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가보트 아는 척 하기 (3편)

음악으로서의 가보트

by 돈 없는 음대생

가보트 음악의 문화적 역할


가보트 음악은 단순히 무용을 위한 반주가 아니라, 춤과 연회,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적 장치였다. 이 음악의 핵심 특징 중 하나인 ‘못갖춘 마디’는, 한 박 (2/2 박자에서) 먼저 쉬고 음악이 시작되도록 만들어졌다. 무용수는 이 공백 속에서 몸을 준비하고, 음악이 시작되면 정확하게 발걸음을 맞춘다. 바로 이 한 박의 여백이 궁정의 품격자제된 긴장감을 만들어 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기로 넘어오면서, 음악은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무용의 ‘설계도’ 역할을 했다. 루이 14세 시대의 무용 선생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은 “리듬은 왕의 발걸음을 그린다”라고 말할 정도로, 춤과 음악의 관계를 철저히 규정했다. 가보트의 규칙적이면서도 미묘하게 뒤로 당겨진 리듬은 무용수가 자연스럽게 동선을 유지하고 우아한 균형을 잡도록 돕는다. 즉, 춤과 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박 안에서 사회적 질서와 우아함을 체득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궁정 음악이 된 가보트


17세기 후반, 륄리는 자신의 오페라와 발레에 다수의 가보트를 포함시키며, 이를 궁정 음악의 핵심 장르로 만들었다. 륄리의 가보트는 단순히 민속춤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바로크 음악적 구조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음악의 반복적 구조와 장식음은 무용수의 발동작과 일치하도록 설계되었고, 각 악구마다 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되었다. 륄리 이후 장-밥티스트 랑베르(Jean-Baptiste Lambert),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역시 가보트를 극과 발레 작품에 삽입하면서, 가보트는 ‘궁정의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가보트 음악의 구조와 템포


가보트 음악은 대체로 반복과 변주를 포함한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각 부분은 두 번씩 반복되며, 장식음과 리듬의 미묘한 변화가 무용수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템포는 일반적으로 활발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으며, 프랑스에서는 느린 가보트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니콜라 르베그(Nicolas Lebègue), 장-앙리 당글베르(Jean-Henri d’Anglebert),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하프시코드 곡과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의 "Gavotte mit Variationen" 등이다. 특히 라모의 가보트는 느리고 서정적인 아리아적 성격을 띠기까지 했다.


가보트 음악의 성격에 대해 여러 음악학자가 언급했다.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Johann Gottfried Walther) (1732)
“가보트는 종종 빠르지만 가끔 느리다”

요한 요아힘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752)
리고동(Rigaudon)과 유사하지만 조금 더 온화한 템포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68)
“우아하고(gracieux), 종종 즐겁고(gai), 때로는 부드럽고(tendre & lent)”

요한 마테손(Johann Mattheson)
“튀는 성격은 바로 이 가보트의 고유한 특징이다; 결코 달리는 것이 아니다”
Johann Mattheson, Der vollkommene Capellmeister, § 88, P. 225.


즉, 가보트는 단순히 빠르고 활발한 춤곡이 아니라, 품격 있는 활발함과 때로는 우아한 서정적 느림을 동시에 포함하는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음악이었다.


17세기 이후 바로크 음악의 모음곡(Suite) 안에 포함되어 일반적인 모음곡의 구성곡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Gigue) 외의 다른 무도곡(Galanteries)처럼 Sarabande와 Gigue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탈리아에서의 가보트 스타일


한편, 이탈리아소나타(Sonate)나 협주곡(Concerto) 같은 기악곡에서도 가보트 스타일을 차용한 곡이 존재하지만, 반드시 춤을 위한 곡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나 헨델(G.F. Händel)의 작품에는 “a tempo di Gavotta”라는 표기가 나타나지만, 실제로 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연주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이는 프랑스와 달리, 이탈리아가 통일 왕국이 아니었고, 궁정 중심의 춤 문화가 거의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왕과 귀족이 춤을 즐기고, 그림과 춤 기보, 악보 등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어 춤과 음악이 긴밀히 연결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각 도시국가 단위로 문화가 분산되어 있어, 춤과 음악을 동시에 기록하거나 전승하는 체계가 부족했다.

따라서 이탈리아 가보트곡은 음악적 형식이나 리듬을 차용했을 뿐, 실제 춤과 직접 연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프랑수아 조제프 고세크(François-Joseph Gossec)의 가보트는 다소 예외적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가보트는 그의 1765년 오페라 "Rosine, ou L'épouse abandonnée"의 발레 장면에 등장하는데, 전통적인 ‘못갖춘마디’ 대신 '갖춘마디'로 시작한다. 이는 발레 장면의 음악적 흐름과 극적 효과를 고려한 결과로, 순수한 춤곡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이름만 가보트인 셈이다.


IMSLP740056-PMLP55858-Gossec_-_Rosine_Gavotte_VLN1.jpg 고세크의 가보트 - 2/2, 4/4박자도 아니고 갖춘마디로 시작하는 이름만 가보트다.
75bwddql.jpg 프랑수아 쿠프랭 - La Bourbonnaise 중 Gavote -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정석 가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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