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싫어하는 작가

저는 책이 싫어서 작가를 꿈꿨습니다.

by 이로작가

저는 책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의 꿈은 작가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과서에 있을 법한 딱딱한 글자들과 교양이니, 자기 계발서니 하는 똑똑한 책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왜냐고요?



거만한 글자들은 늘 저를 무시했거든요. 책에 쓰이는 순간 자기들이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텃세를 부리더군요.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아슬아슬하게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는 줄 위로 꽉 들어찬 글자들은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갈 것 같아 얼른 책을 덮어버리곤 했습니다.



하얀 백지만 보이면 냉큼 달려야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마는 심보 좋은 글자들 덕에 외곽으로 밀려난 여백은 비좁은 공간에서 있어야만 했죠. 저는 새하얀 백지 공간을 좋아했지만 제가 본 책들은 모두 생각의 자유를 배제한 욕심쟁이 글자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저에게 이걸 해석하라는 어른들의 요구는 엉킬 대로 엉킨 제 머리카락을 푸는 것보다도 더 화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를 꿈꿨습니다.



사실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은, 표지 외엔 단 한 글자도 들어설 수 없는, 속지라고는 전부 흰 종이로 가득 찬 아주 무시무시한 책이거든요.



사람들에게 '저는 책을 싫어합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나름대로 제가 정한 가장 최선의 대안인 셈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어떤 책을 만들 건지 까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물어봤다면 글자들이 얼마나 저를 매섭게 노려봤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데 말이죠.



결국 저는 책을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이자,

글을 싫어하는 모순적인 작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상한 작가가 만드는 이상한 책에는 책을 싫어하는 이유를 당당하게 적을 수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외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백도 원하는 만큼 늘려 그와 함께 늘어나는 생각의 주머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오늘도 제가 그리는 이상한 책의 글자들에게 말해주어야겠네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도, 이상한 책도 없다고 기록하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