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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Apr 21. 2023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러쿵저러쿵


몬스테라 뿌리가 밖으로 나왔는데, 흙속에 묻어줘야 하지 않나?"


며칠 전 일이다.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던 짝꿍이 밥 먹다 말고 몬스테라를 보며 한 말이다. 짝꿍은 32년째 한솥밥을 먹는 남편이다.

밥 먹다 말고 놀라  몬스테라가 아닌 짝꿍을 한참 봤다. 어, 저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 몬스테라를 다 기억하지? 언젠가 거실 구석에 있는 몬스테라를 가리키며  건성으로 묻길래  나도 지나가는 말로 흘린 적 있었는데. 별 일이다.

짝꿍은 식물엔 관심 1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 꽃이 피는지, 열매가 열렸는지 무관심이다.


어느 날은 꽃 피면 나 혼자 보기 아까워 호접란 꽃이 폈어, 국화꽃이 너무도 예쁘게 폈다니까, 어느 집 개가 짖냐는 식으로 한 귀로 듣고 흘러 버린다.

어쩌다 집 비울 일이 생겨 식물부탁하면 소 닮고 듯해서 죽어나간 식물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보낸 식물 중에는 친구가 생일선물로 거금?을 들여서 샀을 단풍나무 분재 화분도 있었다. 분재는 분이 얕아 물을 잘  챙겨 줘야 한다. 선물 받은 단풍나무는 작아도 세월을 품은 고풍스럽고수형도  멋졌는데 말이다.

그 후론 짝꿍한테 식물에 관해선 그 어떤 부탁이나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식물에 관심 없다고 해도 그렇지.  어쩜 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겨울엔 새벽에 출근하면서 전날 밤 허리가  아프다길래 쑥뜸을 떠줬었는데 그 냄새가 심했던지 거실 문을 열어 놓고 가는 바람에  6년 정도 키운 커피나무가 수난을 당했다. 그날이 겨울 들어 최고 춥다는 영하 20도 한파였다.


그날의 만행으로 마치 예뻐지기 시작한 커피나무는 냉해를 입어 잎이 한쪽이 우수수 무너져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능청스럽게 분밖으로 나온 몬스테라 뿌리를 걱정하고 있다니. 참 모를 일이다.

사실 몬스테라는 흙속으로 뻗는 뿌리도 있지만 식물 특성상 잎을 층층이 내면서 위로 자라기에  분 밖으로  뻗는 공기 뿌리가  공중습도에 최적화  돼 있어 특이하고 매력적인 식물이다.​ 

​어제 몬스테라를 좀 더 큰 집으로 이사시켰다. 분갈이  얼마 안 되긴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크는 몬스테라에 비해 화분이 작아 보이기도 하고 짝꿍의 식물에 대한 뜬금없는 관심에 말대접도 할 겸 공기 뿌리를 분속에 넣고 흙을 충분히 채워졌다.


분갈이 해준 몬스테라  사방으로 질랠래팔랠랫해서 묶었다.

​" 근데, 웬일이래.  몬스테라를 다 기억하고, 차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 고것 참 잎이 특이하게 생겼어" 넓적한 잎사귀마다 칼로 오려낸 듯한 찢잎이 저 사람한텐 무척 인상적이었나 보다.

정말 모를 일이다.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하는가 보다. 기대된다. 저 사람이랑 더 살면 무슨 놀랄 일이 생길는지.

그나저나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나이 들어가니 호르몬 이상 증후군인지 꽃순이인 나랑 살다 보니 짝꿍도 슬슬 물이 들어가는지 말이다.


아파트 단지에 개나리 목련이 지자 바통을 이어 철쭉꽃이 흐드러졌다. 봄엔 사람보다 꽃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도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식물들 분갈이 흙도 필요하고 카랑코에도 몇 개 살 겸 이번 주말엔 저 사람한테 꽃시장 가자고 옆구리 찔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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