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PT - 고정비, 변동비, BEP
전염병으로 인해, 29번째 기업은 비대면 면접을 시행한다. 책상에 책들을 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서 카메라 위치를 맞춘다. 몇십 번의 면접을 보았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쿵떡거린다. 가뜩이나 29번째 기업은 ㄴ-2그룹의 핵심 계열사이며, 건자재 제조업도 마음에 들고 경영기획이라는 직무도 마음에 든다. 꼭 붙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간절할수록 더 불안하다.
29번째 기업은, 역시 대기업이라서인지 자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그가 지금껏 봐온 화상 면접(비대면 면접)들은, 대부분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썼다. Zoom / Google Meet / Skype 등이다. 하지만 29번째 기업은, 자신들이 속한 ㄴ-2그룹 전용 프로그램을 쓴다. 시중의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느니, 그룹사 전체가 쓸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리라. 면접 안내 메일에는, ㄴ-2그룹 전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메뉴얼이 첨부되어 있다.
그가 쓰는 노트북은 '사과' 노트북이었는데, ㄴ-2그룹의 프로그램은 '사과' 노트북에서는 구동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 본체에 USB로 연결하는 웹캠을 따로 구매해야 했다. 대기업은 역시 면접보는 것부터 만만치 않구나 생각하는 그다.
ㄴ-2그룹은 화상 회의 프로그램과 별도로, PT면접 프로그램도 별도로 갖고 있다. 그가 지금 참석하는 면접은, PT면접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전형이다. 면접 프로세스는 이렇다.
1) 대기
2) 안내된 시각에 맞춰 PT면접 프로그램 실행, 문제 풀이
3) 화상 면접 프로그램 실행, 면접관들에게 PT 풀이 발표
4) 면접관들이 궁금한 사항 질문
5) 마무리
글로 나열했을 때는 꽤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 실시해보면 그리 어렵진 않다. PT - 인성 면접 두 단계를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써서 진행하는 것뿐이다.
대기 시간이 끝나고, PT면접이 시작된다. 시작 직전, 인사팀 직원은 이렇게 공지한다.
인사팀 직원 : PT문제 난이도에 대해서는, 면접관들께서 감안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일까. 그는 PT면접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문제를 읽는다.
PT면접
그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그에게 주어진 PT 문제는 아래와 같다.
제조업을 영위하는 'Z사'의 상태는 이러이러하다.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는 다음과 같다.
- 2개년도 재무상태표 (일반관리비 / 마케팅비 / 제조경비 / 감가상각비 등)
- 2개년도 손익계산서 (매출, 매출원가, 인건비 상세, 제조원가 상세, 운반비 상세 등)
1)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를 보고, 'Z사'의 원가를 변동비와 고정비로 나누어 분석하시오.
2) 'Z사'의 BEP를 계산하시오.
3) 'Z사'의 작년과 올해 비용 추세를 파악하고, 개선할 점을 서술하시오.
답변을 구성할 시간은 30분이다. 30분 이내에 답변을 만들고 면접관들에게 발표를 해야 한다. 그는 문제를 읽으며, 만만치 않은 문제가 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그는, 학점은 엉망으로 받았지만 '원가 회계'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해당 수업에서, 고정비와 변동비를 들어보긴 했다. BEP도 들어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은 자유롭다. 그는 당장 인터넷에 검색한다.
인터넷에 검색하여 그는 의미가 불분명한 단어를 모두 찾아낸다. 고정비, 변동비, BEP 등이다. BEP는 Breakeven Point, 즉 손익분기점이다. 즉, 이득을 내기 위해 최소한으로 달성해야 하는 매출이다. BEP의 의미는 알았는데, 계산을 어떻게 하나. 친절한 블로거들이 BEP 계산법을 대놓고 써주었다. 그는 해당 수식을, 아예 PT 프로그램 답지에 옮겨적는다.
3가지 문제는 모두 한 가지 흐름으로 이어진다.
문제에 주어진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에는, 원가 계정들이 흩어져 있다.
-> 원가 계정들을, 고정비와 변동비 둘로 나누어 종합한다.
-> 고정비, 변동비 각각의 금액을 구한다.
-> BEP, 즉 손익분기점 매출액을 계산한다. (변동비와 고정비 숫자 필요)
-> 취합한 정보, 계산한 정보, 그리고 올해와 작년을 비교하여 개선점을 찾는다.
생소한 문제에 당황하긴 했지만, 어렴풋이 남아있던 '원가회계 수업' 기억 덕에 그는 방향을 잡는다. 다행히도, 이번 PT 면접은 인터넷 검색도 자유다. 인터넷 검색을 못하게 했더라면, 그는 방향을 잡았더라도 수식을 몰라 문제를 풀지 못했을 터다. 그는 20분 동안 머리를 짜내 답안을 작성한다. 그가 프로그램 답지에 작성한 답안은 이렇다.
창의 논리 문제해결능력 발표력
1. 변동비와 고정비로 구분
고정 - 조업도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원가
일반관리 (인건비 +기타) 10
판매 마케팅비 80
제조경비 감가상각비 200
고정비 = 290
변동 - 조업도에 비례하는 원가
판매 인건비 25
판매 운반비 30
판매 기타 10
제조원가 원재료비 450
제조원가 노무비 150
제조경비 Utility 50
변동비 = 715
고정비가 290, 변동비가 715
2. BEP
월평균 BEP 매출액 = 월평균 손익분기점 매출액
매출액 - 변동비 = 한계이익 285
한계이익 / 매출액 = 한계이익률 0.285
고정비 / 한계이익률 = 손익분기점 매출액
290/0.285 = 약 1018원
3. 올해 증감항목, 개선요인
개선 : 판매가 변동(증가)로 인한 매출 증가
작년 : 판매가 100원 / 올해 : 판매가 110원
악화
고정비인 마케팅비 증가 (판매수량을 감안하더라도 증가폭이 크다)
10개에서 12개가 되었는데,
변동비 - 단위당 원재료비 큰 폭으로 증가
-단위당 운반비도 증가
-단위당 노무비도 증가
-단위당 Utility도 증가
내년 추가 수익성 개선 방안
매출이 증가하여 이익이 나긴 했으나, 판매 가격이 상승해서일 뿐.
이외 고정비와 변동비는 단위당 단가가 오히려 늘어나는 비효율적인 현상이 생김.
1) 고정비인 마케팅 증가를 주의, 효율적인 마케팅으로
2) 변동비 측면
- 원재료비 절감을 위한 R&D, 원재료 구입 검토
- 운반비 증가율 절감을 위한 물류시스템 재고
- 노무비 절감을 위한 공정 검토
- Utility 수도, 가스 등 절약 방안 검토
그는 시간을 꽉꽉 채워 답안 작성을 끝낸다. 자신이 작성한 답안을 보며, 그는 자신이 PT 문제를 꽤 잘 풀었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30분이 지난다. 그의 전화가 울린다. 인사팀으로부터의 전화다. 면접 프로그램을 실행하라는 전화다. 그는 면접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면접 프로그램을 실행하니, 여느 화상 회의 프로그램처럼 회의실에 입장한다. 화면은 총 3개다. 면접관들의 화면, 인사팀 직원의 화면(면접관들과는 다른 장소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듯하다), 그의 화면이다. 그는 다른 이들의 화면이 잘 보인다. 그런데, 그 자신이 보여야 할 화면이 까맣다.
면접관 일동 : ...
그 : ...
면접관 일동 : ...
그 : ... ??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일동 : ...
인사팀 직원 : 하얀 얼굴 씨?
그 : 네!
인사팀 직원 : 하얀 얼굴 씨?
면접관 일동 : 지금 입장하신 거예요?
그 : 네! (아무도 듣지 못한다)
인사팀 직원 : 네 입장은 하신 것 같은데... 잠시만요.
그는, 재다이얼을 눌러 전화한다. 인사팀 직원이 받는다.
인사팀 직원 : 네, 하얀 얼굴 씨. 지금 입장하신 거죠?
그 : 네, 입장했습니다. 목소리가 안 들리시나요?
인사팀 직원 : 네... 화면도 안 보이고, 목소리도 안 들립니다. 저희 화면은 잘 보이시나요?
그 : 네.
인사팀 직원 : 면접관님들 화면도 보이시고, 소리도 들리시고요?
그 : 네.
인사팀 직원 : 아, 그럼, 화상 면접 프로그램을 껐다가 다시 들어와 보시겠어요?
그 : 네.
그는 면접 프로그램을 껐다가 다시 실행한다. 피부 아래로 땀방울이 차오르고, 손이 차고 미끄럽다.
면접 프로그램 재접속.
면접관 일동 : ...
그 : 안녕하십니까! 들리시나요?
면접관 일동 : ...
인사팀 직원 : 아... 화면이 안 보이고 소리가 안 들리네요. 면접관님들 잠시만요.
전화가 울린다.
인사팀 직원 : 하얀 얼굴 씨, 종료했다가 다시 접속하신 거죠?
그 : 네, 소리가 안 들리시나요?
인사팀 직원 : 네... 이게... 혹시, 컴퓨터를 껐다가 켜보시겠어요?
그 : 알겠습니다.
인사팀 직원 : 네, 컴퓨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시작해서 들어와주세요. 이게, 화상 면접 프로그램이랑 PT 프로그램이 충돌하는 경우가 가끔 있더라고요.
그는 컴퓨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실행한다. 면접 시작 시간으로부터, 어느새 5분이 훌쩍 넘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이런 식으로 면접이 지연되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PT 문제도 열심히 풀었고, 면접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컴퓨터를 껐다가 켰는데도 화상 프로그램에서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심장은 더욱 세게 뛰기 시작한다.
컴퓨터 다시 시작 이후 재접속.
면접관 일동 : 아, 이제 보이는군요.
그 : 안녕하세요. 잘 들리십니까?
면접관 일동 : 네,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인사팀 직원 : 네, 면접 시작하시면 됩니다. (퇴장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우선 면접에 집중한다.
면접관 : 총 3명 (남자 2 / 여자 1)
좌측, 안경을 낀 긴 머리의 30대 후반 여자 면접관 1
중앙, 안경을 낀, 깔끔한 인상에 팀장급으로 보이는 40대 남자 면접관 2
우측,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남자 면접관 3
그 : 네,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네, 반갑습니다. PT 문제 풀이하신 것 발표해주시면 됩니다. 발표 시간은 10분 정도로 부탁드립니다.
그 : 네, 안녕하십니까! 'Z사' 원가 분석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PT프로그램에서 그의 답지를 띄운다)
1번, 고정비와 변동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정비는 조업도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원가입니다. 즉, 생산량이 많던 적던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원가입니다. 고정비로는 일반관리비, 판매 마케팅비, 감가상각비를 잡았습니다. 마케팅의 경우, 팜플렛을 뿌리는 등의 마케팅을 실시하면 조업도와 아주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최근의 마케팅은 대부분 광고 등으로 이루어지지 팜플렛 등을 생산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고정비로 잡았습니다. 감가상각비 또한, 공장 설비들의 내용연수를 잡고 정액법으로 상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발생하므로 고정비로 잡았습니다. 계산해보면, 고정비는 290원입니다.
변동비는 조업도에 따라 변동하는 원가입니다. 즉, 생산을 많이 할수록 늘어나는 원가입니다. 판매 인건비, 판매 운반비 등은 생산과 판매가 늘어날수록 같이 변동되기 때문에 변동비로 잡았습니다. 또한 원재료비, 제조원가 노무비, 수도 가스 등의 Utility도 조업도에 따라 변동될 테니 변동비로 잡았습니다. 변동비 합계는 715원입니다.
정리하자면, 고정비가 290원, 고정비가 715원입니다.
2번, BEP입니다. 손익분기점 매출을 구하는 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출액에서 변동비를 빼서 한계이익을 구하고, 한계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누어 한계이익률을 구합니다. 이렇게 구한 한계이익률로, 고정비를 나누면 손익분기점 매출액이 나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BEP는 1018원입니다. 즉, 'Z사'가 이익을 보기 위해 최소한으로 올려야 하는 매출이 1018원입니다.
3번, 올해의 증감항목 및 개선 방안입니다. Z사는 올해 매출액과 판매량이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정비인 마케팅비가 증가하였고 변동비에서도 원재료비/운반비/노무비/Utility가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고정비인 마케팅비의 경우는, 판매 수량을 감안하더라도 증가폭이 큽니다.
증감항목을 통해 도출해낸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Z사는 올해, 매출이 증가하여 이익이 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판매 가격이 급격히 증가해서일 뿐입니다. 특히 변동비의 경우, 1개당 투입되는 원가를 계산하면 개당 원가가 오히려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즉, 전년도에 비해 비효율적인 생산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제시하는 개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고정비 측면에서는, 마케팅비 증가율을 주의해야 합니다. 고정비인 마케팅비가 증가하는 마케팅이 아닌, 고정된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쪽으로 마케팅 방안을 바꾸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변동비 측면입니다. 변동비에서는 단위당 원재료비/운반비/노무비/Utility 비용이 늘어났습니다.
원재료비는, 원재료비 절감을 위해 R&D를 실시하고, 원재료 구입을 검토해야 합니다.
운반비의 경우, 물류시스템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노무비 절감을 위해, 공정을 검토하고 공장 인력들의 근로 시간을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공장에서의 수도, 가스 등의 낭비를 절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PT 문제 풀이 발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프로그램 충돌로 인해 면접 시간을 약 10분 정도 깎아먹고 시작했다. 기다리느라 지친 면접관들을 위해, 다소 빠르게 답변 발표를 마친다. 전달할 것은 모두 전달했다고 생각하는 그다.
면접관 일동 : (말이 없다)
면접관 2 :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음... 혹시... 대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배우나요?
그 : 아 네, 원가 회계 수업 때 조금 배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참고했습니다.
면접관 2 : 지금 해주신 PT 풀이는... 상당히 만족스럽군요.
그 : 아,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낱개당 원가를 계산한 이 부분은 정말 [참신하네요/좋네요/창의적이네요/새롭네요.]
그 : 감사합니다!
면접관 2의 마지막 말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당시의 그는 칭찬으로 받아들였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칭찬이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3번의 개선 사항 답변에서, 원재료비 절감을 위해 R&D를 해야한다고 얘기하셨어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공격적인 질문이다)
그 : (살짝 당황했지만) 아, 네. 음... 현재 29번째 기업의 제품 중, 지X 마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X 마루는 내구성과 흡음에 탁월한 고급 마루이지만, 그러한 기능을 위해 나무 함량이 높기 때문에 가격도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지속적인 연구 개발(R&D) 활동을 통해 지X 마루의 나무 함량을 줄이면서도 동일한 기능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원재료비를 낮추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원재료비 절감을 위해 R&D를 해야한다고 답변드렸습니다.
면접관 1 : (말없이 무언가를 적는다)
그는 자신이, 면접관 1의 공격을 잘 방어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그의 PT풀이에 감명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면접관들은 이후 짧게 몇 가지 질문만 한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군대에서 자격증을 따셨는데, 관심이 있어서 딴 건가요?
그 : 네, 군대에서 작업을 하다가, 관심이 생겨서 취득했습니다. 조그마한 백엽상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백엽상도 어찌 보면, 온도계가 들어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공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겨 취득한 자격증입니다.
29번째 기업은 건축자재 제조업체이므로, 공간에 대한 관심을 어필하는 그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학교를 오래 다니셨네요.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1 : 학창 시절, 워킹홀리데이 이외에 신경 써서 한 활동이 있나요?
그 : 독서를 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자 했고, 독서 활동을 바탕으로 읽은 도서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단순히 독서로 끝내지 않고, 목록 작성을 통해 독서 활동을 정리하고 분석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읽었던 책들은 어떤 분야가 많은지, 어떤 분야의 책을 재밌게 읽었는지 등이 정리를 통해 확실히 보이게 되었습니다. 읽은 도서 목록 작성을 통해, 흩어져 있던 독서에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의 독서 방향까지 설정했습니다.
면접관 2 : 네, 그럼, 하얀 얼굴 씨,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세요.
그 : 네, 오늘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화상 프로그램 때문에 연결이 오래 걸렸는데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채용이, 29번째 기업이 ㄴ-2그룹에 속하게 되어 이름을 바꾸고 실시하는 첫 공채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29번째 기업에 지원한 이유는, 29번째 기업이 말하는 공간이 제가 생각하는 공간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29번째 기업은 자연을 닮은, 인간을 담은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며 머무르는 공간을 넘어 이동하는 공간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생각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과 상당히 일치합니다. 29번째 기업 첫 공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회사가 그리는 미래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초반에 연결 때문에 시간이 늦춰진 것은 평가와 무관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일동 :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이 끝났다. 예상보다 어려웠던 PT문제, 갑자기 말썽을 부린 면접 프로그램 등으로 인해 정신없이 치른 면접이다. 하지만 그는 왠지 예감이 좋다. 특히 PT 풀이 직후 면접관 2의 칭찬이 귓가에 맴돈다. 면접을 수십 번 치른 그이지만, 이 정도로 대놓고 칭찬받은 적은 처음이다.
기대감에 한껏 부푼 그는, 언제나 그렇듯 망상의 나래를 펼친다. 만약 1차 면접에만 합격한다면, 저 면접관의 칭찬이 진심어린 칭찬이었다면, 그는 간택을 받았으리라. 그렇다면, 면접관 2는 임원들에게 그를 뽑으라고 강력하게 어필할 수도 있으리라. 독서실 자리에 틀어박혀 1년 넘게 취준만 하던 그가,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ㄴ그룹 핵심 계열사의 경영기획 신입사원으로 거듭나는 것인가.
면접 직후의, 아직 가시지 않은 긴장과 여운 속에서, 그는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