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사도 음악 아는 척 하기 (4편)

궁정의 사교 음악: 중세 기악 편성 및 춤곡

by 돈 없는 음대생

중세 기악 음악의 지위와 사회적 역할


중세 유럽에서 기악 음악은 성악, 특히 교회 성가보다 한 단계 낮은 예술로 평가되었다. 당시 음악의 가치는 ‘가사’, 즉 말을 통한 신학적 메시지에 의해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간의 목소리를 신이 부여한 악기로 보았으며, 가사를 통해 신앙과 도덕을 전달하는 성악만을 진정한 예술로 여겼다. 반면, 가사가 없는 기악은 단순한 오락이나 감각적 즐거움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교부 철학과 중세 신학 전통 속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고백록(Confessiones)"에서, 음악이 신앙심을 돋우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한 소리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은 죄'라 경계했다. 그는 소리 그 자체보다 신을 향한 마음을 중요시하며, 감각적 쾌락으로서의 음악을 경계했다.

보에티우스(Boethius)는 "De Institutione Musica"에서 '음악의 목적은 신적 질서를 드러내는 데 있다'라고 규정하며, 가사 없는 기악을 ‘무의미한 소리’로 간주했다.

즉, 인간의 이성과 언어를 통해 신의 조화를 반영할 때에만 음악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본 것이다.


이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이르러 신학적으로 정교화된다.

그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 (II–II, q.91, a.2)"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 악기'라고 규정하며, 이성이 통제하는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행위만이 올바른 예배라고 보았다. 이처럼 인간의 음성은 신적 질서에 참여하는 도구로 정당화된 반면, 인간이 만든 악기는 성악에 비해 도덕적, 지적 완전성이 결여된 예술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기악 음악은 중세 사회의 일상과 의례를 지탱하는 실질적 기능을 수행했다. 궁정에서는 트루바두르, 트루베르, 미네젱거의 단선율 가곡을 반주하는 역할을 맡았고, 때로는 다성 성악곡의 성부를 대신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기사 서임식, 귀족 결혼식, 사냥과 연회, 춤과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로 활용되었다.

특히 왕이나 영주의 등장, 전투 개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Fanfare)는 단순한 신호를 넘어, 사회적 질서와 권위를 구현하는 청각적 상징으로 작용했다.


knight.jpg 성 마르탱의 기사 서임식과 연주자들


중세 기악 음악은 대부분 즉흥 연주(Improvisation)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악보로 남은 사례가 극히 드물다. 후대에 전해진 몇몇 기악곡은 당시 음악의 실체를 짐작하게 하는 단편적 증거일 뿐이며, 회화, 조각,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기악 연주자들은 종글뢰르(Jongleur)라 불린 떠돌이 악사 계층이나 궁정 악사인 민스트럴(Minstrel)로 활동하며, 축제와 연회에서 음악과 오락의 핵심적 주체로 활약했다.




중세 춤곡: 에스탕피와 이스탐피타


중세 기악 음악 가운데 악보로 비교적 잘 보존된 장르 중 하나는 춤곡이다. 궁정의 연회와 축제에서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대표적인 형식은 에스탕피(Estampie)였다.


에스탕피는 13~14세기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으며, 여러 풍타(puncta, 음악적 구절)로 구성된다. 각 풍타는 두 번 반복되며, 두 번째 반복에서는 종지(cadence, 마무리)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 반복은 불완전한 열린 종지(ouvert)로 끝나 다음 악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두 번째 반복닫힌 종지(clos)로 마무리되어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반복 구조는 A–A′, B–B′, C–C′ … 와 같이 표현되며, 반복 속의 변형과 열린/닫힌 종지의 대조를 통해 단순한 춤곡을 넘어, 형식을 갖춘 독립적 예술 장르임을 보여준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이 전통이 이스탐피타(Istampita)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이스탐피타는 프랑스의 에스탕피보다 더 길고 구조적으로 복잡하며, 당시 아르스 노바 시대의 지적 분위기, 즉 음악에서 합리적 질서와 형식적 완결성을 중시하던 정신을 반영한다. 에스탕피와 이스탐피타는 성악 선율을 기악으로 연주하기도 했는데, 이는 성악과 기악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춤곡조차 기사도적 미학과 궁정적 세련미를 갖춘 독립적 예술 장르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에스탕피

"왕의 노래책(Le Manuscrit du Roi)"에 수록된 여러 곡의 "로열 에스탕피(Estampie Royale)"


이스탐피타

런던 필사본(British Library Add. 29987)에 수록된 이스탐피타 "Principio di virtù"




중세 악기의 분류와 편성


중세 기악 음악에서는 악기를 그 음량과 용도에 따라 Haut(시끄러운 악기)과 Bas(조용한 악기)라는 두 범주로 나누어 사용했다. 이 구분은 연주 장소와 상황에 따라 악기 편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Haut는 프랑스어로 '높은' 또는 '시끄러운'을 의미하며, 주로 야외 연주, 행렬, 전투, 대규모 연회 등 큰 음량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악기로는 오보에의 전신인 쇼옴(Shawm), 권위와 왕권을 상징하는 트럼펫, 그리고 리듬을 강조하는 팀파니/태버(Tabor)가 있다. 이러한 악기들은 기사도의 용맹함과 권위를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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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옴 (좌) / 태버 (우) - 관악기와 태버를 동시에 연주하는 그림

반면 Bas는 '낮은' 또는 '조용한'을 뜻하며, 주로 실내, 사교 모임, 혹은 개인 감상을 위한 궁정 음악에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악기로는 현대 바이올린의 전신인 비엘르(Vielle), 류트, 하프, 그리고 부드러운 목관악기 리코더가 있었다. Bas 악기들은 서정적이고 섬세한 반주를 가능하게 하여, 궁정에서의 사교적 연주나 궁정식 사랑 (Fin'amor) 가곡 반주에 적합했다.


중세 궁정은 이처럼 Haut와 Bas 악기군을 상황과 필요에 맞게 조합하여, 연회와 사교 활동의 분위기와 품격을 조절했다. 시끄러운 악기는 춤곡을 연주하는 데 사용되고, 조용한 악기는 사랑 노래나 서정적 반주를 담당하는 등, 악기의 성격과 용도에 따른 구분이 존재했다.




주요 악기와 즉흥 연주


중세 기악 연주자들은 현대처럼 악보에 충실한 연주자라기보다는 즉흥 연주자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악보는 종종 선율의 윤곽만 기록되거나 성악곡의 테노르(Tenor) 성부만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주자는 각 악기의 특성과 기능에 따라 나머지 성부나 장식음을 추가하며 연주했다.


비엘르(Vielle)는 5~6개의 현을 가진 현악기로,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의 단선율을 연주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활을 이용해 연속적인 선율을 연주하거나 곡 후반에 선율을 장식적으로 반복하며,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때로는 두 성부를 동시에 연주하여 다성적 질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vielle.jpg 비엘르
troubadurer.jpg 비엘르를 연주하는 연주자들

류트와 하프는 주로 단선율 노래를 반주하거나 간단한 화음을 덧붙이는 역할을 했다. 특히 류트는 특히 정교한 연주 기술을 필요로 하여 궁정에서 선호되었다.


반면 쇼옴과 백파이프는 Haut 악기군으로, 야외 연주나 축제, 행진 등에서 큰 음량을 제공했다. 쇼옴은 강한 리드로 지속적인 음을 연주하며 선율을 강조했고, 백파이프는 하나의 낮은 음(Drone)을 바탕으로 선율을 연주하며 원시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기악 음악의 사회적, 문화적 기능


중세 기사도 궁정에서 기악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기능을 수행했다.


우선, 신분과 권력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화려한 악기와 숙련된 연주자들의 앙상블은 영주나 왕의 부와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Haut 악기의 웅장한 소리는 궁정의 위엄을 강조하며, 연회장의 분위기를 장엄하게 만들었다.


또한, 공동체적 즐거움사교적 결속을 촉진했다. 에스탕피와 같은 기악 춤곡은 연회 참석자들이 함께 참여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장을 마련했다. 춤은 단순한 신체적 활동을 넘어, 궁정 구성원 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선율 가곡개인적, 내면적 감정을 표현했다면, 춤곡은 공동체적, 역동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통로였다.


아울러, 기사도의 역동성을 청각적으로 표현했다. 전투와 행진에서 사용된 타악기와 금관악기는 기사도의 핵심 가치인 용기와 강인함을 나타냈다. 이를 통해 기사도 문화가 단순히 사랑과 이상을 노래하는 문학적, 음악적 형식을 넘어, 상징적, 의례적 차원에서 행동과 역동성, 용기와 위엄을 표현하는 문화적 양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중세 기악 음악은 성악 중심의 문화 속에서도 즉흥적 생동감과 일정한 형식 구조를 통해 궁정 연회와 사교 활동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였다. 춤곡의 체계적 형식과 연주의 활력은 중세 궁정 문화의 세련됨과 역동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이후 르네상스 시대 기악 음악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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