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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영업마인드 증후군(2편 완)

by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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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향 특산물인 곶감, 사과, 호두, 복숭아 자두 등이 작황이 좋아 품질이 우량한 물건이 혹시 눈에 띄기라도 하면 또 그 ‘영업마인드’란 게 즉각 발동이 되곤 했다. 수험생 시절의 ‘리갈마인드’가 ‘영업마인드’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현역 시절 대비 내용물을 다소 줄여서라도 주위분들에게 만나 직접 건네거나 택배등으로 뿌리고 싶은 유혹에 가끔 빠지기도 했다. 이 정도면 아직도 ‘영업마인드 증후군’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겨울엔 나는 고교동기 한의사에게 쌍화탕세트 하나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판매가론 2 ~ 3만 원 수준으로 보였으나 거금 9만 원대란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고가이다 보니 판촉물처럼 배포해볼까 하는 생각을 벌써부터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고향특산물인 비단강산 다슬기도 1 킬로그램이나 2, 3 킬로그램 단위로 친척, 친구 형제에게 배달하는 습관은 현역에서 물러난 아직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 했으니 증권회사에서 정년까지 꽉 채워 근무할 수 있었던 것 아니야?”
이제는 달라져야지, 소득 절벽이 눈앞에 닥쳤는데 제 주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니야?”

주위 친구와 지인들의 지적이 있었다. 이를 전문용어로 변환해 보자면 ‘네 꼬락서니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 아니야’였다.


문구류나 생필품, 음식물을 구입하거나 주문할 때도 최소단위를 대폭 줄여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고 일찌기 설파한 옛 유명한 철학자의 말을 매번 새길 팔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영업마인드 증후군에서 파생되는 습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A4 복사용지, 볼펜, 페트병 맥주, 라면, 참치캔등을 묶음 단위로만 판매하는 대형마트의 영업전략의 다른 이름인 ‘꼬드김’을 제대로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포장단위로 챙겨서 쇼핑기회를 줄이면 교통비 등이 절약될 것이라는 소박하고 순진한 판단에서 이 꼬드김에 매번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과거 현역시절 고객은 물론 주위 친구로부터 ‘손 큰 사람’으로 평판이 굳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선물 단위 중 한 개의 선택지는 아예 건너뛰고 최소한 2개(세트)를 택하는 오랜 습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종래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줄었음에도 소비 수준은 그 이전을 유지한다는 상대소득가설 중 ‘습관타성가설’ 범주의 한가운데 나는 늘 자리했다. 현역에서 물러났음에도 어느 누구도 언젠간 항상 내 평생고객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져 있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묶음용 음식품, 생필품 등 꼬드김에 나는 기꺼이 응하는 우량고객에 등극하다 보니 내가 쇼핑바구니에 챙겨 담아 온 라면, 컵라면 닭가슴살 캔, 참치캔 등은 늘 유통기한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이렇게 대량으로 챙겨 놓으면 이 또한 무시 못할 비용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업마인드 굴레“에서 점차 벗아날 수 있는 비결에 관해 늘 진지하게 생각해오고 있었다. 매우 효과적인 '연착륙방안‘이 무엇일까에 관해 나름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차피 내게 필요한 물건이니 작은 단위로 쇼핑 바구니에 담는 때보다 묶음용을 바구니에 담는 것이 마트를 실제로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들다 보면 교통비등 비용을 오히려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과감히 버려야 할 것 같았다.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도 떠올랐다. 쇼핑품목의 최소 구입단위를 획기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한꺼번에 많이 들여와서 남는 것보다 때론 모자라는 것이 오히려 한계효용은 줄어들지 않고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한 번에 대량으로 구입할 때 누리는 할인 혜택보다 모두 소진 시까지 보관비용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신입사원 연수생 시절이었다. 인사연습을 힘들게 이어가고 있었다. 머리가 책상 위에 부딪힐 정도로 고개를 충분히 숙여 인사를 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게 들어야 했다. 신입사원 시절 우리 지점장이 일찍이 일갈을 한 바가 있었다. 우리는 금융서비스업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고객을 위한다는 마인드가 없는 사람, 이 업이 본인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은 당장이라도 다른 곳을 알아보아야 했다. 다소 과격하게 강조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로웠다.


”그렇게 기를 쓰고 영업마인드를 장착하고 죽을 각오로 뛰었으니 정년까지 채울 수 있었지요? “

고향 친구의 최근 지적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할 때인 것은 분명했다.

엊그제의 일이었다. 고향선배의 농장을 다녀왔다. 빛깔과 맛이 좋은 토마토가 5 킬로그램 단위로 깔끔한 박스로 포장되어 있었다. 비교적 고가가 아니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평소 내게 도움을 준 주위 친구 친지들에게 배포할 작정으로 우선 5박스를 내 애마 트렁크에 자연스럽게 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뿔싸, 영업마인드 증후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날을 기대하기란 조만간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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