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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01. 2023

10  나희덕 시인의 '상현(上弦)'

상현(上弦)

나희덕 시인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들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쟀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시적 오류가 있음에도 빛나는 시


<시시콜콜>​​달, 특히 보름달은 사람들에게 해와는 다른 촉촉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달 속에서 떡방아 찧는 토끼를 연상하거나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기억. 달을 보면 감정이 순해져 아귀다툼을 내려놓게 되고 달 앞에서는 마음이 유해진다. 시인도 아마 달에 대한 느낌이 남달랐지 싶다.

​시인은 놀랍게도 상현달에서 잉태한 여신을 본다. 그 여신이 능선 위에 앉아 쉬다가 인간인 자신에게 들킨다는 급기야는 상상이 예언자 이사야에게로 시를 끌어간다. 부러우리만치 놀라운 상상력이다. 뭔지 모를 충만감으로 가슴이 뻐근하다. 아마 시인도 가슴에 가득 차 오르는 느낌을 담아내려고 상현달이라고 했나 보다.

상현달은 음력 7~8일경에 떠서 자정을 기점으로 이지러진 달이다. 시인은 새벽녘에 본 달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하현달이어야 옳다. 하현달은 음력 22일~23일경에 뜨는 반달이다. 박완서 작가의 '미망'에도 달을 표현한 문장이 나온다."자정이 지난 지 오래인 듯 하현달이 뜰아래 추녀 허리에 처연하게 걸렸다."라고 표현했다.

 하현을 상현으로 표현한 건 분명 시적오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빛나는 건 멋진 상상력과 놀라운 감성, 우리말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이미지를 그려 놓았다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만의 시적 정서 때문일까. 다시 읽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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