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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12. 2023

13  문태준 시인의 '가을 모과'

가을모과

문태준 시인

 

 

울퉁불퉁한 가을모과 하나를 보았지요

내가 꼭 모과 같았지요

나는 보자기를 풀듯

울퉁불퉁한 모과를 풀어 보았지요

시큼하고 떫고 단

모과 향기

볕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의

조각 향기

볕은 둥글고

바람은 모나고

서리는 조급하고 

달빛은 냉정하고

이 천들을 잇대서 짠

보자기 모과

외양이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나는 모과를 쥐고

뛰는 심장 가까이 대보았지요

울퉁불퉁하게 뛰는 심장소리는

모과를 꼭 빼닮았더군요

시집 <먼 곳>. 66쪽의 詩



<시시콜콜> 사람들은 '모과'하면  먼저 생김새를 들춘다. 말의 귀가 없는 사물이어서 망정이지  사람이라면 모르긴 해도 파르르 해져선 드잡이 당하기 십상이다. 모과를 보면 아무렇지 않게 '못 생겼다'라고 하거나 심지어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로 단정 지어 버린다. 그러고 보면 외모 따지는 건 오래된 편력인가 보다. 그렇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모부터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시인은 겸손하게도 자신이 울퉁불퉁한 모과​를 닮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보자기를 풀 듯 그럴 수밖에 없는 울퉁불퉁한 모과의 속내를 제 속에  빗대어 풀어놓는다. 시고, 달고, 떨어져서야  비로소  향기를  풍기는 모과,  단단한 과육 속에 볕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을 잇대어 짰다는 표현이 참 아름답다. 시인의 심장은 '쿵쿵쿵' 뛰지 않고  울뚝불뚝  뛴다. 모과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시인이  시고, 달고, 떫은 시절을 견뎌낸  모과 같은 사람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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