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숨겨진 신호, 몸이 먼저 반응하다
대치동으로 이사한 후, 아들은 5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하루 네 시간씩 꼬박 앉아 공부하는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고, 에너지가 넘쳐 심지어 ADHD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공부보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데 더 흥미를 느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학원에서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무리하게 학원에 보냈다.
이사를 결정한 것은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공부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아이가 대치동이라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학업에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 주변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되면, 아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성향이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나는 아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직장 생활이 바빠지면서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학원을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응할 것이라 믿었고,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원 생활에 익숙해질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들은 학원 갈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어떤 날은 설사를 했고, 어떤 날은 열이 난다고 했다. 대치동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아들은 외할머니 집 옆에서 살면서 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편이셨고, 밥을 챙겨주고, 학원 숙제를 도와주며 늘 곁을 지켜주셨다.
이사한 뒤에도 외할머니는 자주 찾아와 아들의 식사를 챙겨주셨지만, 예전처럼 언제나 함께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오지 않는 날이면 아들은 학원 가기 직전에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너무 배가 아프다고. 이사 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정말 많이 아픈가 싶어 걱정이 컸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 외할머니 댁으로 가게 하거나, 집 앞 병원에 전화해 진료를 받도록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학원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원을 쉬게 되면 아들의 컨디션은 금세 회복되는 듯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점점 아들이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픈 게 아니라, 학원을 가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단호하게 학원을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아프다고 해도 억지로 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아들은 마지못해 학원에 가곤 했는데, 어떤 날은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고, 어떤 날은 학원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그런 날에는 결국 학원을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온 아들은 정말로 열이 나거나 설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꾀병이라면, 왜 진짜 아픈 걸까? 그리고 왜 집에 돌아오면 금방 나아져서 게임을 하고 있을까?
스트레스와 신체 증상의 관계
오랜 시간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 끝에야 나는 겨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스스로 아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숙제를 못 해 혼날까 봐 불안하고, 학원에 가는 것이 고통스러워 몸이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공부나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대치동으로 이사한 순간부터 아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환경이 바뀌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던 경쟁의 장에 던져졌고, 또래 친구들과 비교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때,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심리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 중 하나인 전환(conversion)이라고 부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무의식(unconscious)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예술, 정신의학 등 여러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consciousness), 전의식(preconscious), 무의식(unconscious)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 의식: 우리가 현재 자각하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
- 전의식: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필요하면 끌어올릴 수 있는 기억이나 정보.
- 무의식: 억압된 기억, 욕망, 본능적 충동이 존재하는 영역으로, 직접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
시험을 앞둔 학생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무의식 속에서 불안이 억압되고 있을 수 있다. 이 억압된 불안이 신체 증상(복통, 두통)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프로이트는 이를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라고 설명했다.
이런 증상은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스트레스의 직접적인 신체적 표현이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출근길에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특정한 환경이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면, 몸이 먼저 반응하기 마련이다.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들
나는 학원을 많이 보내고, 오래 공부하게 하면 성적이 오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이 겪는 신체 증상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단순히 학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일찍 아들의 힘듦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들이 학원에 가기 싫다고 할 때, 그저 "하기 싫은 걸 참고 해야 하는 게 공부야"라고 생각했던 내 태도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을까. 아들은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그 불안을 신체 증상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꾀병이라고 치부하며 학원가는 것을 밀어붙였고,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배가 아프다고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들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다. 학원을 쉬면 금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꾀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을 때 몸이 긴장을 풀면서 회복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정도면 참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괜히 아들에게 미안했다.
학원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답일까? 아니면 계속 다니게 하되, 조금 더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할까?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학원을 다니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학원을 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먼저 아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배가 아프다고 했을 때, 혹시 어떤 기분이 드니?"라고 물어봤다.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을 물어봐도 "그냥 몰라"라고 했다. 나는 조급해졌다. 아들이 속마음을 쉽게 이야기해 주길 바랐지만, 그동안 제대로 감정을 표현해 본 적 없는 아이가 갑자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아들이 직접 말하기 어려워한다면, 내가 먼저 내 감정을 이야기해 보자고 생각했다. "엄마도 요즘 회사에서 일이 많아서 머리가 아플 때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더라"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들이 감정을 조금씩 더 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오늘 학원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뭐야?"라고 물으며, 단순히 "어땠어?"라고 묻는 대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아들은 여전히 쉽게 말하지 않았지만, 가끔 한두 마디씩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숙제를 안 해 가면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무서웠어."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아서 막막했어." 그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학습 방식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공부할 내용을 네가 직접 정해볼래?"라고 물었고, 아이가 선택한 범위만큼 공부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무조건 주어진 양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부담을 덜 느끼도록 조절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더 이상 아들이 "배가 아파"라고 말할 때 그것을 단순한 핑계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떤 일이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까?"라고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들의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애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가 힘들어할 때 단순히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네가 힘든 게 뭔지 함께 고민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조금 더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가 행복하게 공부하고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공부보다 먼저,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아들의 마음도 살피려고 애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