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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Mar 06. 2024

얼음눈동자

얼음눈동자


그 집 뒤뜰에 감나무 세 그루

감꽃 필 즈음이면 참 볼만하겠다

잡내 없이 마음 맑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고기 굽고 술 따르고

연노란 애기꽃 같은 웃음소리 터지겠다


알링턴애비뉴 워싱턴스트리트 베니스블라버드

대학로 종로3가 장충단길 이태원 만리동고개

416 518 615…… 그리고 1113 1644

달력을 넘길 때마다 보름달이 그려지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감꽃 피기를 마냥 기다린다


진이정은 ‘엘 살롱 드 멕시코’에서

“그립다라는 움직씨를 지장경에서 발견하고 울었다”고 했지만

나는 La 4번가 감나무집에서 세상 모든 형용사가

동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리운 한국이라는 형용을 416 518이라는 동사로 바꾸는 사람들

스스로 사회과학귀신을 자처하며 NLPD논쟁을 아직도 이어가는 사람들

대로보다는 가로수길 사잇길 골목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박용석 문동호 김유석 유미선 박소장님, 그리고 많은 감꽃동네 사람들


동사가 세상을 이끌어가듯 때로 차이가 세상을 만들어간다

방금 본 해는 7분 전의 태양이고 감나무 위 만월은 1.2초 전의 달이다


해에게 가까이 다가간 죄로 그 동네 이장은 오른쪽 눈을 태양에게 바쳤다

쫓기듯 찾아온 낯선 땅에서 꼬박 32년을 천형 속에서 살았다

밤 10시가 넘으면 홀로 감나무 위에 올라 늑대울음소리를 냈으리라

매일 마시는 소주의 대부분은 눈물이 되어 우수관으로 흘러가고

갈 곳 없는 수분들이 감나무 주위에 모여 꽃 피울 준비를 한다


그러다가 흘러가지도 모이지도 못하는 물이 하나씩 고여

눈자위에 맺혔다가 보름으로 가는 길목 차가운 초승에서

마침내 수정보다도 맑고 단단한 얼음결정체가 된다


2024년 2월 어느 날

나는 1만km도 넘는 이국땅 감나무 위에

대보름달보다도 더 빛나는 얼음눈동자를 본 적이 있다

감꽃 피고 지는 허공의 눈을 이제는 더 둥글게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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