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비평 16. 『술래가 된 낙타』, 이윤희 글, 신보미 그림
이윤희는
1990년 《아동문예》에 단편동화 「남희가 데려온 봄」,
같은 해 《새벗》에 장편동화 『하얀 저 눈언덕 너머』(새벗, 1992)로
등단한 지 30년이 된 중견 작가이다.
저학년 동화집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푸른책들, 1995)부터
청소년 소설 『네가 하늘이다』(1996년 현암사에서 장편동화집 1~4권으로 출간되었다가,
2008년 푸른책들에서 청소년 역사소설 합본호로 재출간되었다.)까지
작품 활동 스펙트럼이 꽤 넓지만,
30년 가까이
서른 편 가까운 우화를 펴낸 사실에서
다른 작가들과 뚜렷이 변별되는 지점이 있다.
최명표는 「못난 동물이 잘난 인간 가르치기 - 이윤희, 『코뿔소에게 안경을 씌워주세요』평」에서,
“한국 아동문학계에서 동물성 이미저리를 취택하는 경우는 지극히 예외에 속한다.
…
이윤희의 동물성 이미저리에 대한 애착은 대단한 주목을 요한다.”
(『한국아동문학의 현단계』, 신아출판사, 2018)고 하였다.
‘우화(寓話)’라고 말하면,
누구나 이솝 우화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만큼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그만한 우화가 아직 나오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형건은
동물우화 연작 동화집 『코뿔소에게 안경을 씌워 주세요』(서광사, 1993)와
『오리너구리의 사과 편지』(두산동아, 1996)를
“현대판 이솝우화”(〈작가 이윤희와 현대 작가의 정체성에 대하여〉,
《시와동화》, 2009 가을)로 평가하였다.
이윤희 우화와 이솝 우화의 가장 큰 차이는
길이이다.
이솝으로부터 비롯되어서인지,
‘우화’는 교훈 전달을 목적으로 한 짧은 이야기라고 여겨지지만,
이윤희 우화들은 각각 단편 한 권이 될 만하고, 길이도 다양하다.
『술래가 된 낙타』는 2000자 조금 넘고,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상어는 무엇을 할까?」(《아동문학평론》, 2020 봄)는 8000자에 가깝다.
『술래가 된 낙타』는 2020년,
“동물을 테마로 … 30권 이상”을 전제로 기획되어 출간된 그림책 가운데 한 권이다.
『이윤희 동화선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작가의 말’에서
“동물의 생태를 보면서
나는 그 속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내 속에는 무척 많은 동물들이 다양한 얼굴을 하고 살고 있는 모양이다.”
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낙타’도 작가의 얼굴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리고 무릎에 얼굴을 묻은 어린 아이(62~63쪽 그림)에게 말을 건네듯이
“언젠가 네가 서 있는 곳이 사막이라고 느껴지거든,
…
술래가 되어 보렴.”하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낙타는
작가뿐 아니라
어린 독자(낙타=술래=작가=독자)와도 동일시된다.
『이솝 우화』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훗날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진 “교훈”이 명시되어 있다.
이솝은 「강물에 똥을 눈 낙타」, 「낙타와 코끼리와 원숭이」,
「낙타와 제우스」, 「춤추는 낙타」, 「처음 본 낙타」에서
욕심을 부리다가 가진 것을 잃거나 멍청하거나 서투른 캐릭터로
낙타를 규정한다.
그러나 이윤희는
교훈보다 물음을 던지는 형식으로,
‘기원전’ 『이솝 우화』와 결이 다른,
새로운 형식의 우화를 내놓았다.
『술래가 된 낙타』에서 낙타는
가뭄으로 더 척박해진 사막에서 친구들을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나서는 이타적인 동물로
새로운 이미지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윤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낙타는
“찾으려고 애쓰면 보인다는 이치”를 깨달았다고 했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낙타가 오아시스를 찾았다고
끝내 말해 주지 않고 이야기를 맺는다.
그렇다면 낙타는
오아시스를 찾았을까?
찾지 못했을까?
어쩌면 낙타가
이야기 끝에 찾은 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신기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낙타는
다시 일어나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걸어갈 것이다.
이윤희는
‘오아시스를 찾은 낙타’가 아니라
‘오아시스를 찾(고 있)는 낙타’를 그려내는 까닭이다.
작가는
독자를 술래로 남겨 놓고,
오아시스를 찾는 결말을 독자에게 맡긴다.
독자가 찾아야,
비로소 낙타도 찾는다.
그런데 칼새는
하늘에서 먹고 자는 것까지 해결하며
최대 10개월 동안 날 수도 있다는데,
왜 스스로 오아시스를 찾아나서지 않고
낙타의 등을 떠밀었을까?
낙타는
며칠 안 먹고 물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동물인 데다
‘물 냄새를 따라서’(61쪽)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어서다.
바람이 만들어낸 사구(48~49쪽 그림)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걸쳐 있는 룹알할리 사막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림작가가 선택한 단봉낙타도
사우디 아라비아가 서식지이다.
바르한(barchan)은
낙타 두 줄 속눈썹(16~17쪽 그림)과 함께
생태에 충실한 글과 잘 어우러진다.
21세기,
호모 사피엔스는 ‘코로나19(COVID-19)’라는 사막을 건너고 있고,
친구들을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나선 ‘술래가 된 낙타’들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낙타가 될 수도,
모래사막에서 낙타를 일으켜 세워 준 조력자 칼새가 될 수도 있겠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던
어린 왕자 말처럼,
선인장에 깃든
거미, 거북, 뿔도마뱀, 칼새처럼(29쪽, 39쪽 그림)
오아시스를 따라
빛나는 생명들이 살아간다.
1993년에 발표된 이 단편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앞으로 100년쯤 지나면,
이윤희 우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윤희 우화』가
『이솝 우화』와 나란히 읽혀도 좋겠다(그때는 인쇄물이 아니라 영상물일 수도 있겠다.)는
즐거운 생각에 아쉬움이 있다.
『술래가 된 낙타』에서
다섯 차례나 되풀이 되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인용은 따져보아야겠다.
『‘반허락’ 여우 우화』(파랑새어린이출판사, 2003)에 나오는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와 함께
우리 나라 전통놀이인 줄 알았는데,
최근 일본 동요라는 논쟁이 있는 까닭이다.
『펭귄 가족의 스냅 사진』(하마, 2020)에서
‘단도리’도 옥에 티다.
‘준비(準備)’나 순우리말 ‘채비’로 바꿀 수 있어야겠다.
동학농민전쟁을 그려낸 『네가 하늘이다』 작가로서
역사 의식이 남다른 만큼
재출간되는 책에 조금 더 치밀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