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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보내드리며

다 그렇게 떠나간다

by 오월의고양이
자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게 소원이야


어머님은 화장을 늘 하고 계셨다.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바르셨다.

집은 정갈했으며 음식은 맛깔스러웠다. 당신의 모든 것에 자신이 있었으며 자식들은 순순했다


나는 아버지가 참 좋아.

세상이 참 좋아 처럼 들렸다. 행복하신가 보다 했다.


아프지 말고 자다가 죽고 싶다던 어머니는 아버님과 사별하고도 한 참을 병석에 누워계셨다. 입식부엌에도 앉아 일시던 습관은 노년 두 발로 서지 못 하게 했다.


청초하고 날렵했던 모습은 그렇게 하루하루 작아지고 약해지고 사그라들었다.


선망인지 치매인지 기저귀를 뜯어내고 링거줄을 끊어 손발다.


언니, 제가 세 분을 보내 봤잖아요. 저렇게 팔다리 묶어 연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묶인 엄마를 보다 못한 막내시누이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덤덤했다.


어머님의 죽음은 흩어졌던 자식들을 한데 모이게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각자 헤쳐 모이던 우리다.

장례식장 로비에 걸린 영정사진 중 어머님이 가장 젊다. 두 분이 함께 칠십 즈음에 찍어 준비해 둔 사진이다. 젊은 날의 풍채 좋고 만만치 않은 모습 그대로여서 차라리 좋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꽃에 둘러싸여 우리들을 조용히 지켜보신다. 평소 어머님같지 않다. 침묵이 주는 무게는 컸다. 그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삼삼오오 모여서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 보이고 공감하고 그랬다. 서운함도 감사함도 다른 색깔이 되어 꺼내졌다. 그러나 비슷비슷했다.


한 부부가 아들 둘에 딸 둘, 넷을 낳았다. 막내아들이 네 살 무렵 아픈 아내의 삶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사춘기를 접어든 큰 아들아래로 고만고만한 터울의 아이들 하루아침에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부부가 애를 써봐도 버티기 힘든 세상이었다.


영화배우 스카우트제안도 받았던 최무룡 닮은 자는 당장 먹고 살 걱정에 아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을 틈 조차 없었다. 틈을 탄 친척에게 선산의 지분을 쌀 두 말과 바다. 새끼들을 배곯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폭군남편에 시달리던 여자가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는 그녀의 삶을 통째로 뭉개뜨렸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이 필요했다. 아버지 같은 오빠는 금쪽같은 막냇동생을 살려야 했다.


그렇게 서울의 남자와 강원도의 그 여자는 만나졌다. 여자가 들어오자 집이 따스해졌다. 지런한 여자덕에 깨끗했으며, 따뜻한 밥과 국이 상에 올라왔다. 더 이상 냄새나는 옷을 돌려 입지 않아도 되었다. 녀의 손을 거치면 한 움큼의 밀가루로도 한 소쿠리 빵이 되었다. 녀로 인해 자식들은 투덜릴 엄마가 생겼으며 사춘기 방황 걱정도 들었다.


여자는 전처의 신분으로 살아가길 희망했다. 쉽지 않은 삶 속에서 그녀이지만 그녀가 아닌 채로 아갔다. 일 년에 한 번씩 전처의 제사 때마다 사함을 전했다. 두 아내는 둘이면서 하나였다.


계모 삶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늘 의심스러운 눈길과 험담들이 오갔다. 자식들과의 갈등, 그리고 그것으로 야기되는 잡음 묵인과 버팀 외엔 답이 없었다.


그런 자식들이 하나 둘 또 그들만의 가정을 이루었고 그렇게 부모의 마음을 배워갔다. 손자손녀들은 할머니의 보살핌을 거쳤으며, 자식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자가 만들어 주는 음식들을 넘치도록 감사한 줄 모르고 받아먹었다.


꽃분홍 옷을 입고 뽀얀 피부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어머님은 곱게 누워계셨다. 우리들은 어머님과의 마지막을 위해 함께 모이고, 꽃속에 계신 어머님께 장미꽃을 놔 드렸다. 참다 못한 둘째 시누이는 울부짖었고, 오년을 함께한 막내시누이는 그런 언니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식들을 일일이 배려라도 한 듯,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듯 그렇게 가셨다.

혹한이 지나고 따스하게 내리주는 햇빛은 선산의 땅을 부드럽게 하기 충분했다. 화장후 유골이 되어 더 작아진 어머니는 함에 담겨 그토록 사랑하시고 그리워 하시던 아버님 곁에 모셔졌다. 우리는 다시 울다가 웃다가 죄책감에 속상했다. 마지막 인사는 당신의 본명으로 불리어 예배가 진행되고, 큰 아들이자 목사님인 아주버님의 목소리는 떨렸다. 우리가 다 아는 어머님의 진짜이름은 어느 곳에서도 불리울 수 없었지만, 마지막에는 당신이 되어 떠나시게 된 것이다.


아무나 겪을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다 가신 고 장경애여사의 명복을 빌며 그토록 사랑하신 아버님 곁에서 영면하시길 바래본다.


엄마는 있지
먼지가 되었으면 해
그러니까 화장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거야.
연명치료거부하고
내 몸이 혹시라도 도움 되는 곳이 있다면 쓰이길 바래




돌아오는 길

큰 딸에게 유언비슷하게 전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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