다. 페르메이르야말로 진정 빛의 연금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