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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May 11. 2023

연못속의 고요

이러쿵저러쿵


복효근 시인의 <겨울 궁남지>란 시를 읽다  순간 뭐에 홀린 듯 신경줄이  당긴다. 지난 궁남지에 꽃 지고 연밥 든  꽃대궁을 보며 아름다운 연꽃을  상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오랜 기억 속 늪에 빠져든다.  아잇  일이라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선연하게  떠오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무의식 속 잠재되어 있던 예민함이 자루 속 뾰족한 송곳처럼 삐져나와 부지불식간에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데려다 놓는다.


 아마  살 즈음이었지. 언니 오빠들 속에서 존재감 없던  나는 학교 갔다 오면 엄마를 따라 논으로 밭으로 쏘 다니는 걸 좋아했다. 특히 엄마랑  새쩍골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새쩍골은 부모님이 장만한 논밭 중 유일하게  땅 뙈기라는  표현에  걸맞게 아주 작은 밭이었다.  가난한 우리집의 얼마 안 되는 논밭은 집 가까이에  있었는데 유독 밭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경운기나 수레가 들어갈 만한 길이 안 나 부모님에겐 그 밭을 일궈 먹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서  종종 푸념 섞인 엄마의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하면  걸어서  20분 남짓 가야 하는 곳이다.  이상하게도  근동은 다 널찍널찍한 논이었는데  우리 밭만 중간에 끼어 작은 섬처럼 떠 있었다.


 6월이면 논 보리가 노랗게 익어 황금벌판을 이루면 농부들은 보리를 베어내고 논을 갈무리하여 모를 심었다. 모내기끝난 여름철이면  백로나 뜸부기 같은 새들이 이를 찾아 그곳으로 날아들었다. 끝도 갓도 없는  광활한 초록 들판에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파노라처럼 출렁이는 들판의 하얀 새떼들을 품은 새쩍골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엄마는 내게   그곳이  골인지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굳이 물어본 적  없었어도 여름날 풍경으로도 그곳이  새쩍골로 불리는지 짐작이 갔다. 엄마한텐 귀 빠진  밭을 일구는 일이 여러모로 번거롭고 힘들었을 테지만 나는  왠지 그 밭에 가는 것이 좋았다.


 봄이면  시계추처럼 엄마 뒤를 쫓아 구불구불한 길을 걸가논두렁에 피어나는  민들레꽃, 제비꽃도 보고 풀빛이 짙어지는 오월이면 삘기를 뽑아 껍질 속엣것을 입에 넣고  껌처럼 씹기도 하고  자운영 꽃이 흐드러진 논을 뛰어다니며  한아름 자운영 꽃을 꺾던 재미가 소풍길처럼 설렜다.

 

 그 밭에다는 참깨나 들깨, 콩을 심어 먹었다. 그렇게 씨앗을 심어 놓고 엄마랑 나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호미 들고 그 밭에 갔다.  싹이 잘 났나 살펴보고 고랑에  번성한 풀도  호미로 곤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다보록이 올라온 참깨나 콩싹을  두세 개만 두고 솎아 주는 걸 보고 나도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따라서 해 보기도 했다. 날이 가물다 어쩌다 비라도 와 가보면  참깨나 콩이 폭풍성장하여 밭이 온통 초록빛으로 출렁거렸다.  엄마는 심는 대로 잘  자라 줘 흡족한  것인지 아니면  농사일에 힘든  엄마 스스로를 위로한 말인지는 모르나 뭐라 뭐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나는  그런 엄마가 뭣 때문이었는지 참 좋았다.


그 밭 에는 방죽(연못)이 하나 있었다. 그 방죽은 저수지 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물빛이 초록인 게 수심이 제법 깊어 보였 때마다 물이 남실남실 거렸다.  엄마말에 의하면 그 방죽은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고 지독한 가뭄에도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 없어 그 일대 논 농사에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나는 그 밭에 가면  방죽 가에서 놀았다. 길가에 납작  엎드려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수분처럼 마르지 않는 그 방죽 속엔 은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봄빛이 완연하면 그 전에는 안 보이던  희한한 수초들이 세포분열을 하듯 물위를 덮었다. 그 속엔 송사리도 많았다. 방죽가엔 크고 작은 우렁이들이 기어 나와 따뜻하게 데워진 수초에 들러붙어 있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물뱀이 수초 위를 미끄러지듯 유유히 지나가것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호미질을 하면서도 눈은 늘 연못가를 배회하는 나를 주시하곤 했다. 내가 처음  따라왔을 때부터 마는 연못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연못 주변에서 자주 놀았다. 원래 사람 심리가 뭐든 못하게 말리면  더 하고 싶은 것인지 호기심 천국이었던 나는 엄마의 눈을 피해 슬금슬금  방죽가를 기웃거리곤 했다. 방죽 가의  오종종한 풀꽃도 풀꽃이지만  그 안이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돌멩이를  물속에 던져보기도 하고 풍덩, 하고 들리는 대수롭잖은 소리도 내 귀엔 이상하게 들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속은  때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고  미스터리였다. 저 속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물고기? 우렁이? 두꺼비, 개구리? 아님, 물귀신? 해놓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다 풀썩 주저앉았다. 그날따라 물빛은 무섭게도  검은 초록이었다.


 언젠가 엄마가 귀띔해 준 이웃 마을의  미친 여자가 빠져 죽었다는 연못이 어쩜  이곳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오금이 저렸다. 물에 퉁퉁 불은 미친 여자가 금방이라도  머리 풀고 나와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길 것만 같아  단숨에 엄마 한테로  뛰어갔었다.

 

그  후로  이 방죽은 아예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밤에 혼자서 화장실을 가거나  학교 끝나고 친구랑 헤어져 골목길로 들어설 때도 문득문득 생각나곤 했다. 방죽은 두려우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그곳을 들여다보고 온 날이면 밤새 설명할 수 없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 그날이 온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는 밭일에 열중이셨다. 나는 여전히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가 되어 뛰어다니기도 하고 밭고랑에 앉아 놀이를 하다 방죽가로 눈을 돌리게 됐다. 화창날씨만큼이나 방죽엔 연잎이 흐드러져 있었다. 널따란 연잎이 방죽 안을 가득 메웠다.

 

초록이 넘실대는 연방죽은 때마다 술렁거렸다. 나는 그것을 보며  연잎 밑에 사는 괴생명체 때문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연방죽을 돌다가 연잎 사이에 빼꼼히  핀 연꽃 한 송이가 눈에 띄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활짝 핀 연분홍꽃은 너무  예뻤다. 우리 집 담장에 핀 장미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토록 의문투성이의 방죽 속에서 피어 올라왔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넋을 놓고 한참을 보다가 누군가 내게 한 소리를 들었다.


"꺾어. 꺾어 봐." 하고 환청처럼 들렸다

 

 그래 꺾자. 저 연꽃을 꺾어 엄마 줘야.  발 하나를 방죽 쪽으로 내딛고 조심스레 손을 뻗자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했다. 꺾을 수 있어. 내 속에  다른 '나'가 자꾸 부추겼다. 나는 기어이 저 꽃을  꺾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있는 힘껏 팔을  뻗는 순간 그만 발이 물속으로 쭈르륵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방죽으로 빠지면서  '엄마'하고 소리친 모양이다. 내 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엄마가 뛰어오셨고, 내가 눈을 떴을 땐 엄마나 나나 흠뻑 젖어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내 몰골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엄마는 한동안 말이 안 나왔다고 했다.  주의를 주었는데도 한사코 듣지 않았으니 속으로 얼마나 미웠을까. 내가 엄마였다면  아마 엉덩이 몇 대쯤 부쳐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가위눌리는 꿈을 꾸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무리 땅바닥을 딛으려고 해도 당최 바닥이 없는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꿈이었다. 그 후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따라  쩍 골을 가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버지는 그 밭을 옆 논 주인한테 팔았고, 논주인은 우리 밭을 사들여 논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그때를 떠 올리면 이제는 섬찟한 무섬증보다는 솔깃한 망설임이 있다. 사람들은 진흙 속에서 순진무구하게 피어 오른 연꽃을 보면 감탄한다. 진흙탕에서 어쩜 저렇게 예쁜 꽃이 피는지 모르겠다고. 모름지기 인간도 연꽃다운 삶이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그 위대한? 연꽃이 마냥 이쁘지만은 않다. 재작년인가, 연꽃이 흐드러진 전주 덕진공원을 찾았을 때도 맘 한 편에선 조심스러웠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물러서서  연꽃의 자태를 감상했다. 어쩌면 여전히 내 관심은 연꽃을 품은 분화구 같은 물속이 아닐까.  물속은 여전히 깊이를 알 수 없어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처럼 영원한 천길 미궁 속이다.

 

시인의 말처럼 무슨 고요가 이리도 오래  마음을 들끓게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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