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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다 Dec 25. 2019

[2010년대 리뷰] 차트 역주행



2010년대의 마지막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이런저런 씁쓸한 이유로 리뷰할 맛이 나지 않는 2019년 대신, 특별판으로 2010년대 가요계 전체를 리뷰하려 한다. 단순 인기나 판매량 등으로만 정리하면 음원 강자들과 아이돌 음악들로만 수렴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한국 가요계의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으므로 시대와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각 키워드 별로 정리하려 한다.


다섯 번째는 ‘역주행’이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발매와 흥행 사이에 시간이 걸렸고 매체가 제한적이었기에 역주행이 흔했지만, 이후에는 최신이어야 흥행하며 시대가 지난 음악은 구식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그러나 그 매체가 더 발달한 2010년대에는 오히려 역주행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연 프로그램에 의한 재발굴, 직캠 영상의 흥행, 크리에이팅 기업의 약진 등의 이유로 발매 후 시간이 지난 곡들이 살아나며 재조명받는 경우가 흔해졌다. 아래의 순서는 발매가 아닌 역주행이 발생한 시간 순서대로이며, 순위의 의미는 없다.


(<벚꽃 엔딩>, <봄 사랑 벚꽃 말고>, <빨간 맛>, <머스트 해브 러브>,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등의 예시들은 제외했다. 너무 전형적이기도 하고, 2020년대에도 때가 되면 끊임없이 유행할 듯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2004.12. → 2011.03.)

작사: 이소라 / 작곡: 이승환(더스토리) / 편곡: 이승환(더스토리), 이병준

정규 6집 “눈썹달”(2004.12.10.)


나는 가수다”는 2010년대 전반에 깔린 레트로 열풍에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여를 했다. 특히 방영 초기의 화제성이 어마어마했던 덕에, 초기 출연자들이 경연에서 부른 곡들은 물론 <너를 위해>(임재범) · <여전히 아름다운지>(김연우) · <나띵 베럴 Nothing Better>(정엽) 등 출연자들의 옛 히트곡들까지도 재조명됐다.


특히 <바람이 분다>는 '이소라'의 압도적 분위기와 몽환적인 음색, 시적인 가사 등이 어우러진 명곡이었다. 음반의 활동곡 <이제 그만>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명곡으로 남았고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를 뽑는 설문 등에 꾸준히 오르며 사랑받았지만, 이소라의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던 시점이었기에 당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선 모양이었다. 방송 직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고, 다른 출연자들의 히트곡들과 함께 음원 사이트에서 꽤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2010년대 초를 “나는 가수다”로 연 후 별다른 소식이 없던 이소라는 2010년대 말 ‘타블로’(에픽하이) · ‘슈가’(방탄소년단)와 함께한 <신청곡>으로 다시 한번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크레용팝 Crayon Pop <빠빠빠>(2013.06. → 2013.08.)

작사: 김유민 / 작곡: 김유민, 이다경 / 편곡: 김유민, 이승엽

디지털 싱글 “빠빠빠”(2013.06.20.)


이른바 ‘선 병맛 후 중독’의 대명사로 소셜 미디어의 덕을 본 사례이자, 2010년대의 대표적인 원히트원더. 저예산 티를 팍팍 내는 뮤직비디오, 이상하지만 참신한 안무, 딱히 뜻을 알기 힘든 가사 등이 미묘한 중독성을 낳아 대대적인 유행을 탔다. 당시 걸그룹들의 섹시 컨셉과 노출 경쟁에 지친 소비자들이 전혀 다른 노선의 ‘크레용팝’에게 시선을 돌렸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강남스타일>(싸이)) · <뿜뿜>(모모랜드) 등과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거대한 흥행이 가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빠빠빠> 이후로 <꾸리스마스> · <어이> · <두둠칫> 등으로 활동했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젠틀맨> · <행오버>를 발표했지만 <강남스타일>을 넘지 못했던 해외에서의 ‘싸이’, <배앰> · <암 쏘 핫>을 발표했지만 <뿜뿜>의 그늘을 넘지 못한 ‘모모랜드’의 모습과 꽤 유사하다. 오히려 <빠빠빠> 이전에 발표한 <댄싱퀸>의 일진 컨셉이 소소하게 재발굴됐다.






이승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2006.11. → 2014.10.)

작사: 이승환 / 작곡: 이승환, 황성제

정규 9집 “Hwantastic”(2006.11.11.)


“보이스코리아 시즌 2”(2013) 출연자 ‘이예준’이 <그대가 그대를>로 흥행한 뒤 우승까지 차지하자, ‘이승환’의 음악이 꽤 주목받았다. 1년 뒤 이승환은 “히든싱어 시즌 3”에 직접 출연했고, <천일동안> ·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 <물어본다> 등이 미션곡으로 쓰이며 그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는 “히든싱어 3” 당시 마지막 미션곡으로 쓰였다. 모창 가수들이 따라할 수 없는 퀄리티의 라이브를 선보이며 이승환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상승시켰고, 특유의 미성과 공명음 · 먹먹한 감성 · 음악에 대한 정성 어린 태도 등이 주목받으며 단숨에 실시간 차트 상단에 올랐다.






이엑스아이디 EXID <위아래>(2014.08. → 2014.11.)

작사 · 작곡: 신사동 호랭이, 범이, 냥이, 엘리 / 편곡: 신사동 호랭이, 범이, 냥이

디지털 싱글 “위아래”(2014.08.27.)


음악 방송 및 행사 무대를 직접 촬영한 영상인 ‘직캠’이 흥행하며 역주행을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 <매일밤> 등 퀄리티가 꽤 괜찮은 곡들과 ‘신사동 호랭이’라는 유명 작곡가의 적극적 참여에도 불구하고 ‘이엑스아이디’는 뜰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룹이었다. 그러던 도중 <위아래> 무대의 ‘하니’ 1인 구도 직캠이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월간 차트(멜론 기준)에서 2014년 11월 48위 - 12월 2위 - 2015년 1월 1위에 오르는 등 기록적인 역주행 현상이 발생했다. 이엑스아이디는 <위아래>로 강제 컴백해야 했고, 음악 방송 1위까지 수상했다. 비록 이후에 발표한 곡들이 <위아래>를 넘지 못했다는 평 또한 존재하나, 어쨌든 그 스타일 자체가 대중에게 먹혀 들었고, 이엑스아이디는 위기 속에서 발표된 곡이 역주행을 기록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름을 노리고 만든 듯한 댄스곡이 당해 늦가을과 겨울에 대대적인 흥행을 기록한 독특한 사례.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1997.02. → 2015.01.)

작사: 유유진 / 작곡: 최규성 / 편곡: 이수현, 조형상

정규 1집 “Legend”(1997.02.13.)


2014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에서 최저점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그렇게까지 큰 열풍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박명수’와 ‘정준하’가 제안하여 혹평과 우려를 들은 ‘경연’ 아이디어를 ‘공연’으로 살짝 다듬은 뒤에는 레전드가 탄생했다. 출연자 섭외 과정부터 본 공연까지, 1990년대를 수놓은 수많은 스타들의 이름이 오갔고 이들에 대한 평가/재평가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토토가” 출연자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개인 활동을 하고 있거나, 여러 이유로 꾸준히 회자되며 대중과의 접점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김현정’은 오랫동안 대중과의 접점이 없었고, 연기나 라디오 등 눈에 띌 만한 다른 활동도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약했다. 일명 ‘롱다리 가수’로 불리며 크게 사랑받았고, <혼자한 사랑> · <멍> · <떠난 너> · <단칼> · <끝이라면> 등의 히트곡을 남겼으나 어느 순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간 김현정의 재조명은 “토토가” 최대의 성과로 꼽을 만하다. 그 중에서도 데뷔곡 <그녀와의 이별>은 김현정 댄스곡 특유의 힘과 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명곡.






여자친구 <오늘부터 우리는>(2015.07. → 2015.09.~2016.09.)

작사 · 작곡 · 편곡: 이기, 용배

미니 2집 “Flower Bud”(2015.07.23.)


빗속에서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미끄러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6번이나 크게 넘어지는 것은 일종의 사고였다. 평균 연령 19세의 신인 걸그룹 입장에서 당연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이 ‘사고 영상’은 곧장 화제가 되었다. 아파도 당황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무대를 마치는 프로 의식이 감동을 선사했고, 순식간에 유투브와 각종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러’ · ‘타임’ 등 주요 외신에서도 다룰 정도로 파급력이 거셌고, '여자친구'가 영상 속에서 부르던 그 곡은 곧바로 역주행에 돌입했다.


<오늘부터 우리는>의 흥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역주행이 시작된 2015년 9월 이후 약 1년 간 음원차트 100위권에서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 아이돌 음악 소비층을 넘어 더 넓은 세대에게까지 곡의 인지도가 확장되었다. 또한 2016년 1월 <시간을 달려서> 발표 시기와 7월 <너 그리고 나> 발매 시기에는 <오늘부터 우리는>의 순위가 동반 상승하는 2차 역주행을 선보이며 음원 차트 역주행에 또 다른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거미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2003.02. → 2015.12.~2016.02.)

작사: 황성진, 박경진 / 작곡 · 편곡: 김도훈

정규 1집 “LIke Them”(2003.02.01.)


한편으로는 수많은 OST들을 히트시키며 OST계의 끝판왕으로 자리매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복면가왕” · “판타스틱 듀오” ·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 등 음악 예능에 꾸준히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거미’ 정도 되는 위치와 커리어를 가진 가수가 이렇게나 부지런하게 움직인 것은, 노래하는 모습을 꾸준히 대중에게 보이고 싶은 거미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 의지가 통한 것인지, “히든싱어 시즌 4” 출연 시기에 맞물려 <어른 아이> · <기억상실> · <그대 돌아오면> · <혼자만 하는 사랑> 등 거미의 히트곡들이 재조명되었다. 특히 2015년 12월부터 차트에 진입한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는 월간 차트 기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100위권 진입에 성공했고, 2016년 연간 차트 93위에 랭크되는 등 조용하고도 꾸준한 역주행을 기록(가온차트 기준)했다.






김연자 <아모르 파티>(2013.07. → 2017.03.)

작사: 이건우, 신철 / 작곡 · 편곡: 윤일상

정규 음반 “아모르 파티”(2013.07.23.)


‘운명애’ 혹은 ‘네 운명을 사랑하라’로 풀이되는 라틴어 제목 amor fati, 트로트에 이디엠(EDM)을 접목한 장르적 시도, 1980년대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은등> · <아침의 나라에서> · <씨름의 노래> 등의 히트곡을 보유한 ‘원조 한류’ 트로트 가수 - 어떤 요소도 평범하지 않으며 이들의 조합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짜라자짜>(주현미 X 서현) · <사랑한다>(주현미) 트로트로 여러 시도를 해오던 작곡가 ‘윤일상’만은 이 곡을 밀어붙였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지는 않았던 것인지, 이 곡은 ‘엑소’의 무대를 기다리던 열린음악회 관객과 시청자들에 의해 4년 만에 재조명되었다. 이후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17년 “무한도전”에 출연해 이 곡을 부르면서 본격적인 흥행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014년 <내 나이가 어때서>(오승근)와 2015년 <백세인생>(이애란)을 잇는 2010년대의 대표적인 트로트 역주행 사례인 동시에, 세대와 계층 분화가 두드러진 현 대중음악계에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히트곡으로 남았다. 






윤종신 <좋니>(2017.06. → 2017.08.)

작사: 윤종신 / 작곡 · 편곡: 포스티노

미스틱 프로젝트 “Listen 010 좋니”(2017.06.22.)


언젠가부터 ‘윤종신’의 이미지는 ‘음악 하는 예능인’에 가까웠다. 물론 “슈퍼스타 K”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프로그램에서 음악인의 면모를 보일 순간들이 여럿 있기는 했지만, 시즌제의 음악 예능들보다 매주 전파를 타는 지상파 토크쇼가 대중에게 더 가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 시리즈도 여전히 진행중이었지만, 의외로 크게 흥행하는 곡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윤종신이 ‘딩고 세로라이브’라는 소셜 미디어 음악 영상에 출연해, 청중도 없는 곳에서 <좋니>를 열창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해당 영상이 인터넷에서 크게 히트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면서 <좋니>는 본격적인 역주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쿠스틱한 복고 발라드이며 윤종신의 음색과 감성이 듬뿍 담긴 <좋니>는 모든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데뷔 27년만의 음악방송 1위를 안기기에 이르렀다. 1위 달성으로 흥행은 끝나지 않았고,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에일리) · <밤편지>(아이유)와 함께 2017년을 대표하는 곡으로 남았다. 시대가 아무리 오래 지나더라도 ‘역주행’을 논할 때 빼놓기 힘들 기록을 남겼다.






러블리즈 Lovelyz <종소리>(2017.11. → 2018.12.)

작사: 원택, 탁, 애런 / 작곡: 원택, 탁

미니 3집 “Fall in Lovelyz”(2017.11.14.)


앞선 곡들에 비하면 소소해 보일지도 모르나, 정식 발매가 늦어진 <스퀘어 Square>(백예린)를 제외하면 비교적 최근에 감지된 역주행 흐름이라 언급할 필요성을 느꼈다.


<종소리>는 2017년 11월에 발표된 ‘러블리즈’ 미니 3집의 활동곡으로, 러블리즈 특유의 밝은 이미지와 계절 음악의 전형적 분위기가 배합된 곡이다. 발표 당시에는 크게 힘을 못 썼으나, 웬일인지 2017년 활동 당시의 음악 방송 영상이 2018년 12월에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네이버TV 실시간 차트 1위와 멜론차트 실시간 급상승 1위를 기록하는 등 역주행을 기록했고, 여세를 몰아 크리스마스 특집 음악 방송에서 다시 <종소리>로 무대를 섰다. 팬덤의 충성도에 비해 음원 차트에서의 화력이 그리 세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신기한 현상. 2019년에도 유사한 현상이 감지되고 “뮤직뱅크”에도 재출연하였다. 어떤 곡을 발표하더라도 끊임없이 <아츄 Ah-Choo>로 재수렴하던 ‘러블리즈’의 대중적 인식을 바꾸고, 계절 음악의 역주행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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