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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위티 Nov 06. 2022

여군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왜 군인이 되셨어요?

평소에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 지인들과 와인 모임을 자주 갖는 편이다. 와인 모임 등을 가게 되면 처음 알게 된 분들과,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는 또 다른 지인들을 알게 되면 자기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다들 물어보는 질문 1순위다.

무슨 일 하세요?


 나는 제일 먼저 아무도 모르는 지인들을 소개받을 때 하는 질문이 있다. 보통 다들 어색한 가운데, 각자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를 하는 시간에 어색한 기운을 깨기 좋은 질문이다.


" 제 직업이 어떤 것일 것 같나요? 알아맞히시는 분한테는 제가 와인 한 병 살게요."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한 번에 알아맞힌 사람은 없다. 그래도 대부분 대답을 한 마디씩 하면서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소개할 때는 이 질문을 빼먹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양하고 재미있는(?) 대답이 나온다.


'작가, 오페라 가수, 변호사, 사교육계에 있는 (힘든) 학원 강사, 카페 사장, 연극배우, 회계사, 운동선수, 공방 주인... 등등'


그 이후 사실 군인이라고 말하면, 여자분들은 "어머 멋있어요!!!"가 99% 의 반응이고, 남성분들은 되게 놀라다가 "군인이요? 장교예요 그럼??" 이렇게 물으시고 질문을 하신다.


" 왜 (어쩌다) 군인이 되셨어요? "


분명히 다른 남군들한테도 질문이 많이 들어왔겠지만, 추정하건대 군인이 왜 되었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아직 우리나라는 여자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에 왜 '굳이' 자진해서 왔냐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술을 먹고 흥겨운, 가벼운 분위기에서 내가 사뭇 진지하게 이유를 대답하면 다들 그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가볍게 생각했다. 내가 군인인 것이 항상 자랑스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20대를 바쳐온 집단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그렇게 가볍게 풀어놓기만 하는 것이 편하진 않았다. ('까려면 내가 까!'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ㅋㅋ) 그리고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깨게 되는 그런 복잡 미묘한 느낌들이 불편했다. 그래서 상황을 봐서 내가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할아버지가 대령으로 예편하신 장교여서 자연스레 흥미가 생겼다.' 라던지, 우스갯소리로 '참모총장이 되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왜 군인이 되고 싶었을까?  


 사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굉장히 오글거리지만, 사관학교 입교 당시만 해도 내가 군대에 가고 싶은 이유는 '최초 여군 참모총장'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 사관학교를 지원할때에는 그정도 포부는 갖고 들어갈 것이다) 그 당시에 봤던 천안함이나 각종 다큐멘터리들을 보고 분노의 눈물을 흘렸고, 내가 꼭 큰 사람이 되어서 모든 것들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꿈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내가 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 내가 놓쳐야 하고 포기하는 가치들이 나에게 매우 소중한 가치들이기 때문에 크게 욕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진급을 목표로 두고 달려가는 수많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노력을 해서 무조건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목표로 잡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 군인이 되기로 한 이유는 '참모총장이 되고 싶었어요.'가 맞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다.


사관학교에 입교해서는 워낙 현생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서 참모총장이고 나발이고 생각할 것이 없었다.  1, 2학년 때는 선배들이 취침시간 이후에 혹여나 들어올까 잔뜩 겁에 질려있었고, 평소 일과를 할 때는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가면 구보가 무서운 그런 여생도 중 1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군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헤쳐나가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고학년이 되고는 군기 근무도 서고, 나름 고학년으로서 삶이 저학년 때보다 편해지면서(?) 또다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몸이 편해지니 자연스럽게 다시 원론적인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내 동기들 중 3, 4학년이 되자 급작스럽게 나가는 동기들이 생겼다. 그 친구들은 왜 군인이 되고 싶었냐는 물음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찾지 못해서 나갔을 것이다. 나의 경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임관해서 장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당시에도 '이유'를 묻기보다는, '당연하게'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임관하고 나서는 사관학교 때 우리의 모습 온실 속 화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편집된 군대의 좋은 모습만 보고 자랐었다. 모두가 우리에게 친절했고, 우리가 가는 자리들은 많은 사람들의 준비가 필요한 곳이었다. 임관하고 나서야 우리는 '생도였기에'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끊임없는 상황 배치와 긴급한 순간에서 장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사실 그때 내가 왜 군인이 되어야 했는지 생각했던 것 같다. 남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그 순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 내 가족이 마음 놓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이후 작전과는 멀리 떨어진 부서에서 행정업무를 할 때에는 아무래도 실전적인 상황에 배치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들지 않았지만, 군대조직에 있는 일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직 전체의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당장 내가 높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인원들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약 이마저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내가 전역을 마음 먹는 때이지 않을까.


왜 군인이 되냐는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적어봤는데, 적다 보니 생각보다 내 마음속 깊이 있는 (오글거리지만 솔직한) 말들이 튀어나온 것 같다. 가끔은 주말근무와 당직, 여러 가지 훈련들을 하다 보면 피곤해지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나만 해도,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고생한 것들에 대해 군대밖에 있는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그 당시에는 '때려치울 거다'라고 말하지만, 다시금 내 주변에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참는다.  우리나라가 사병, 간부 상관없이 좀 더 그 고생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좀 더 그런 분위기가 생긴다면, 좀 더 자긍심을 가지고 군인들도 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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