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사도와 바그너 아는 척 하기 (12편)

숭고함의 역설: 근대 예술에서 구현된 중세적 이상

by 돈 없는 음대생

중세 기사도의 숭고함과 세속화된 풍자


중세 기사도의 숭고함이 트루바두르의 궁정식 사랑과 기사도 로망스를 통해 영적 이상으로 승화되었다면, 17세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돈키호테(Don Quixote)"는 이러한 숭고함을 풍자적 관점에서 재검토한다. 이 작품은 중세적 이상과 현실 사회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긴장을 보여주며, 근대 문학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Cervantes_Jáuregui.jpg 미겔 데 세르반테스


숭고함의 외적 형식에 대한 풍자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도 문학, 특히 무수히 쏟아져 나오던 저속한 기사도 소설(Romance)의 형식과 규범을 비틀어 풍자한다. 돈키호테가 착용하는 낡은 갑옷, 면도 대야를 투구로 삼는 행위, 평범한 농부 여성을 ‘둘시네아(Dulcinea)’라는 숭고한 여주인으로 이상화하는 모습은, 중세 로망스가 그려낸 전형적 기사적 이미지와 관습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그 허황됨과 우스꽝스러움을 드러낸다. 세르반테스는 이를 통해 기사도의 형식이 시대적 맥락을 잃으면 허세적 장치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돈키호테가 만나는 여관 주인, 농부, 사제 등 현실 인물들은 이미 기사도의 숭고함과 종교적 이상을 상실하고 세속적 이해와 합리성에 따라 행동한다. 그의 망상적 행동은 이들의 현실적 계산과 타락을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트루바두르가 표현한 헌신적 사랑(Fin'amor)은 돈키호테의 일방적 구애로, 로망스의 모험적 영웅주의는 풍차와의 싸움이나 양 떼와의 전투 같은 사건을 통해 현실과 괴리된 허황적 행동으로 전환된다.


근대적 시선과 개인적 고립


"돈키호테"는 중세집단적·신앙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개인적 이성강조되는 근대 사회의 시작을 보여준다. 돈키호테의 광기는 중세적 이상을 근대적 시선에서 바라보는 비판적 관점을 드러낸다.


근대적 판단 기준에서 그의 행동은 ‘정신적 착란’으로 간주되며, 현실적 합리성이 숭고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돈키호테는 현실과 단절된 고독한 이상주의자로 위치한다. 단순히 타인과의 단절이 아니라, 현실이 자신의 이상을 담을 그릇이 아님을 깨달은 자발적 고립이다. 그는 조롱당할지언정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러한 의지적 고립은 19세기 낭만주의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동력과 연결된다.




의지와 순수한 꿈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도의 숭고함을 풍자로 해체하면서도,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이 숭고함은 인간의 의지(Wille)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꿈으로 읽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적 의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멈출 수 없는 충동, 즉 ‘의지'로 이해했다. 돈키호테의 행위는 이 의지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낡은 기사도 소설에 몰두하고 스스로 기사가 되기로 결심함으로써, 합리적 판단을 넘어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현실의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지키려는 이러한 태도는, 맹목적인 충동이 어떻게 숭고함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Arthur_Schopenhauer_by_J_Schäfer,_1859b.jpg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현실 세계는 고통과 한계가 지배하는 ‘표상(Vorstellung, 인식)’의 세계이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여관을 성으로 보는 등 현실의 표상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투영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을 초월한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망상이나 풍자를 넘어, 인간 의지의 적극적 표현으로서 숭고함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이는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의지의 부정’과는 달리, 의지를 긍정하며 현실을 초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순수한 꿈: 새로운 숭고함의 윤리


돈키호테의 ‘순수한 꿈’은 중세가 강요하던 규범 의무에서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새로운 도덕 의식을 드러낸다. 그는 겉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지만, 세르반테스가 그를 통해 보여준 것은 비웃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선한 의지다. 현실 속에서 조롱받는 그의 행동은, 사실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진정한 숭고함의 흔적을 되살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는 실패와 모욕,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믿는 정의와 사랑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고통은 단순한 비극의 장치가 아니라, 그의 신념이 시험받는 과정이다. 중세의 트루바두르가 귀부인을 향한 사랑을 통해 정신의 성숙을 이루었다면, 돈키호테는 냉소와 폭력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마음의 순수를 지키려는 싸움을 계속한다. 현실의 조롱과 패배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확인하고, 그 속에서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드러낸다.


돈키호테의 행동은 어떤 보상이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행위는 결과보다 옳다고 믿는 일을 실천하는 그 순간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는 약자를 돕고 정의를 지키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움직이며, 그 안에서 세속적 이익과는 무관한 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중세가 ‘신의 뜻’ 속에서 찾으려 했던 선(善)의 개념을, 인간의 내면과 선택 속에서 다시 세운 것이다. 중세의 신플라톤주의가 말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완전한 이상, 즉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절대적 가치였다. 그러나 돈키호테에게서 선은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에 따라 스스로 세우는 신념으로 바뀐다. 그저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그 순간이 이미 선의 실현이며, 그 안에서 인간적인 숭고함이 피어난다.


이상과 현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돈키호테산초 판자의 관계는 단순한 주종 관계를 넘어, 이상과 현실의 긴장을 드러내는 상징적 구조를 형성한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대표하면서, 그 대비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초월하려는 이상의 인물이다. 그는 세속의 이익이나 합리적 판단을 넘어, 하늘을 향한 순수한 열망 속에서 살아간다. 현실의 조롱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와 사랑을 믿는 그의 태도는, 낭만주의가 추구한 숭고한 이상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산초 판자현실의 인물이다. 그는 먹을 것과 잠자리, 금전적 보상 같은 구체적 욕망을 걱정하며, 주인의 광기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현실감각은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돈키호테의 이상을 세상에 붙들어두는 균형의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산초가 돈키호테의 이상에 물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엔 주인을 비웃지만, 여행이 거듭되면서 그가 믿는 ‘정의’와 ‘명예’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이 변화는 현실이 이상에 의해 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결국 두 인물의 여정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돈키호테의 꿈은 산초의 현실감각을 통해 세속 속에서 의미를 얻고, 산초의 현실은 돈키호테의 순수한 의지를 통해 다시 빛을 되찾는다.




바그너와 19세기 낭만주의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예술의 차원에서 완성하려 한 인물이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였다.

그는 돈키호테가 보여준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창조하려는 의지를 예술 속으로 끌어와, 붕괴하는 근대 사회에 예술을 통한 구원(Erlösung)이라는 새로운 숭고함의 비전을 제시했다.

돈키호테가 조롱받으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듯이, 바그너 또한 현실의 모순과 세속적 가치 속에서 무너진 인간의 영혼을 예술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그는 음악과 시, 철학, 연극을 통합한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을 통해, 현실을 초월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정신의 숭고함이 회복되는 순간을 만들고자 했다.


RichardWagner.jpg 리하르트 바그너


낭만주의적 선택: 이상과 현실


19세기 낭만주의는 돈키호테가 겪었던 것과 닮은 시대적 좌절을 경험했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이 무너지고, 계몽주의의 차가운 합리성이 인간의 감정을 억눌렀으며, 산업화는 사회 전반에 물질주의를 확산시켰다. 그 결과 예술가들은 인간 정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 속에서 깊은 무력감과 절망을 느꼈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현실에 단순히 반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이상예술 속에서 찾고자 했다. 예술은 현실을 넘어선 새로운 공간이 되었고, 그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숭고함과 내면적 이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트루바두르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을 통해 영적 성장을 추구했듯, 낭만주의자들은 끝없이 미완으로 남는 갈망(Sehnsucht) 속에서 예술적 성취를 발견했다.


이러한 사고는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맞닿는다. 그는 '음악이 언어나 논리를 넘어 인간의 근원적 의지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예술'이라고 보았다. 바그너는 이를 받아들여 음악을 내면적 이상을 표현하는 도구로 삼았다. 그의 음악극(Musikdrama)에서 흐르는 무한 선율(Unendliche Melodie)과 라이트모티프(Leitmotiv)는 고정된 형식과 화성의 틀을 넘어, 현실의 논리와 제약을 벗어나 끊임없이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정신을 소리로 드러냈다.


바그너 영웅들의 숭고한 의지


바그너의 영웅들은 중세 기사도숭고함이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존재들이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파르지팔"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한계와 모순 속에서도 중세적 이상을 지키려는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은 혼인, 계급, 사회적 규범 등 현실적 제약 때문에 성취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통한 극단적 선택으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택한다. 현실은 세속적 규범과 사회적 제약으로 사랑을 억누르는 공간이지만, 죽음은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나 영혼이 완전히 합일할 수 있는 초월적 영역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현실에서는 함께할 수 없지만,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행위는 중세 기사들이 헌신과 용기를 통해 숭고함을 실현하고자 했던 전통과 연결되며, 동시에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부정’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그들의 선택은 이상적 가치와 숭고함을 유지하며, 인간 정신이 현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파르지팔"의 주인공은 성배를 지키는 숭고한 소명을 수행하면서, 현실이 주는 유혹과 세속적 계산을 거부한다. 권력, 명예, 물질적 이익 같은 현실적 욕망은 인간의 판단을 흐리고 진정한 숭고함을 가릴 수 있다. 파르지팔은 이러한 세속적 고려를 배제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연민(Mitleid)을 자신의 행동 기준으로 삼는다.


겉으로 보면 그의 행동은 단순하고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중세 기사도가 추구하던 이상과 용기를 현실 속 타락과 비교하며 되새기는 과정이다. 그의 여정은 중세 기사도의 숭고함이 현실의 한계와 충돌하더라도, 인간적 덕과 자비를 중심으로 근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파르지팔의 순수한 연민과 결단은 중세 기사도의 이상을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숭고함의 최종 전환: 예술 속의 유토피아


바그너의 총체 예술(Gesamtkunstwerk) 구상은 그의 예술적 이상이 집약된 단계로, 관객에게 현실보다 더 숭고한 대안적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그는 라이트모티프와 무한 선율을 통해 음악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이상을 구현함으로써, 인간 정신이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는 경험을 제공한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중세 민네징거의 전통과 기사도 정신을 계승한 마이스터징거의 내용을 바탕으로, 예술적 이상과 현실적 제약이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그는 현실의 냉소와 이상에 대한 조롱을 배제하지 않지만, 이를 예술적 숭고함으로 포용하고 극복한다. 장인 한스 작스는 사회적 조롱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지켜내며, 그 과정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드러낸다. 바그너의 예술은 이처럼 시대의 염세주의를 넘어, 영원한 숭고함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숭고한 의지의 승리: 중세에서 근대로


중세의 기사도 숭고함은 세르반테스의 풍자를 통해 해체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꿈을 창조하는 근대적 의지(Wille)라는 새로운 윤리가 탄생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이러한 숭고한 의지를 예술적 유산으로 삼아, 무한 선율과 총체 예술이라는 음악적 수단을 통해 현실의 비판과 한계를 넘어선 영원한 예술적 이상으로 승화시켰다. 이를 통해 중세 기사도가 추구했던 영적 갈망은 19세기 낭만주의 예술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난다.


바그너의 영웅들은 중세 기사도의 이상과 정신을 단순한 옛 이야기 속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맞닥뜨리면서도 숭고함을 지키고 실천하는 인간적 의지로 재현한다. 그들의 삶과 선택은 헌신, 용기, 정의, 사랑과 같은 중세적 가치가 시대와 맥락을 넘어 근대적 의미를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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