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요우커 ‘싼커(散客, 자유여행객)’가 대한민국 쇼핑 지도를 바꾸고 있다.
‘싼커’는 단체 관광이 아닌 개별 여행자를 뜻한다. 이들은 주로 2030세대 젊은 층이 주를 이루며 강남, 홍대, 가로수길 등 한국에서 새롭게 뜨는 지역은 물론 면세점까지 들러 지갑을 연다.
‘싼커’ 사전적 의미는 흩어지다의 散(싼)과 손님인 客(커)자를 써서 ‘개별손님’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여행객이 증가했고 국내 여행업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을 통칭하는 단어로 ‘요우커’라고 불렀다. 한때 ‘요우커’는 국내 패션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며 명품은 물론 국내 인기 브랜드의 경우 사재기를 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명동이나 주요 쇼핑몰에는 중국어에 능통한 판매 사원을 고용해야 될 정도였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중국 관광객 중 개별관광객 비중을 조사한 결과 59.1%로 단체(40.9%)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노동절 연휴기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1,234명 중 ‘싼커’의 비중도 56%에 달했다. 대신 단체 패키지는 25%에 그쳤다.
# ‘요우커’지고 ‘싼커’ 뜬다
과거 ‘요우커’라 하면 가이드의 깃발에 따라 유명관광지를 도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대형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여행사가 추천하는 쇼핑몰, 면세점, 식당을 돌아다니며 한국 여행을 즐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길게 늘어선 대형 버스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요우커’의 주체는 더욱 젊어지고 개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중국 요우커의 새 주인공, 싼커에 주목하라’ 보고서에 따르면 저축과 투자를 통한 경제적 안정보다는 현재 삶의 행복에 소비를 아끼지 않는 80‧90년대생의 ‘젊은 요우커’들이 여행 산업의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명 바링허우 세대(八零後 世代). 바링허우는 덩샤오핑의 ‘한가구 한자녀 정책’ 실시 이후인 1980년부터 태어난 중국의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획일화된 패키지 관광 여행을 지양하고 각자 원하는 개별 자유여행 추구한다.
중국구어신증권(國信證券)에 따르면 2016년 춘절연휴기간 해외여행을 떠난 ‘요우커’ 중 1980년대와 1990년대 태어난 세대가 43%로 전체 ‘요우커’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태어난 세대는 불과 18%에 머물렀다.
이 같은 결과는 더 이상 해외여행이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20‧30대가 주도하는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해외 여행시장을 선도하는 ‘싼커’의 등장은 한국을 방문하는 ‘요우커’ 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요우커’들의 연령은 2005년 대비 0~20세와 21~30세의 비중은 각각 2%, 6%의 증가를 보인 반면 31~40세, 41~50세의 비중은 각각 7%, 9%의 감소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비자를 여행사를 통한 단체신청이 아닌 개인적으로 신청한 ‘요우커’의 수도 2012년 69만2,376명에서 2014년 140만7,761명까지 증가하며 불과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젊은 요우커’들이 개별 자유여행 컨셉으로 한국 방문을 하는 속도가 늘고 있음을 증명한다.
# ‘싼커’의 특징은?
그렇다면 ‘싼커’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한국을 방문하는 ‘싼커’들의 대표적인 소비 특징은 과거 ‘요우커’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요우커’들이 브랜드와 상품을 소비했다면 ‘싼커’는 한국문화를 소비한다. 즉 과거 ‘요우커’들이 명동이나 주요 쇼핑몰에서 쇼핑을 즐긴 것과 달리 ‘젊은 요우커’들은 홍대나 이대, 대학로, 강남 등을 찾아다니면 한국의 문화를 즐긴다.
특히 ‘싼커’들은 한국드라마나 영화 속에서와 같이 한류스타 스타일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한국의 음식을 먹고 드라마와 같이 하루를 보내는 문화 콘텐츠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SNS,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 활용에 능한 ‘싼커’들은 한국의 숨은관광지, 맛집 정보 등 최신 정보를 수시로 검색하고 서로 공유하는 성향을 보인다.
또 ‘싼커’ 등장은 기존 ‘요우커’들이 활용하던 여행 예약 채널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싼커’들이 여행 산업에 유입되면서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통한 여행상품예약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행상품뿐만 아니라 각종 입장권, 지도 등도 스마트폰을 통해 예약하는 비중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여행업체쥔디엔즈이(君典制衣)에 따르면 중국의 온라인 여행시장 매출이 2015년 전년대비12.5%로 상승했으며 이러한 상승세는 매년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온라인 여행시장의 성장은 중국여행객들의 스마트폰 활용도 증가가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2분기 기준 중국온라인여행사인 취날(去哪儿)에서 85%의 호텔, 52%의 항공권이 스마트폰을 통해 예약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경쟁업체인 씨트립(携程)에서 또한 유사한 결과(80%의 호텔, 65%의 항공권)를 보였다.
이 같은 트렌드는 지난 몇 년간 온라인쇼핑시장을 뒤흔들던 무즈족(拇指族, 엄지족: 두엄지를이용해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소비자)이 이제는 여행 예약시장까지 이동한 것으로 보여 진다. 주목할 점은 여행 산업의 무즈족은 과거 온라인쇼핑시장의 무즈족과 같이 업체 간의 가격비교, 서비스 비교를 통해 더욱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더 저렴한 항공권, 더 합리적인 숙박시설을 찾아 스마트폰으로 검색에 매진하고 있다.
# ‘싼커’ 쇼핑 지도를 바꾸다
‘싼커’들의 합리적 소비 트렌드는 여행 관련 상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이 여행지에 가서 즐기는 쇼핑 트렌드까지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가격대와 품질을 꼼꼼히 비교하며 최소한의 물품을 구매하는 실속형 ‘요우커’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쇼핑만큼은 예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싼커’의 씀씀이다.
LG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요우커의 경제학’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5년까지 ‘요우커’의 쇼핑지출이 전체 경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4.5%에서 68%로 급증했다. 다만 숙박비와 식비 비중은 6%p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싼커’들은 숙박비와 식비는 아끼지만 쇼핑 만큼은 즐긴다는 것이다. 이는 ‘잠자는 것’에 투자하는 것보다 두고두고 쓸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것이 낫다는 실용주의적인 마인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가격비교 사이트를 이용해 교통이 편리한 비즈니스호텔 혹은 게스트 하우스 등 저렴한 숙소를 골라 이용하면서 사고 싶어 하는 상품에는 아낌없이 지출한다는 뜻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해외 개별여행객의 1인당 지출은 전체 해외여행객 평균보다 18% 많았고 한국을 찾은 중국 개별여행객의 1인당 지출경비도 2,483달러로 중국 단체여행객과 전체 외국인 관광객보다 각각 19.4%, 31% 높은 것으로 기록됐다. 쇼핑의 시간과 선택의 자유가 있는 개별여행객들의 경우 백화점을 많이 이용하는 반면 단체관광객은 대체로 면세점 쇼핑에 집중하고 있다.
또 ‘싼커’가 많아지면서 쇼핑 지역이 변화도 생겼다. 과거 동대문, 명동 중심이던 곳이 홍대나 강남 일대로 확장되고 있다.
제일기획의 중국 자회사인 펑타이가 ‘한국지하철’ 앱에 등록되어 있는 관광 명소 1,500여 곳 중 유커들이 가장 많이 조회한 장소는 ‘홍대거리’로 나타났다. 남산N서울타워, 북촌 한옥마을, 명동거리 등 전통적인 인기 장소들이 뒤를 이었다. 또 서울 종로구에 있는 벽화마을과 이화여대 근처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지방 관광도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펑타이는 부산국제영화제, 원아시아페스티벌 등이 열린 부산과 한류 아이돌인 지드래곤이 운영하는 카페 등이 있는 제주 지역 검색량이 특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경기 가평의 ‘쁘띠프랑스’도 인기였다. 강원도 일대의 태백산, 함백산 등을 등반하고 횡성이나 태백에서 한우를 즐기는 여행 코스도 ‘싼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싼커’들이 빈대떡 등 한국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광장시장 전골목, 사우나 등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는 찜질방의 관심이 크게 늘어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 체험이 가능한 장소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며 “강남, 홍대, 건대 등도 ‘싼커’들에게 신흥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유통가 ‘강남 싼커’ 모시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세계백화점 등 유통가들의 ‘싼커’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신세계백화점이 오는 7일부터 9일까지 중국 유명 ‘왕홍’(파워블로거)을 직접 강남점으로 초대하는 ‘왕홍 신세계 강남 팸투어’를 진행한다. 중국 최대 쇼핑이슈인 연말을 맞아 신세계백화점이 강남을 찾는 중국 개별관광객 ‘싼커’를 잡기 위한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이전에도 중국 유명 파워블로거를 초청해 신세계 본점과 조선호텔 등 중국인들이 자주 찾는 명동위주의 팸투어를 다수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강남점과 강남지역을 주무대로한 팸투어는 처음이다.
이번에 초청되는 왕홍은 중국 유명패션잡지 에디터로 근무하는 특급 패션‧뷰티 ‘왕홍’으로 팸투어 기간 동안 최근 ‘싼커’들의 새로운 쇼핑성지로 불리는 강남점과 센트럴시티에 초점을 맞춰 강남점에서 최신식의 쇼핑환경과 트렌드를 직접 체험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다. 또한 센트럴시티에 위치한 특급호텔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직접 숙박하고 스파도 받아보는 등 최상의 서비스를 체험하며 파미에스테이션의 맛집도 방문 및 강남점 인근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서래마을 등 주변 관광명소까지 직접 찾는다.
왕홍이 강남점과 센트럴시티, 인근 명소에서 직접 체험하는 내용들은 자신의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국현지에 수시로 생중계되며 ‘신세계 강남점 소개영상’도 별도로 제작해 20여명의 중국 현지 파워블로거를 통해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매년 12월은 중국 4대 쇼핑기간인 춘절, 노동절, 국경절, 성탄절 중 성탄절과 연말이 끼여 있어 우리나라 유통업계에서 최대의 중국 쇼핑이슈로 불린다. 이는 국내 백화점들이 연말의 시작인 11월 말부터 명품 시즌오프, 12월 중순부터는 송년세일에 돌입하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에 없는 명품잡화 또는 패션의류 등 객단가가 높은 상품을 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실제 신세계백화점의 지난 2년(2014, 2015년)간 중국인 월별 매출비중을 살펴보면 매년 12월은 10%를 훌쩍 넘으며 연중 가장 높은 매출 비중을 나타냈다. 연말의 경우는 춘절, 국경절 등 다른 쇼핑이슈 때와 달리 깃발관광으로 대표되는 단체관광객 보다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쇼핑장소 등 개별 관광을 하는 ‘싼커’들의 비중이 특히 크다.
이는 춘절, 국경절 등에는 국가적인 연휴가 이어져 중장년층이 중심이 된 단체관광객이 한국을 많이 찾지만 연말의 경우는 별도의 공식적인 연휴가 없기 때문에 20~30대의 젊은 ‘싼커’들이 단기간에 짬을 내 한국을 찾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싼커’들이 전통적인 중국인 쇼핑장소였던 명동인근과 더불어 대한민국 패션 1번지인 강남을 주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 중국현지에서는 “강남을 가보지 않고 서울을 논하지 말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강남이 최고의 쇼핑장소로 뜨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신세계 강남점은 한류스타 선호도 1위 패션백화점으로 입소문을 타며 필수방문 코스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연말에 주로 찾는 젊은 ‘싼커’들의 경우 한국 사람들이 실제 즐기는 현지의 최신 트렌드 및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해마다 강남으로 발길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해(1~11월) 신세계 전체 중국인 매출은 지난해 동기대비 85% 신장했는데 지난 8월 증축‧리뉴얼 공사를 마친 강남점은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대비 200% 가깝게 폭발적으로 신장하며 ‘싼커’들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세계는 그룹차원에서도 강남을 찾는 ‘싼커’들을 잡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22일 중국 최대 온라인 모바일 결제서비스 업체인 ‘알리페이’와 마케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신세계백화점 전점뿐만 아니라 이마트, 신세계프라퍼티, 신세계사이먼 등 5개 주요 계열사까지 결제 서비스를 확대 도입했다.
이외에 현대백화점도 면세점 신규 특허를 취득하면서 강남지역 관광 인프라 개발에 300억원을 투자하고 롯데면세점도 1월 롯데월드타워 개장과 함께 ‘강남 싼커’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순민 신세계백화점 영업전략담당은 “최근 중국정부가 한국 요우커 단체 관광객을 20%까지 줄이는 여행 제한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향후 한국 중국인 관광객은 개별여행객인 ‘싼커’가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 중 최신 트렌드를 쫒아 강남으로 몰리는 젊은 ‘싼커’들은 가까운 미래에 주력 중국인 고객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에 맞춘 강남점 중심의 온라인 마케팅을 더욱 활성화 해 ‘싼커’ 고객들을 선점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싼커’의 유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관련된 서비스 및 콘텐츠의 다양성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스마트폰 활용도가 높은 ‘싼커’에게 개개인의 맞춤형 여행 서비스나 쇼핑 정보 제공 등이 필요해 보인다. 또 ‘젊은 요우커’들이 익숙한 알리페이, 텐페이 등과 같은 자국결제시스템과 연계해 소비를 편리하게 하고 관련 이벤트를 실시해 여행객들의 소비촉진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기업들은 백화점, 면세점 등 ‘싼커’가 즐겨 방문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기에 머물지 말고 숙박, 교통 등의 다양한 분야와 지역에서 ‘싼커’에게 편리한 소비를 촉진 시킬 수 있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