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2

by 자강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삼촌 친구는 사랑방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둘째 기창이는 안방 대청마루에서 따로 저녁을 먹었다. 식구라고 해 봐야 할머니도 안 계시고 새엄마도 친정 가고 없어서 아버지와 나 기창이 셋이서 먹던 저녁상에 삼촌과 친구의 숟가락만 얹었을 뿐인데 준비해야 할 것이 늘었다. 조기도 더 굽고 쌀도 더 많이 씻어 지으니 시간이 좀 길어졌다. 음력으로 8월이 지나고 9월이 시작된 지 훨씬 지난 때여서 해도 짧아져 설거지까지 마치니 그믐달이 뜬 밖은 캄캄해져 사위가 어두웠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위해 놋요강을 씻어 방에 넣어드리고, 자리끼도 두 개를 준비해 아버지 방과 삼촌이 자는 방에 넣어드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불을 끄고 누워 있자니 기만이 걱정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후 삼촌이 안채로 건너와 내일 아침 기만이가 있는 절에 가보자는 말을 해서 그러마 하고 대답을 했지만, 기만이를 만나 어떻게 설득하여 집으로 데려올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촌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도통 그 속을 잘 보이지 않는 기만이를 무슨 수로 데려온다는 건지 궁금하기만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채비를 해야 했기에 나는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다.

아침을 알리는 닭소리에 잠이 깬 나는 닭장에서 닭알을 꺼냈다. 방금 낳은 알이 따뜻했다. 나는 곧바로 달걀을 깨 새우젓을 넣어 찜을 할 준비를 했다. 마른 김도 준비해 아궁이에서 작은 장작을 꺼내 화로 위에 얹어 석쇠에 마른 김을 구워냈다. 가마솥에 올린 밥이 뜸 들 무렵 사랑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삼촌 친구가 먼저 나와 세수를 할 참이다. 나는 기창이를 시켜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다 주도록 했다. 불편한 다리 때문인지 댓돌 위에 온전히 철퍼덕 앉아 세수를 못하는 모습을 힐끗 보고 나는 이내 부엌으로 다시 들어와 아침밥을 했다. 아버지께서 오늘은 새엄마가 저녁나절 이전에 집에 온다고 하니 저녁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기창이의 도시락도 준비했으니 이젠 밥 먹고 점심 도시락만 준비해 가면 될 듯하다.

"아침부터 갈 길이 먼데 조반까지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설거지는 따로 할 것 없이 서둘러 출발해라."

"그래야겠지요. 안면도까지 가려면 배도 타야 하고 배 시간도 알아봐야 하니까 유."

아버지 말씀에 삼촌이 나 대신 대답을 했다.


나는 후딱 밥을 먹고 명색이 외출을 하는 거라 얼굴에 뭐라도 바르고 가고 싶었지만 워디 좋은 데 가는 것도 아니다 싶어 머리 매무새만 만지고 길을 나섰다. 삼촌이 타고 온 군용 지프를 타고 간다니 배를 타야 하는 곳까진 그래도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생겼다. 사실 난 차를 타면 멀미를 좀 해서 차를 타고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하나 기만이를 만나러 가려면 그쯤 차멀미는 백 번이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삼촌과 나 그리고 친구까지 지프차에 타고 가는 차 안에서 난 아무 말도 안 한 채로 잠을 잤다. 밀폐된 공간에서 어색한 상태로 말을 하기도 싫었지만 밤새 잠을 못 잔 탓이 컸다.

차로 얼마나 이동했는지 모르나 내가 잠에서 깼을 때는 배를 타는 제법 규모가 큰 포구에 도착해 있었다.

"깼구먼. 고단했던 거여? 코 골고 자드만."

"삼촌, 무슨 소리 하셔요? 전 자면서 코 안 골아요."

"지금 내 거짓말이라도 한 줄 아냐? 야, 최가 니도 들었제?"

"......."


삼촌 친구는 대답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 가타부타 얘기를 허면 될 것을 기분 나쁘게 웃기만 하는 것이 영 맘에 안 들었다.

"삼촌, 우째 저쪽은 집에 안 가고 따라왔어요?"

"니는 모르제 저 친구가 다리를 다쳐서 그렇지 말이 청산유수여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꽤나 있었어. 게다가 얼굴도 잘 생기지 않았냐?"

"흥, 뭐 얼굴 잘생긴 게 밥 먹어준대요. 마음이 반듯하고 좋아야지."

"아, 모르는 소리 말아. 요즘 시상엔 잘생기고 볼 일이고, 말 한마디 잘해서도 돈이 나오는 시상이여."

아무튼 삼촌은 엄마랑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한 배에서 나온 남매일진대 속물 같은 삼촌은 처세가 남달랐다. 어쩜 요즘같이 어수선한 세상에는 삼촌같이 사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삼촌은 잠시 배 시간과 표를 사러 가고 그 말 잘한다는 친구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아주 천천히 발을 옮기며 조금씩 조금씩 차에 가까워져 왔다.

"동생 걱정 많이 되지? 살다 보면 세상과 등지고 싶은 때가 있지. 나도 전쟁통에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

"근데요. 왜 반말해 유?"

"친구 조카인디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내 큰 형님 큰 아들이 조카님 큰 동생이랑 나이가 같은데..."

"그래요? 그 조카는 지금 뭐 해요?"

"전쟁 전 군입대하기 전에 보고 여태 못 봐서 잘 모르지만, 멋진 청년이 되었을 거야."

"그걸 어찌 알아요? 7,8 년을 못 봤는디."

"큰 형님 닮아 키도 훤칠하고 형수 닮아 잘생긴 데다 심성도 올곧은 아이였거든."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삼촌의 친구가 고향 식구 얘기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흐르고 삼촌이 왔고, 갈 길 바쁜 우리는 안면도에 새우젓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를 타기로 했다. 승객을 태우는 목적이 아니니 배는 마땅히 앉을자리도 없었다. 뱃사람들에겐 파도 위에서 출렁거리는 배가 일상일 터이지만, 배를 처음 타는 나는 심하게 출렁거리는 작은 배에서 멀미를 좀 했다.

우리가 새우젓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삼촌 친구는 배를 탔던 포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옹암 포구라는 이름보다 독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르는 그 포구는 강경과 더불어 서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수산물이 거래되는 곳이라 했다. 특히 이곳에서 나는 토굴 새우젓은 조선 시대 임금님께 진상되었을 정도로 그 맛이 좋다고 했다. 새우젓 얘기를 들으니 할머니 생각이 났다. 새우젓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육젓과 오젓을 사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녀오셨던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싶어 내심 반갑기까지 하였다. 삼촌 친구의 이야기는 새우젓 이야기에 이어 안면도가 섬이 된 사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옛날 고려 때부터 태안의 안흥 앞바다의 파도가 거세 그곳을 지나는 배들이 자주 침몰했다고 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육지였던 안흥 부근을 인공적으로 끊어 운하로 만들 계획을 했다. 하지만 안흥 땅은 단단한 바위가 많았던 터라 어렵다 판단하고 조선 시대 때 안면 부근을 끊어 섬으로 만들어 버린 거라고 했다. 멀미를 하던 나는 삼촌 친구의 설명을 듣다 보니 멀미가 잦아들고 있었다. 친구는 삼촌 말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언변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급기야 나는 저 언변 좋은 이가 우리 기만이를 잘 설득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렇게 배는 안면도 작은 포구에 도착을 했고, 삼촌은 새우젓 배의 선장에게 우리 세 사람의 배 삯을 지불했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절을 찾아가기 위한 차편을 구했다. 이 오지 섬에서 절까지 가는 방법은 오로지 두 발로 걸어가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해는 이미 저물기 시작해 땅거미가 스멀스멀 드리워졌다. 삼촌은 잠잘 방을 잡았고, 우리 일행은 그렇게 그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절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믐을 지난 초하루 밤. 밤은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내일 아침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다 나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