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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준비 1 - 전시회

전시회 부스 직원 말붙이기

by 하얀 얼굴 학생

전시회는 서울의 커다란 전시회장에서 열린다. 호텔/리조트 산업을 타겟으로 한 건축 기자재 및 기술 총망라 전시회라고 적혀 있다. 사전 예약을 한 이들은 입장이 무료다.


입장 직전,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팜플렛을 건넨다. 팜플렛에는 이 전시회가 글로벌 컨퍼런스라느니, 아시아 TOP이라느니 등의 화려한 설명이 적혀 있다. 커다란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선다. 입장해보니 공간이 넓고 부스도 많다. 하지만 팜플렛의 설명처럼 아시아 TOP 전시회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그가 면접을 보는 29번째 기업도 명단에 없고, 이름난 대기업들도 많이 빠져 있다. 아마 전염병 때문이리라.


홀에 입장하자마자, 바로 눈앞에 고릴라 ALC가 있다. ALC,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 설명을 찾아보니 '경량기포콘크리트'라고 한다. 하얀색 레고 블록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데, 관람객들로 하여금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가 블록 하나를 들어보니, 상당히 가볍다.

고릴라 ALC는, 이번에 새로 출시한 블록이라며 블록을 커다란 수조에 담근다. 기존의 제품들은 가라앉았는데, 새로 출시한 블록은 물에 뜬다는 것이다. 그와 연인은, 고릴라 ALC에서부터 전시회 관람을 시작한다.



전시회는 총 2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과 3층이다. 2층 전체를 틔워서 천장고를 높였기 때문에 2층이 없다.

1층 - 건설,건축 관련 기자재 / 기술, 제품 전시 /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기획관

3층 - 인테리어디자인관 / 호텔,리조트 전문 비즈니스 전시 / 리무진 등 고급차량 전시


쉽게 나눠보자면, 1층은 원자재 위주이고 3층은 완제품 위주다. 1층에 설치된 부스들은, 낱개 제품이나 부품 / 시공업체 / 설계 관련 업체 위주다. 직접 DIY시공을 하거나, 집을 스스로 만드는 건축주가 되어보고자 하는 이들이 주요 타겟인 듯하다. 건축주가 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강의식으로 제공한다는 업체도 보인다.


이에 반해 3층은 완제품이 많다. 가구 / 가전 / 인테리어 소품 업체 위주에, 모델 하우스처럼 장식한 부스가 많다. 사용된 침대는 무엇이고, 이 고풍스러운 의자는 무엇이고, 가격은 얼마이고 등이다. 호텔과 리조트를 겨냥해서인지, 가격대가 높은 안마의자도 브랜드도 보인다. 3층을 전부 둘러보고 나가는 쪽에는, 번쩍이는 리무진 몇 대를 전시해놓아 사람들이 내부를 구경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가 면접을 준비하는 29번째 기업은, 건축자재를 주로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면접 준비를 위해 전시회에 참석한 그의 관심과 시간은, 당연하게도 1층에 쏠린다.


그는 이 전시회에서, 29번째 기업과 그 경쟁사들의 부스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전염병 때문인지, 29번째 기업은 물론 대기업 경쟁사들은 이 전시회에 대부분 불참했다. 대부분의 부스가 중소기업 위주이고, 가끔씩 커다란 면적을 차지한 큰 부스가 그나마 중견에 가까운 업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중소 중견 기업의 전시 부스를 전부 훑는다.



29번째 기업이 생산하는 주력 건축자재는, 주방용 인조대리석 / 벽지 및 바닥재 / 창호다.


1) 인조 대리석

주방용 인조대리석의 경우, 인조대리석만 생산하는 업체가 딱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 싱크나 주방 타일을 전시해놓은 부스에 가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살핀다. 그의 연인은 주방 싱크대에 관심을 보였다.


2-1) 벽지

그는 벽지 중, 종이 찌꺼기 같은 것을 물에 불려 뭉친 다음 벽에 펴바르는 벽지가 신기하다. 물에 젖었을 때는 쉽게 펴발라지고, 잘못 발랐을 때는 쓱 문질러서 다시 시공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이 마르면 굳으며, 친환경 벽지라고 한다.


2-2) 바닥재

1층 전시회장의 부스 중, 가장 커다란 부스가 있었는데 바로 바닥재 기업의 부스다. 브랜드 이름이 '올X다 마루'인데, 그는 처음 들어봤으나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듯하다. 부스 크기가 커서 눈에 띄기도 했겠지만, 1층의 부스들 중에서 사람이 가장 바글바글하다.


부스 벽면에는 여러 종류의 마루 바닥재가 붙어있고, 간략한 설명 및 기능이 적혀 있다. 충격 흡수가 잘 된다느니, 패턴 선택의 폭이 넓다느니 등이다. 전시 벽면 아래쪽, 손이 닿을 만한 높이 즈음에 망치와 바닥재 샘플이 두 개 놓여 있다. 자사의 기존 제품과, 신제품이라고 한다. 나무망치로 때리면, 기존 제품은 망치 자국으로 흠이 생기는데 신제품은 멀쩡하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망치를 잡고 내리친다. 이미 많이들 내리쳤는지, 기존 제품에는 흠집이 꽤 많다. 그도 나무망치를 잡고, 기존 제품과 신제품을 한 번씩 내리친다. 신제품을 내리칠 때는 일부러 더 힘을 주어 내리친다. 확실히 기존 제품보다는 흠집이 덜 나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신제품에도 망치 자국이 아주 없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올X다 마루' 부스에 바글바글한 방문객들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많다. 그는 주위를 보며, 할아버지들이 바닥재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생각한다. 그때, 그의 옆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제품 관련해서 질문을 한다. 부스 색깔과 맞춘 듯 보이는 짙은 와인색(버건디) 넥타이를 하고 양복을 입은 사람, 딱 봐도 직원이다. 직원은 할아버지 고객의 질문에 대해 이런저런 대답을 해주고 있다. 그는 슬쩍 옆으로 가서 듣는다. 올X다 마루도 29번째 기업의 경쟁사라고 할 수 있다. 경쟁사 조사를 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그다.


할아버지 : 여기, 이 제품이 뭐가 다른 거요?

직원 : 아, 이 제품은 강마루이고, 이건 강화마루입니다. 아무래도 이 쪽이...

할아버지 : 그래서, 이 망치로 때려도 흠집이 안 난다고?

직원 : 네, 이번에 새로 개발한 기술인데, 강도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타사 어느 제품이랑 비교하셔도, 이런 제품은 없을 겁니다.


직원의 '타사'라는 말에, 그는 은근슬쩍 끼어들 타이밍을 잡는다.


그 : 타사라면, 어디 말씀이신가요? 주로 어디 제품이랑 많이 비교들을 하시나요?

할아버지 : (갑자기 끼어들어) 마루는 아무래도, 구X마루를 많이들 쓰지.

할아버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제품을 만져보며 혼잣말하듯 대답한다. 구X마루, 그는 구X마루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기억할 것이 늘었다.

할아버지 손님이 대신 대답하긴 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직원과의 대화다. 직원은 머리빛이 약간 누렇고, 안경을 낀 40대 정도의 남자다. 모르긴 몰라도, 과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직원은 그의 정체를 이미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이도 어려보이는 것이, 제품을 살 생각은 없으면서 귀찮게 물어보기만 하는 취준생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는 직원이 자신을 약간 무시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그다.


그 : (굳이 애써 말을 건다) 그, 아까 이게 신제품이라고 하셨는데, 뭐가 다른 거예요?

직원 :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건 강마루고, 이건 강화마루잖아요. 둘은 다르죠.

그 : (살짝 빈정이 상한다) 아, 뭐가 다른 건가요.

직원 : 여기 보시면, 이거는 비닐이고. 이거는 코팅을 한 거예요.


직원의 아주 간단한 설명에, 그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화마루와 강마루, 둘 중 하나는 코팅이 되어 더 강력하다는 것 같다. 더 물어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는 이 직원과 굳이 더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직원을 뒤로한 채, 그 혼자 쓱 둘러보고, 나무망치로 바닥재를 한번 더 내리쳐 보고 부스 밖으로 나온다. 나름 유명한, 오래된 중견 비스무리한 업력 탓인지, '올X다 마루'는 부스 앞에서 볼펜과 자사 팜플렛을 나눠주고 있다. 집에 가져가서 공부도 할 겸 사은품도 챙길 겸, 그는 줄을 서서 받는다.



3) 창호

바닥재 부스를 보고 나오니, 바로 앞에 창호 부스가 있다. 바로 앞의 바닥재 부스가 하필 전시회장에서 가장 큰 부스여서, 비교되어 더 작아보이는 부스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건질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는 이 부스에도 방문해서 창호를 이것저것 본다. 보고 있자니, 방문객들 주위를 서성이는 직원이 있다. 바로 이전의 바닥재 부스 직원과는 정반대로, 나이도 어리고 어리숙해 보인다. 딱 봐도 신입 직원이다. 신입 직원에게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말을 걸지 구상하고 있는 그의 옆으로, 신입 직원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속으로 옳다구나 생각한다.

신입 직원 : 여기 팜플렛이에요. 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그 :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많이들 찾으시는 창호가 뭔가요?

신입 직원 : 아, 그게...

그 : (대답을 기다린다)

신입 직원 : (저쪽의 다른 직원이 보이자) 아, 저, 잠시만요.

신입 직원은, 상사로 보이는 다른 직원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한다. 잠시 뒤, 요청을 받은 직원이 그에게 다가온다. 30대 초반의 깔끔하고 친절한 인상, 대리인 것 같다.


직원 : 네,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그 : 아 네, 고객들이 많이들 찾으시는 제품이 뭔가요?

직원 : 네 지금 앞에 보시는 제품이, 가장 많이들 찾으시고 많이 나가는 제품이에요.

그 : 이 창호가 지금, 여기 체인으로 걸려있는데. 활짝 열리지는 않는 건가요?

직원 : 네, 이 창호는 열리는 각도가 제한되게 디자인한 제품입니다.

그 : 그, 방문하시는 분들이 아무래도 여러 회사 제품을 비교하실 텐데, 주로 어디랑 비교하시나요?

직원 : 네? 아무래도... 대기업이랑 비교를 많이 하시죠. 잘 아시는 KXX랑 비교를 많이 하세요.


직원의 태도가 호의적이다. 그는 아예 자신의 패를 드러내기로 결정한다.


그 : 아, 네 감사합니다. 사실은 제가, 지금 면접 준비를 하고 있어서요. 업계에 몸담고 계시니까,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직원 : 아 면접 준비 중이시라고요?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답변드리겠습니다. 혹시 KXX 면접 준비 중이신가요?

그 : KXX는 아니고, 29번째 기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직원 : 아, 29번째 기업이군요.

그 : 아까 KXX는 말씀하셨는데, 29번째 기업은 말씀을 안 하셔서요. 고객들이 29번째 기업 창호는 잘 안 찾나요?

직원 : 찾기는 합니다. 다만, 29번째 기업은 아무래도 종합적으로 시공을 해서요. 주방이랑 벽지 하면서 창호를 같이 하는 그런 식으로 하죠. 29번째 기업에서 창호만 별도로 하는 고객이 잘 없으신 거 같아요.

그 : 아 그렇군요. 혹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직원 : 저요? 저도 입사한 지 얼마 안돼서요. 이제 2년 정도 됐어요.

그 : 지금 계시는 회사랑, 업계 현황 같은 거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직원 : 음... 아무래도,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아직 업력이 짧아요. 이제 4년 정도 됐거든요. 그래서 지금 시장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창호 업계에는, 이미 선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많거든요. 그런 대기업들이랑 경쟁하고 있는 거죠.

그 : 그런 대기업들이랑 경쟁하시는데, 이 회사만의 강점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대기업을 고려하시다가 이곳의 창호를 구매하시는 분들은 어떤 점 때문에 이곳 창호를 구입하시나요?

직원 : 가격이죠. 대기업 창호는 가격이 비쌉니다. 물론 고급 창호를 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대기업 창호를 선택하시죠.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가격대, 알맞은 성능대의 창호를 원하시는 분들이 저희 창호를 이용하시곤 해요.


전시회라 그런지, 직원은 그의 질문에 상세하고 상냥하게 답해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질문하고 끝내고자 한다. 자동차 유리 관련이다. 29번째 기업은 자동차 유리도 생산한다.


그 : 네 감사해요. 아 그리고, 창호 업계에서 일하고 계시니까. 혹시 자동차 유리도 창호랑 유사점이 있을까요?

직원 : 차창 말씀하시는 거죠? 음... 같은 유리이긴 한데...

그 : 29번째 기업이 자동차 유리도 생산하거든요. 창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요.

직원 :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유리의 성격이 좀 달라요.

그 : (성격이라, 그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직원 : 그러니까, 이런 창호의 경우는, 제1 목적이 단열이에요. 집 내부와 바깥의 공기를 차단해서, 내부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 : 아, 그러면 자동차는... 강도인가요?

직원 : 네 맞아요. 자동차 유리도, 물론 단열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구성이 제1 목적이에요. 외부 충격에 잘 깨지질 않아야 하는 거죠. 저희 R&D 팀도, 물론 내구성도 고려는 합니다만, 연구할 때 가장 포커스하는 부분이 단열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점이 조금 다릅니다.

그 :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 : 네, 도움이 좀 되셨나요? 면접 준비 잘하세요.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그는 마음이 들뜨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 전시회에 참석하여 어떻게든 현직자와 말을 섞어보려던 노력이 보상받았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현직자와 이야기하며 얻은 지식을 잘 버무려서 면접 때 답변을 하면, 면접관들이 깜짝 놀라 혀를 내두르지 않을까.


1층 부스를 전부 훑어보고, 그는 연인과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의 가구/가전/인테리어 소품이야말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더 친숙하고 볼 것이 많은 분야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염병으로 인한 것인지 3층의 부스들이 상당히 부실하다. 빈 부스도 꽤 보인다.


그의 연인은 시야가 넓고 판단이 빠르기 때문에, 3층에 볼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는, 혹시 모르니 한번 둘러보자고 한다. 둘러보며 연인의 말이 맞았음을 깨닫는다. 그와 연인은, 고급 리무진 구경을 마지막으로 전시회 관람을 끝낸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전시회 때 보았던 것들을 정리한다. 29번째 기업과 대기업들의 부스를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얻은 것이 아주 없진 않았다.


바닥재 : 올X다 마루, 구X마루 브랜드 인식

벽지 : 친환경 벽지 등 관람

창호 : 부스 직원에게서 들었던 업계 내용, 자동차 유리와 창호의 차이

건설업계 분위기

- DIY에서 비롯되어 스스로 건축하는 소비자 증가 추세

- 인테리어 소품 중 냄새, 소리와 관련된 제품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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