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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잃은 여인

반 곱슬머리

by 정인



누군가에게는 외모가,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이 콤플렉스가 되곤 한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무리 정성껏 손질하고 나가도 머리는 금세 곱슬곱슬 고불거린다.

습기의 장난일까. 습한 날에도 어김없다.


 나는 파마보다 늘 생머리 매직을 택한다. 머리숱이 남들보다 많아 미장원에 가면 반드시 숱을 쳐야 한다. 사람들은 풍성한 머리숱을 부러워하지만, 나는 오히려 숱이 적고 차분한 머리를 동경했다.


 여름이 되면 묶지 않고 다닐 수가 없다. “머리 좀 어떻게 해봐.” 그런 말을 들으면, 숱 많은 머리가 더워 보이는 모양이다. 예쁘게 파마를 했는데도 결국 잘라버린 적이 있다. 남의 말이 괜히 신경이 쓰여 미장원에서 긴 머리를 싹둑 잘라낸 것이다.


 물론 관심이 있으니 한마디 해주는 것이겠지만, 지나친 말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짧은 머리는 또 다른 불편함을 낳는다. 낚시터에서 바람에 흩날리면 금세 엉켜버린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고향 친구는 “파마머리가 훨씬 예쁘고 섹시해 보이는데 왜 풀었어?” 하고 묻는다. 그럴 때면 문득 ‘나도 아직 여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리 이야기에 그저 웃어넘기려 하지만, 마음 한쪽은 흔들린다.


 내 친구는 머리 스타일조차 개성대로 지킨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빛으로 당당히 서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기울어 버린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한다. 알면서도 놓치기 쉬운 것, 그것은 흔들림 없는 자기 자신이다.


 남편은 조용히 살라 한다. 오지랖 떨지 말고. 요즘 들어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머문다. 남에게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말만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내 반곱슬머리는 날씨에 따라 이리저리 모양을 바꾼다. 사람들의 말도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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