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이 싫어서 작가를 꿈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과서에 있을 법한 딱딱한 글자들과 교양이니, 자기 계발서니 하는 똑똑한 책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왜냐고요?
거만한 글자들은 늘 저를 무시했거든요. 책에 쓰이는 순간 자기들이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텃세를 부리더군요.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아슬아슬하게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는 줄 위로 꽉 들어찬 글자들은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갈 것 같아 얼른 책을 덮어버리곤 했습니다.
하얀 백지만 보이면 냉큼 달려야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마는 심보 좋은 글자들 덕에 외곽으로 밀려난 여백은 비좁은 공간에서 있어야만 했죠. 저는 새하얀 백지 공간을 좋아했지만 제가 본 책들은 모두 생각의 자유를 배제한 욕심쟁이 글자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저에게 이걸 해석하라는 어른들의 요구는 엉킬 대로 엉킨 제 머리카락을 푸는 것보다도 더 화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은, 표지 외엔 단 한 글자도 들어설 수 없는, 속지라고는 전부 흰 종이로 가득 찬 아주 무시무시한 책이거든요.
사람들에게 '저는 책을 싫어합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나름대로 제가 정한 가장 최선의 대안인 셈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어떤 책을 만들 건지 까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물어봤다면 글자들이 얼마나 저를 매섭게 노려봤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데 말이죠.
결국 저는 책을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이자,
글을 싫어하는 모순적인 작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상한 작가가 만드는 이상한 책에는 책을 싫어하는 이유를 당당하게 적을 수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외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백도 원하는 만큼 늘려 그와 함께 늘어나는 생각의 주머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오늘도 제가 그리는 이상한 책의 글자들에게 말해주어야겠네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도, 이상한 책도 없다고 기록하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