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May 16. 2023

 글쓰기는 모와 피를 구별해 내는 일


5월과 6월은 모내기 철이다. 농부는 4월부터 볍씨를  안치고 싹이 트면 논에 물을 잡아 써레질로 논바닥을 편편하게 고른 다음 이앙기로 모를 심는다. 무논에 심긴 어린 모는 몸살을 앓으며 적응 기간을 거친다. 땅맛을 알고 뿌리가 안정되면 성글던 모포기에도 살이 차 오른다. 모포기가  풍성해져 논이 초록빛으로 물든다. 그 초록빛 속에는 식량이 될 모만 자라는 게 아니다. 반드시 풀들도 함께 자란다.


, 물달개비, 둑새풀, 이 그것들이다. 물달개비나 둑새풀은  한 눈에도 식별이 가능하다. 생김새가 모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는 다르다. 모와 매우 닮아 있다. 모포 기와 나란히 있으면 당최 구별이 안 된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 눈에나 보이는 법이다. 모가 무릎정도 자라면 농부는 피사리를 한다. 피사리란 논에 들어가  풀을 뽑는 것을 말한다.

 

농부는 넓은 논을 다니며 피만 족족 골라낸다. 모같은 피를 뽑아 논둑으로 내친다. 초보 농사꾼은 피를 골라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을 지켜보면 감탄을 할 것이다. 피만 쏙쏙 뽑아내는 작업이 영험하게 보일 테니까, 하지만 농부도 처음부터 한눈에 피를 알아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농사일에  매달려 관심과 공을 들인 결과이리라

 

 그러고 보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삶도 그렇다. 밥벌이든 취미든 일이 손에 익으려면 물집도 잡히고 굳은살 배기는 숙련기간이 필요하다.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생활의 달인들을 보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각자의 일에 부단한 노력과 땀이 점철 돼 있기에 그 사람들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를 예로 들면 그렇다. 소설가 김훈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단문이 매력적이다. 칼날을 벼리듯 날 선 문장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흡입력 또한 대단하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우직하고 성실함이 농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노 작가는 자신만의 문체를 쓰기 위해 말의 군더더기를  어내는 작업을  무속에서 피를 골라내는 농부의 작업처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래전 모 일간지에서  봤던 기사를 지금도 기억한다. 작가는  단단한 글을 쓰려고 건조한 언어의 구조물인 법전을 끼고 산다는 기사였다. 독자로서 존경스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과 글쓰기도 논에서 모와 피를 구별해 내는 일이라고. 농부가 한눈에 피를 알아보는 경지에 오른 것처럼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것만이 그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고.



사진출처: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연못속의 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