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비평 18. 『김병규 동화선집』, 김병규
고음은 파장이 짧지만,
저음은 파장이 길어서 멀리까지 들린다.
김병규 작가는
낮은 소리가 멀리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윤사섭 동화선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3)에
김병규 작가가 쓴 해설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 윤사섭의 동화들은
주제가 뚜렷하지만,
그 주제를 풀어내는 방법이 완곡한 데다
아주 나지막한 어조로 들려주기 때문에
독자의 듣는 자세(마음가짐)에 따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목소리가 크다고
그 내용이 강한 것은 아닌 법이다.
그렇지만 큰소리쳐야 귀를 기울였던
우리 사회의 병폐가
문학에도 깊이 스며든 게 현실이다.
그 탓에 윤사섭 동화의 주제의식은 드러나지 못하고,
곱고 여린 분위기만 알려진 점이 안타깝다.
『김병규 동화선집』(김병규,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에 실린 17편은 모두,
독자에게 ‘하십시오체’로 들려 주는
‘외유내강(外柔內剛) 동화’이다.
심지어 「잘난 사람이 가는 감옥」은
『고장-하늘이 고장 나야 무지개가 뜬다』(파랑새어린이, 2001)에서
“국어 학자들이 사전을 만들다가 이상한 문제에 부딪혔다.”였던 것을
‘부딪혔습니다.’로 바꾸기까지 했다.
「꽃으로 성을 쌓은 나라」,
「꽃 파는 총각」,
「요리사의 입맛」에 나오는 임금님은
타이틀 롤(title role)은 아니다.
하지만 ‘성문지기 아이, 꽃 파는 만돌이, 어린 요리사 도마’를
백성이게끔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른바 명품 조연(신 스틸러, scene stealer)이라고 할 만하다.
「꽃으로 성을 쌓은 나라」를 읽으면
임금님은 왜 임금님이고,
장군은 왜 장군인지 알 수 있다.
“그 조그만 나라만 무찌르면 이 세상은 다 내 손아귀에 들게 된다.”,
“칼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두 번이나 물러난 장군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분하고, 백성들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라는 서술로 보아
장군은 충분히 이웃 나라 임금으로 설정될 수 있었음에도,
굳이 “부하의 말을 귀담아 들을 장군이 아니었습니다.”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기대하는 위정자(爲政者)란
권위가 아니라,
‘성문 바로 안’ 대장간에서 병사들의 칼을 망치질하여 호미로 바꾸어 주는 임금님이다.
그런 대장장이 임금님이라면
부하뿐 아니라 아이의 ‘조그만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터이다.
같은 맥락에서
「꽃 파는 총각」(1985)의 마지막 세 문장은
3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빛난다.
무릇 역사란 임금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임금님이 백성을 기억해 주기를,
작가는 바란다.
- 나라는 평화롭기 그지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임금님을 칭송하였습니다.
임금님은 오래오래 만돌이를 못 잊었습니다.
「요리사의 입맛」에는
앞선 두 편과 달리 제멋대로 임금님이 등장한다.
입맛이 매우 까다로운 임금님의 관심은
오직 먹는 데만 쏠려,
농사가 흉년인지 풍년인지,
국경을 지키는 군대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모르다가,
이웃 나라에 산과 강을 내주고
마침내 궁궐을 버리고
피란을 떠날 지경에 이른다.
그 때 비로소,
적을 물리치기 위해 땀 흘리는 젊은이들 속에서
차례를 기다려 죽 한 사발을 받고,
선 자리에서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임금님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임금님의 입맛을 따라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에 길들여진 궁궐 요리사들이
산나물과 나무 열매로 끓인 죽을 거부하자 칼을 뽑아 든다.
“이 죽을 안 먹는 자는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
진짜 임금님이란
진짜 백성이 누구인지 가려내는 눈을 가졌다고,
작가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김병규 작가는
「옷 욕심」(『종이칼』, 스콜라, 2012)에서
「울 줄 아는 꽃」(1988)과 「거인의 옷」(1991)을 셀프 인용했다.
「옷 욕심」이
「만년 샤스」(방정환)의 새로 읽기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각각 「바위나리와 아기별」(마해송, 1923),
「원숭이 꽃신」(정휘창, 1977)의 변주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바위나리와 아기별」과 「울 줄 아는 꽃」에서
‘꽃의 울음’을 대하는 작가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쓸쓸하고 고요한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무를 기다리던 아름다운 오색꽃” 바위나리꽃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스스로를 위해 운다.
그러나 “걸핏하면 찔끔거리고 미움을 받다가
꽃밭에서 쫓겨나 응달진 골목에 사는 샛노란 앉은뱅이꽃”은
남을 위해 운다.
앉은뱅이꽃은
거미줄에 걸려 밤새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빠져나온 날갯죽지 부러진 나비가 불쌍하고,
낯선 곳으로 팔려 와
엄마를 그리워하며 낑낑거리는 강아지가 가여워서
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울 줄 아는 꽃」에서
“운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가”라면서,
발을 헛디뎌 땅으로 떨어진 별님은
꽃의 울음 소리를 들어야
다시 하늘 나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록 바다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보더라도
‘바위나리꽃의 울음’은
아기별님이 별나라 임금님 허락 없이 바닷가로 내려오는 원인을 제공하고,
바위나리꽃 자신뿐 아니라 아기별님마저 ‘바다’로 풍덩 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의 울음’은
별님의 손을 잡고
자신도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결말을 이끌어 낸다.
이처럼 「울 줄 아는 꽃」은
‘스스로를 위한 울음’을 ‘남을 위한 울음’으로,
최종 종착지를 ‘바다’에서 ‘하늘’로 대비시키며,
「바위나리와 아기별」의 비극적 사랑을
한 차원 높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거인의 옷」에서는 약자를
「원숭이 꽃신」보다 더 비참하게 추락시킨다.
「원숭이 꽃신」에서 오소리는
원숭이의 먹이를 뺏으려고
꽃신을 선물하고서,
처음에는 잣 다섯 개만 요구하다가
열 개, 백 개, 오백 개로 늘리더니,
잣이 없으니 종이 되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원숭이는
오소리의 굴을 청소해 주고
오소리를 업고 개울을 건네 주는 신세가 된다.
한편 「거인의 옷」에서
잔꾀 많은 부자는
거인을 일꾼 삼으려고
솜옷을 만들어 거인의 움집에 몰래 갖다 놓았다.
봄에 농사일을 거들면 솜옷 한 벌 주기로 하고
세월이 흘러도 새경을 더 올려 주지 않는 바람에,
거인은 한 해 더는 입을 수 없는 솜옷 한 벌을 위하여
해마다 부자의 머슴이 되어야 했다.
거인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움집에 살면서
간섭 받는 일을 가장 싫어했지만,
이제는 부자가 말만 하면
밭갈이, 장작 패기, 추수를 척척 했다.
하지만
종 신세가 된 원숭이는
꽃신이 디디는 발자국마다
제 손으로 신을 삼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니까 언젠가,
꽃신까지는 아니어도
칡덩굴이나 억새풀로 신을 만들어
오소리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폭신한 꽃신을 버리고
다시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맨발로 골짜기를 다닐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맨발이었지만 걸음걸이는 당당했던 거인은
부자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거인으로서는
스스로 솜옷 짓는 일을 엄두도 낼 수 없을 뿐더러,
죽자 사자 일만 하느라
자신의 등 뒤에서 부자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인의 형편은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원숭이보다
더 가혹하다.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바라는 심리)마저
기대할 수 없도록 내몰린 거인의 상황이 전복되려면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 조력자는 바로 독자들이다!
김병규 작가는
‘동심(童心)’의 동의어로 ‘바보’를 고른 모양이다.
‘바보’란 사전적 의미로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지만,
「숙제를 해 온 바보」를 읽으면
아무래도 ‘바보’에 대한 새 정의가 필요할 듯 싶다.
가로 · 세로 · 높이가 30cm인 찰흙덩이 만들기는
어른들조차 숙제답지 않다고 여길 만큼 엉뚱한 숙제다.
숙제를 안 해도 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 요즘,
작가는 맹물 같은 방학 숙제를 낸 별난 미술 선생님처럼,
숙제니까 당연히 해 온 달목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달목이처럼 묵묵히 제 할일을 해내는 바보가 여럿 나온다.
「꽃 파는 총각」에서는
세 해 동안 머슴살이를 하고
새경으로 석새삼베 두 필을 받고도
흉년에 배곯지 않고 잘 지냈는데 새경까지 쳐 준다며
고맙게 여기는 ‘어리숭’한 만돌이를 만날 수 있다.
「물지게 타령」에서
겨우 열예닐곱 살쯤 되는,
좀 모자라는 소년 만태는
물 한 짐에 동전 한 닢을 받는데,
짓궂은 젊은이들이 춤 한번 추면 동전 한 닢,
노래라도 부르면 동전 두 닢을 준대도
“그래, 난 바보다. 그래서 쉬운 건 싫어.”라고 말한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은
『김병규 동화선집』은
100년 명작이 되어도 손색이 없겠다.
인류는
20세기에 핵무기의 위력을 겪었음에도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전쟁 억제책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려 드는데,
작가는
30년 전에도
무기가 아니라 꽃으로 평화를 지키고 싶어 했다.
「꽃으로 성을 쌓은 나라」에서
함부로 공격하기 힘든 ‘조그만’ 나라는
성조차도 ‘나지막’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다.
「꽃 파는 총각」에서는
임금님의 말을 빌려 아예 법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꽃이란
사람을 저렇게 순하게 만드느니라.
백성들은 집집마다 꽃을 가꾸도록 하라.
그래서 미운 이웃이 생기면
싸움을 걸지 말고 꽃 한 송이를 보내도록 하라.
이것은 법이노니, 어김이 없을지니라.”
작가는
‘꽃은 힘이 세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다.
꽃이 시들고 지는 것은 잠깐이지만 꽃
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힌다(「가시도 아프다」, 『다섯 게으름뱅이의 춤』, 현암사, 1999).
그리고 열매는
다음 세대를 약속한다.
동화는
일차 독자를 아이로 상정한다.
아이들은 어리지만,
아이들이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다.
그래서 동화는 힘이 세다.
꽃처럼 힘이 세다.
- 출처: 《어린이책이야기》 2015년 여름호
『첫 마음』, 정채봉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