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의 추억

2016.1.29 이른 새벽

by Far away from

어렸을 적 난 심한 아토피를 앓았었다.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려움증에..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 것인지 정말 가려웠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려움은 상처로.. 상처는 가려움을 유발해 더 큰 상처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긁다 보면, 마치 극심한 운동을 하고 난 것처럼 온몸이 후끈 닳아 오르고 그 열로 인해 피부는 더 건조해졌다.


지극한 악순환. 긁다 보면 피범벅이 되는지도 모르고 알 수 없는 쾌감에. 해소감에 더 이상 나를 제어할 수 없는 물아일체의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밤새 긁다 보면 올라갈 대로 올라간 체온과 방바닥 사이의 온도차로 인해 결로가 생기고, 그 결로로 이불은 흠뻑 젖는다. 이불 위에는 내 온몸이 가루가 되어 벗어진 양. 살 껍데기가 가득 쌓이고, 하얗게 지새운 밤이 무색하게 난 그 뒤처리를 할 생각에 또 한번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렇게 길들여졌다.


누구를 원망할 법도 한데.. 세상을 향해 반감을 드러낼 만도 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미안하고 주눅 들어 살았던 것 같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이불을 밖에 널어주시는 것도 미안했고..


내가 그렇게 하얀 밤을 지새우는 것을 들키기도 싫었다.


아팠지만 아프기 싫었고.. 상처 투성이었지만 동정받기 싫었다.


햇살이 투명한 낮에는 누군가 나를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 싶으면 숨기 바빴고, 손가락이 갈라져 아플 법도 한데, 그 손가락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이 손가락이 갈라져 피가 나는 아픔보다 더 아팠다.


그 안에 알량한 자부심..


어두운 곳에서 내면의 나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의 밤은 찬란했고.. 내 안에 갇힌 나 자신은 누구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오래도록 상상하며 사색할 수 있었으며, 책이라는 간접경험으로 만나는 세상은 그 어떤 세상보다 더 달콤했다.


외면의 나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내면의 나는 그 누구보다 매끈하고 아름답길 바랬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아토피는 많이 호전되었고, 결혼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암묵적인 내면의 계시를 비웃는 듯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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