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다 그렇다,
어른들도 그렇단다

노마드 비평 17. 『길지연 동화선집』, 길지연

by nomadic critic


1. 어린이책 작가 길지연과 고병익

『길지연 동화선집』(길지연,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에는

모두 13편이 실려 있는데,

「고병익 선생의 아이들」은

동화로는 드물게 일흔 살 주인공을 내세운다.

그러므로 너구리를 의인화한 「새봄왕」,

청소년이 주인공인 「열네 살, 그해 저녁」,

고양이가 1인칭 화자인 「현주야! 미안해」보다 가장 변별력 있다.

「풍경 소리」, 「바람을 타고 가는 꽃기차」, 「다 가질 거야」,

「맨드라미 핀 어느 날」, 「꽃구경」, 「버드나무가 말했어」,

「감귤 나무 아래서」, 「예니를 찾아라!」 8편에는

주인공 나이가 10살이나 11살로 드러나 있고,

「판도라의 열쇠」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나미’가 10살쯤으로 설정된 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흔’을 달리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공자가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道)에 어그러지지 않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러나 고병익 선생은

‘어린이가 뽑은 어린이책 작가상’을 수상하러 걸어가는 길에

본인 작품 속 아이들로부터 비난을 듣는다.


- 치,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나빠요.

난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다고요.

반달이도 불쌍한 개가 아니에요.

우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더 많았다고요.


- 할아버지야말로 무례해요.

앞으로 거짓말 책은 쓰지 마세요.

우리들은 예의 바르고 얌전하고 바르지만은 않다고요.


처음에 고병익은

‘불쾌’하고 ‘화가 끓어올랐’지만

“그래, 내가 너희들을 잘 몰랐구나.”라며

‘어린이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작가’라는 현수막이 걸린

“상을 받아야 할 빌딩을 스쳐지나”간다.

“한평생 글쟁이로 산 덕에 많은 상을 받”은 고병익 선생이

아이들에 대해 새로이 깨닫는 부분이다.


첫 번째 동화 「판도라의 열쇠」(『또 싸울 건데 뭘』, 국민서관, 2000)의 ‘나미’부터

열세 번째 동화 「예니를 찾아라!」(《새싹문학》, 2012 겨울)의 ‘예나’까지,

『길지연 동화선집』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지연은

자신의 작품에서 아이들이 ‘진짜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병익 선생을 통해 자문한다.


‘편집자 일러두기’에 따르면

작가가 직접 대표작을 골랐다고 하니,

‘고병익’을 길지연의 페르소나로 보아도 좋겠다.

1958년생인 길지연이

일흔의 고병익처럼

앞으로도 늘 아이들을 보는 시선에 깨어 있으리라는

다짐을 엿볼 수 있다.


2. 아이들은 다 그렇다

- 할아버지는 어릴 때 강아지 안 괴롭혔어요?

막대기로 배 쑤시고 벌레 잡아서 죽이고 그랬잖아요.

아이들은 다 그렇다고요.


열한 번째 동화 「고병익 선생의 아이들」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 생각만큼 순수하지 않다는 ‘진실’을 시사한다.

순수하니까

더 잔인할 수도 있다.


열두 번째 동화 「감귤 나무 아래서」에서 4학년 건호는

“만 원짜리가 열 장 들어 있”던 ‘14층 할머니’의 항아리에서

두 번이나 돈을 훔친다.

그리고 열세 번째 동화 「예니를 찾아라!」에서 예나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방 창문을 열어 고양이 예니를 일부러 집에서 내보내고

길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한다.

그렇다고 건호나 예나가

근본적으로 악한 아이는 아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날마다 선과 악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게

바로 인생일 뿐이다.


부모란

아이에게 완벽해 보이는 대상이고

롤 모델이다.

그러나 길지연은

아이만큼 부모도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판도라의 열쇠」에서 엄마는

냉장고에 지갑을 넣어 둔 것을 모르고

“지갑에 손을 대다니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나을 뻔했어.”라며

나미를 의심한다.

그리고 「다 가질 거야」에서는

아기 쥐를 키우고 싶어서 애원하는 영미에게

아빠가 “저기 신발장 위에 빈 꽃바구니 있지? 그곳에 놔라.

단 이틀뿐이다.”라고 약속해 놓고

다음날 아침에 말도 없이 치워 버린다.

나미 엄마는 딸에게 언어 폭력을 행사하고,

영미 아빠는 대놓고 딸에게 거짓말을 한다.

급기야 「열네 살, 그해 저녁」에는

외도를 이유로 이혼한 부모가 등장하고,

「꽃구경」에서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

요양원에 가면서도 벚꽃 구경 가는 것처럼 거짓말하는 엄마가

딸 민이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열네 살, 그해 저녁」에서

“너를 지킨 것만으로도 난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있어.”라고 말하는

수라 엄마 같은 부모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길지연은

완벽주의를 지양하는데,

할아버지 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고병익 선생의 아이들」의 고병익처럼

「새봄왕」의 너구리 할아버지 ‘잘린꼬리’도

세월이 지혜를 선물해 준다는 고정관념을 깬다.

‘잘린꼬리’ 할아버지는

꼬리까지 잘리면서 덫에 걸린 친구를 구했다거나

“우리 네 발 동물들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아.”라는 말로 비추어 볼 때

의로움을 상징하면서도,

젊은 너구리 ‘엉덩이점’이 이기기 위해서

‘왼발치기’를 절벽 아래로 밀었다는 고백에

“안 들은 걸로 하겠다.”라며 진실을 외면하거나

골짜기 친구들을 지켜 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에는

“그건 다 속임수야. 인간들은 믿을 수 없는 놈들이야.”라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열네 살, 그해 저녁」에서는 수라가

아빠 동거녀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모순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다.

“아랫배가 찌릿찌릿 아팠다.

뜨거운 것이 배 속을 휘감으며 꿈틀대는 듯했다.”,

“멍하니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뜨거운 물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

여름이면 마당 가득 피어 있던

그 빨간 꽃송이들이 툭 툭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에서

수라가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암시된다.


3. 사람과 자연, 양날개

효녀 심청은

인당수에 빠지기 때문에

‘김청’이 아니라 ‘심(沈, 잠길 침)청’이고,

흥부는

제비와 인연을 맺으므로

‘이흥부’가 아니라 ‘연(燕, 제비 연)흥부’이다.

그렇다면 「고병익 선생의 아이들」에서는

‘나란할 병(竝), 날개 익(翼)’이라서

‘박병익’이 아니라 ‘고(高)병익’일까?

자기소개에서

“나는 그 이야기를 쓴다.

공존, 생명 존엄,

인간만이 최고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존중해 주는

그런 문학세계를 가꾸어 간다.”라고 썼듯이

『길지연 동화선집』을 관통하는 두 가지는

‘사람과 자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봄왕」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을 보여 준다.

너구리가

“방금 잡은 듯한 따끈따끈한 들쥐 한 마리를 건네주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생태계에서 이루어지는 먹이 사슬을 인정한다.


「현주야! 미안해」는

사람 나이로 스무 살인 수컷 새끼 고양이 ‘털장갑’과

스무 살 아가씨 ‘현주’의 동거를 통해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꿈꾼다.

나이뿐 아니라

털장갑은 어미로부터 버림받았고,

현주는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털장갑의 1인칭 독백으로,

“고양이랑 사람은 다를 게 없다는 거야.

밥 먹고 응가하고 쉬하고 좋으면 뽀뽀하고,

화나면 소리지르고 현주는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고

나는 동네를 돌면서 세상을 배우잖아.

텔레비전 보면서 치킨 먹는 거, 물 많이 마시는 거.”라고 하다가

“이즈음 깨달은 건데 사람과 고양이는 달라.”라고 한다.

“우리 종족의 습성은

3~4개월마다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낳지.

새 아기를 위해서 어미젖을 땐(‘뗀’의 오자) 새끼들을 독립시키는 거였어.”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버리는 까닭은

가난 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자식을 버리는 것과는 달리

자연의 습성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렇게 동물과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되,

삶의 무게만큼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같다고 말한다.


「버드나무가 말했어」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위해

기계 문명의 발달을 경고한다.

린의 할아버지를 통해

“나무가 아프면 흙이 아픈 거야.

흙이 아픈 건 흙 속에 살고 있는 모든 벌레들이며 다른 생명들이 다 아프다는 거다.”,

“…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버드나무와 함께 자랐다.

버드나무가 죽어가는 땅에서는 다른 생물도 살 수 없어.”라고 말함으로써

발전이라는 청사진이

자연뿐 아니라 사람까지도 병들게 하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4. 진실과 희망

「풍경 소리」는

역사적 진실과 희망이 잘 버무려진 동화다.

나가노현 관송원에 있는

동제 반가사유상의 ‘오른쪽 손이 훼손되어 보수’했다는 사실까지 찾아 쓰면서,

일본에서 부여 박물관에 반환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길지연은

암울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의 화해를 꿈꾼다.


「다 가질 거야」에서는 영미와 부모가

아기 쥐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가도

반반씩 양보하여 타협한다.

그리고 「새봄왕」에서는

“인간들은 우리와 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덫을 치거나 총을 갖고 와서 마구 쏘아대지.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 가죽을 벗겨 옷을 해 입고 돌아다니질 않나,

참 못할 짓을 하는 동물들이지.”라고

이기적인 사람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야생 동물을 보호하는 큰돌 아저씨를 등장시켜

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희망한다.


「작가의 말」에

“내가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작가로서의 진실이다.”라고 했듯이

『길지연 동화선집』에서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진실을 밝히되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던

‘희망’을 잊지 않는다.



- 출처: 《어린이책이야기》 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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