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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04. 2023

11  이면우 시인의 '화엄경배'       

화엄경배

이면우 시인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 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 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오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시시콜콜> 생활 시면서 노동 시다. 이 시를 읽다 시인이 몹시 궁금해서 초록창을 열고 찾아봤다. 시에서 느껴지듯 시인의 직업이 보일러 공이다. 보태고 빼지도 않고 진솔하게 보여주는 시는 건강하고 책임 있는 가장의 모습이다.


정보에 의하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시인은 공사판에서 막노동 일도 했다. 보일러공인 시인은 먹고살기에 바빠 수상식 자리 나 시인들의 모임에도 얼굴 한번 내 비친 적 없다. 밥벌이에 충실할 뿐이다.

불길 속에서 밥이 나오고 돼지고기, 아이들의 공납금이 나오는 걸 알기에 일에 최선을 다한다. 오죽하면 그런 마음일까. 자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족이 불행해질까 봐 승용차 운전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도 그랬지만 행간을 건널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육신마저도 내놓겠다는 시인, 이 시대 남편이며 아버지들의 자화상 같아 가슴이 먹먹하고 짠하다. 지금이 겨울이설까. 이 시가 군불 땐 구들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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