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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Aug 27. 2019

오늘 하늘은 하루종일 맑음

인천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길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휴가를 다녀온 기간까지 합해 2주, 긴 여행을 앞둔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다녔다.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가기 싫다는 말만 입버릇처럼 튀어나왔다.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반년이라는 시간이 그저 무섭게만 느껴졌다. 출국 며칠 전부터는 스트레스로 밤마다 헛구역질까지 했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에게 매리지 블루가 있다면 이건 교환학생 블루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울며 보냈던 2주가 지나고, 나는 비로소 하늘 위에 있다.






  이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별 거 아니다. 교환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꿈꾼 버킷 리스트였다. 그때 나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날 스물몇 살의 내가 이 정도로 애송이일 줄은 몰랐다. 책에서 열아홉은 세상을 구하기 충분한 나이였고, 스물둘이면 주인공들을 이끌어주는 어른이었다. TV나 영화에서도 그랬다. 나는 열아홉에 세상을 구하진 못했지만 스물두 살엔 어른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상상하곤 했다. 다른 말을 쓰는 먼 나라로 떠나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의 삶을 살 수 있는 어른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고 지식과 인품이 따라왔다면 고령화 사회야말로 가장 진보한 사회일 거다. 나는 어른이 되는 대신 그냥 나이만 들었고 프랑스로 가기 싫다며 밤마다 우는 애송이로 자랐다.


 사실 공항에서도 참 많이 울었다. 배웅하는 엄마 아빠를 두고 게이트로 들어가면서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자꾸 훔치며 여권을 내밀자 공항 직원이 나를 조금 불쌍하게 봤다. 내가 무슨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 사람 같았을 거다. (나는 내 발로 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면세점에서 선글라스를 고를 때까지도 대뜸 터지던 눈물은 오히려 비행기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자 잠잠해졌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실감해서인지도. 아니면 슬픔보다 놀라움이 커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를 탈 때면 매번 까마득하다. 사람이 이 무거운 고철 덩어리를 하늘에 띄우고 또 고도 만 미터까지 운전해 지구 건너편으로 간다는 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여행을 한다는 게, 스무 시간을 날아도 한 바퀴 돌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넓다는 게.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꿈을 꾸었을까? 인간이 맨몸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바다와 하늘을 넘어다니기까지, 몇 명의 사람들이 고꾸라지고 넘어졌을까.


  그렇게 나는 지금 하늘 위에 있다. 창문 덮개를 열면 잠시 눈 한편이 희게 번질 정도로 밝고 맑은 하늘 위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고도 만 미터 위에 떠있다.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꿈꿨던 것처럼 자유롭게 나는 비행기 속에 있다. 신기하게도 여기서는 떠나기 전만큼 슬프거나 두렵지 않다. 오늘 하늘이 이렇게나 맑은 건 내가 가는 길을 닦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함께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나는 수천 년을 내려온 인류의 꿈속에 있다. 내 세상을 넓히겠다는, 흔하고 뻔한 계기로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에도 오늘도 미래에도 사람들은 나처럼 꿈을 꾸며 다른 나라로 떠났고 떠나겠지. 캐리어를 들고 백팩을 메는 건 혼자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나와 함께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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