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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ST Aug 06. 2020

빠른 과학, 빛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소설을 읽고

SF에는 낭만이 있다. 기술에 대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있고, 한편으로는 낯선 변화에서 인간은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심오함. 많은 SF물이 기술을 소재로 해서 결국 기억, 외로움 같은 개인적인 감정들을 다루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원시시대건 과학시대이건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고 매몰되는 나약한, 크게 진화하지 않은 동물인지도 모르겠다. 지구의 탄생일은 46억 년 전이나 인간의 기록된 역사는 그중 100분의 1이 안되니 어쩔 수 없을지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를 친구들과 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전체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던 그 영화의 고증을 두고, 인터넷 한편에서는 갑론을박이 있었던 듯도 하지만, 나는 그 영화가 주는 낙관주의가 좋았다('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란 영화의 카피처럼). 인간의 적이 아닌 최후까지 동행해주는 로봇, 암울한 지구의 상황에서도 과학과 이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 너무나 넓고 넓은 우주 어딘가에는 지금의 답답한 현실을 해결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미지에 대한 기대감. 영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어떤 벅찬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같이 본 친구 중 한 녀석은 마치 굉장히 슬픈 영화를 본 것처럼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사내 녀석이지만 꽤나 감수성이 풍부한 편인 그 녀석에게 '어떤 부분이 그렇게 슬펐냐'라고 물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공 (쿠퍼 대위)는 해피엔딩을 맞고 딸과도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브랜트 박사 (앤 해서웨이)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개척지에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하지 않느냐. 과연. 같은 작품 / 같은 장르를 접하면서도 각자의 감정 증폭 포인트(?)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개성이고, 인간적인 부분인 것일까.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들은 어떤 지점에서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부분이 있지만, 과거의 SF 선배들처럼 그리움, 기억 같은 인간성에 초점을 맞춘다. 


'관내분실'에서는 과학을 통해 과거를 잃어버리지 않고 저장할 수 있게 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과학의 발전이 되레 한 가족을 영영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둘 다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과학으로 편리함을 달성한 이후의 인간은, 무형의 기억, 그리움을 과학으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마치 '감정의 물성'에서 감정을 손에 실재하는 것으로 소유할 수 있듯이. 인간의 기억과 생각들은 언젠가 그가 죽고 나면 사라진다. 누구나가 죽는 세상에서 죽어버리면 사라져 버리는 생각이라는 것을 백업하기 위해서, 집착적인 성격의 누군가는 인류 최초의 책을 썼었는지도 모르겠다. 책 역시도 과거 동굴인 생활을 하는 인류의 시점에서 본다면 다분히 SF 적인 물건. 우리 모두는 기억되고 싶어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언제 까지든.



나의 세대는 기술의 발전이 가팔랐다. 다행히 나는 청소년기에 이미 인터넷을 접한 세대였기 때문에 조금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고 있지만, 점점 거세지는 기술의 발전 속도 앞에서 나도 언젠가는 도태되지 않을까? 인공지능, 자동화, 효율, 숫자가 지배하는 민간의 영역에서 나는 과거 부모님의 세대처럼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만약 그렇게 기계 대비 인간의 우수성이 사라진 시점이 온다면, 기계는 가지지 못한 인간만이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그리움, 분노, 좌절, 환희와 같이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운 '감정' 만인 것이 될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감정에 무덤덤한 기계가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가진, 부처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너무 먼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불안에 휩싸이는 것은 좋지 않다. 예정된 미래는 생각보다 연착륙하여 더디게 도착할 수도, 혹은 어느 날 갑자기 회귀 불가능한 지점으로 과속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기술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고 내가 담보할 수 있는 것들은, 책에서도 나왔듯이 오직 나의 인간성, 기억, 감정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것뿐이라는 것. 오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후회 없이 완전연소해내는 것 만으로 나는 나의 인간성을 증명하고 기계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사적으로 구현했다...라고 자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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