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칸타타 BWV61 아는 척 하기 (2편)

루이 14세인가 예수인가

by 돈 없는 음대생

1714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바이마르 궁정 예배당에서 대림절 첫 주일을 맞아 칸타타 "Nun komm, der Heiden Heiland"를 초연했다.

그런데 이 곡의 첫 악장은 놀랍게도 프랑스풍 서곡(French Overture) 양식으로 시작된다.

독일 루터교의 경건한 예배 속에서, 프랑스 왕의 등장 음악을 연상시키는 서곡이 울려 퍼진 것이다.

바흐는 왜 이런 파격을 선택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왕의 위엄”이라는 상징에 있다.




루이 14세와 음악의 정치


17세기 유럽에서 프랑스는 예술과 정치의 중심이었다.

그 중심에는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가 있었다.

그는 음악, 무용, 건축, 미술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권력의 언어로 사용했다.

루이 14세는 자신을 신성한 존재, 즉 “태양처럼 세상을 비추는 왕”으로 연출했고, 그의 등장 순간은 곧 하나의 종교적 의식이었다.


이 정치적 미학을 음악으로 구현한 인물이 바로 장 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다.

이탈리아 태생이지만 프랑스 궁정에서 활동하며 루이 14세의 전속 작곡가가 된 륄리는, 왕의 입장을 위한 새로운 형식, 프랑스풍 서곡을 창안했다.




프랑스풍 서곡의 구조와 의미


프랑스풍 서곡은 단순한 음악적 구분이 아니라, 왕의 행렬을 시각적·청각적으로 재현한 구조였다.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각 왕의 등장과 궁정 질서, 권위를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1. 느리고 장중한 서두


이 부분의 핵심은 붙점 리듬(dotted rhythm)이다.

이 붙점 리듬이 왕의 느리지만 당당한 걸음을 형상화한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루이 14세거울의 방 북쪽 전쟁의 방(Salon de la Guerre)에서 출발해 남쪽 평화의 방(Salon de la Paix) 앞 왕좌까지 약 70m를 걸었다는 기록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왕은 2분 음표마다 한 걸음으로 음악에 맞춰 걸었다고 추정된다.


점음표와 뒤따르는 음표는 때때로 겹점 리듬(double-dotted)으로 연주되어 장엄함을 극대화했다.

템포가 너무 느리면 왕의 걸음에 위엄이 사라지고, 너무 빠르면 품격이 흐트러진다.

따라서 이 느린 부분은 단순한 서곡이 아니라 음악적 행렬(musical procession)이었다.


002.jpg 프랑스풍 서곡의 첫 번째 부분인 느린 부분 - 붙점 리듬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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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에 표기된 붙점 리듬과 실제 연주시의 겹점 리듬


2. 빠르고 활기찬 중간부


서곡은 이어서 푸가(Fugue) 또는 푸가토(Fugato) 형식으로 전환된다.

주제가 한 성부에서 다른 성부로 차례로 이어지며, 궁정 내 질서와 활력을 표현한다.

귀족들이 왕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처럼, 각 성부는 서로 모방하며 왕의 권위 아래 조화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005.jpg 프랑스풍 서곡의 두 번째 부분인 빠른 부분 - 보라색으로 표시된 부분의 서로 모방하는 선율이 특징이다.


3. 느린 리듬의 귀환


마지막에는 처음의 느린 주제가 다시 돌아온다.

행렬이 왕좌 앞에서 멈추고 절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왕의 존재와 권위를 강조하면서 서주를 마무리한다.


006.jpg 프랑스풍 서곡의 세 번째 부분인 느린 부분 - 첫 번째와 같이 붙점 리듬이 특징이다.




프랑스식 위엄을 교회로 옮긴 바흐의 대담한 차용


바흐가 프랑스풍 서곡 형식을 대림절 칸타타의 서곡에 사용한 것은 단순한 음악적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학적 선언이었다.


대림절교회력의 시작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기다리는 시기다. 바흐는 세속 군주의 음악을 빌려와 그리스도"이 땅에 오실 왕” 으로 맞이했다.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태양이었다면, 이제 그 자리를 하늘의 왕이 대신한다.


흥미롭게도, 헨델"Messiah" 역시 프랑스풍 서곡으로 시작한다.

온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의 등장을 왕의 입장처럼 선포한다.


바흐의 프랑스풍 서곡 또한 세속의 상징을 거룩한 언어로 바꾼 신앙의 선언이었다.

그는 프랑스식 위엄을 교회 안으로 옮기며, 음악을 통해 “참된 왕의 도래”를 예고했다.


031.jpg 빨간색으로 표시된 첫 번째 느린 부분, 그리고 붙점 리듬 / 초록색으로 표시된 두 번째 빠른 부분
032.jpg 빨간색으로 표시된 세 번째 느린 부분 - 느린 템포 표시가 없고 상당히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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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jpg 초록색으로 표시된 두 번째 빠른 부분의 순차적으로 모방하는 성부 진행




세속의 양식, 신성한 의미


바흐는 일반적인 현악 편성보다 한 성부가 더 많은 두 대의 비올라를 배치하여 중음역의 질감과 장엄함을 더했다.

바순이 저음을 받치며, 금관과 팀파니 없이도 웅장한 음향을 구현한다. 이 바순은 단순한 콘티누오가 아니라, 화려한 악기를 사용할 수 없는 대림절에서도 가능한 최선의 장엄함을 담당한다.


001.jpg Johann Lorenz Bach가 필사한 악보의 표지 - à due Violini, due Viole, Violoncello è Fagotto라고 적혀있다.




유럽 전체로 번진 ‘왕권의 소리’


프랑스풍 서곡의 형식은 루이 14세의 궁정 발레, 오페라, 군사 퍼레이드 등에서 시작되어,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합스부르크요제프 푹스(Johann Joseph Fux)는 카를 6세 황제의 즉위식 음악에 프랑스풍 서곡을 사용했고,

영국헨리 퍼셀(Henry Purcell) 은 궁정 오드(Ode)와 행진곡에서 프랑스식 붙점 리듬을 즐겨 썼다.

독일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프랑스의 쿠프랭(Couperin), 그리고 헨델(Händel) 역시 이 구조를 차용했다.


이처럼 프랑스풍 서곡은 단순한 음악 양식이 아니라, 왕의 등장을 알리는 권위의 언어였다.

각국 작곡가는 이를 권력과 위엄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바흐는 이 전통 위에서, 세속적 권력 음악천상의 왕권과 신성한 질서를 드러내는 음악으로 재해석했다.

결국 프랑스풍 서곡은 단순한 형식을 넘어, 권력과 질서, 신성함을 표현하는 무대가 되었으며,

바흐는 이를 대림절 칸타타 첫 악장에 적용하여 “참된 왕의 도래”를 선언함으로써,

프랑스의 정치적 상징루터교 신학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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