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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Sep 30. 2021

제 가슴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워킹맘 다이어리

조리원 투어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두세 군데 추천을 받은 곳에 연락을 하고 조리원을 찾았다. 첫 번째로 찾은 조리원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신생아들을 보며 조리원이라는 공간은 아이도 쉬고, 산모도 쉬는 공간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것 같다.


원장이라는 사람이 작은 상담실에 들어가 제일 먼저 보여준 것은 '수유 일지'였다. "산모님, 수유는 하실 거죠?" 수유 일지에는 낯선 사람과 낯선 아이의 이름, 짧은 수유 텀으로 모유를 먹인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수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수유는 안 할 거라고 차마 대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미 알고 있는 모유수유의 장점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간단한 상담이 끝나고 조리원을 둘러보았다. "지금 입실한 산모와 신생아가 별로 없나 봐요?" 대낮인데도 컴컴한 거실이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원장은 신생아에게 최적의 수유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수유로 시작해 수유로 끝나는 조리원임이 확실했다. 첫 번째 조리원을 둘러본 후 남편이 어떤 거 같냐고 물었는데, 이런 동굴 같은 곳에서 2주씩이나 내 돈을 들여 젖만 먹이다가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어두운 분위기가 싫네"라고 답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조리원은 그나마 수유를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나는 첫 아이를 출산을 하게 되었다. 2박 3일 유도분만 실패 후 제왕절개로 낳았고, 수술 후 3일이 지났을 때쯤 병원 수유실에서 전화가 왔다. "산모님, 수유 안 하세요?" 처음엔 간호사에 퉁명스런 말투에 놀랐고, 두 번째로는 제왕절개 수술 후 온갖 진통제를 맞고 폐에 물이차 폐부종 치료약을 먹고 있는 와중에도 수유는 할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수술부위 통증 때문에 3일 동안 못 일어나던 상태였지만, 복대를 차고 겨우 일어나 아래층 수유실을 찾았다. 수유실에는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젖을 주는 산모들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제법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목욕탕도 아니고 이렇게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젖을 준다고? 그나저나 젖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젖을 주지? 나도 여기서 까야 되는 건가? 머릿속에 온갖 퀘스천 마크들이 가득한 상태에서 내가 희미하게 정신줄을 잡고 찾은 것은 ‘분유’였다. "죄송한데, 분유 좀 주시겠어요?" 


분유를 다 먹이고 수유실 밖을 나설 때쯤 앞섶이 축축이 젖고 있었다. 3일 동안 나오지 않던 젖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앞섶이 젖는데도 수술 부위가 아파 걸음이 불편해 허리를 숙이고 안전봉을 잡고 병실로 올라갔다. 젖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날 밤부터 젖몸살이 시작됐다.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젖몸살이 더 아팠다. 가슴이 돌로 된 불덩이처럼 딱딱하고 뜨거워졌다. 젖몸살이 있을 때는 가슴을 풀어줘야 아프지 않다는데 풀어준다는 건 곧 수유를 의미했다. 


남편이 없는 시간에 맞춰 몰래 주치의를 불러 말했다. "선생님, 저 단유 약을 처방받을 수 있을까요?" 주치의는 흔쾌히 약을 처방해주었고, 가슴에 붕대를 감고 있으면 단유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뜬금없이 가슴에 붕대를 차고 있는 모습에 남편도 눈치 챘는지 "수유는 하고 있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정말 수유를 하고 있는지를 궁금했다기보다, 지금이라도 제발 수유를 하라는 의미에 가까운 유도신문이었다. 단유약을 먹으니 씻은 듯이 젖몸살이 나았다. 남편에게 단유약을 걸릴 뻔한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남편 몰래 단유 약을 며칠 더 처방받고 무사히 병원 수속을 마쳤다. 그야말로 첩보영화가 따로 없는 '단유 작전'이었다. 가족들과 안부 전화하는 와중에도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는 '모유수유 잘하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럼 나는 속으로 '왜 이렇게 내 가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을까' 싶으면서도 "초유는 먹였어요"라고 안심시키곤 했다. 


조리원에 가서도 단유 작전은 계속됐다. 산모들이 밤새도록 수유 콜을 받고 수유를 하러 갔다. 새벽에도 옆방에서 들리는 수유 콜 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산모들은 유선을 뚫어준다는 마사지를 받고, 옹기종기 모여 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에게 젖을 줬다. 나도 수유 콜은 받았다. 대신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만 수유 콜을 받고 분유 수유를 하러 가겠다고 했다. 수유 콜은 정확히 3시간 간격으로 전화가 왔다. 정확한 정량을 3시간 간격으로 먹은 아이는 조리원에서도 잠 잘 자고 순한 아이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신생아 기간 내내 분유를 먹은 아이는 조리원을 나가서도 밤에 통으로 잔다는 일명 '통잠'도 금방 시작했다. 100일의 기적이 아니라 50일의 기적, 분유가 선물한 기적이었다. 


수유실에서도 종종 분유를 먹이는 산모들이 있었다. 단유에 좋다는 엿기름물과 식혜를 조리원에 요청해 먹는 산모도 있었다. 그 산모에게 왜 단유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상대에게 심리적 압박이 갈까 봐 물어보지 못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유수유는 아이와 산모의 합이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아이가 너무 예민해서 그 합을 맞추기 어려웠고 분유수유로 바꾸도록 조리원에서 분유수유를 추천 받았다고 했다. 젖, 젖, 젖! 젖 밖에 모르는 젖리원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에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 산모 스스로의 몸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길 작게나마 희망했던 것 같다. 모유수유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공식화가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 잡혀 있는 이상, 단유를 선택하는 일은 인위적이며 모성에 위배되는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변하고, 의료기술도 변하고, 워킹맘으로 일찍 복직을 해야 하는 엄마들의 말 못 할 속사정도 더 깊어지고 있다. 엄마가 엄마답게 살 수 있는 권리 또한 사회적 흐름에 맞춰 변모해야 하지 않을까.


워킹맘의 모유는 꼭 여자화장실이나 휴게실에서 변기나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엄마의 눈물로 귀결되는 신파로만 끝나야만 할까. 시대에 맞는 자연스러움, 시대에 맞는 자연의 섭리가 조성되어야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형성될 것이다. 산모끼리 수유실에서 모유에 대해 이야기하듯, 산모끼리 단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모유수유 수업이 있다면, 응당 단유 수업도 있어야 한다. 아이의 면역력에 그렇게 좋다는 모유수유의 장점만큼이나 분유 수유의 장점도 산모들에게 제대로 알려져야 하고, 영양가 하나 없는 분유의 단점만큼이나, 엄마의 몸에 있는 나쁜 성분까지 아이에게 전달되는 모유의 단점도 충분히 알려져야 한다. 둘째를 임신한 지금도 모유수유에 대한 생각은 여전하다. 제 가슴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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