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고난에서 우리는 운명을 탓하기도,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또는 만만한 타인을 원망하며 나는 전혀 잘못 없다- 고 버티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지구 위의 모든 사람들은 손에 쥔 줄로 연결되어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 잡아당기는 힘과 방향에 따라 줄은 팽팽하기도, 한쪽으로 쏠리기도 하겠지.
사회적 권력이 개인의 삶에 작용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본래 차이가 있지만, 불평등은 인위적으로 조장되기도 한다.
주석과 참고문헌을 제외하고 본문만 400쪽 가까운, 내용도 활자도 빡빡한 이 책은,
역사학을 전공한 영국의 20대 청년이 2010년에 출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특별히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언사’ (8쪽)인 ‘차브’라는 단어를 통해 붕괴되고 쓰러진 노동계급의 현실을 분석하고.
영국 사회에서 작동되는 힘의 구조를 보여준다.
‘급증하는 무식쟁이 하층계급’(8쪽)을 뜻하는 '차브'라는 단어로 책은 시작된다.
가난한 자들을 공공연하게 조롱하는 최근 거론되는 ‘차브’라는 단어는 폭력, 게으름, 청소년 임신, 인종주의, 주정 같은 노동계급의 부정적인 특징과 연결된다. (17쪽)
대중문화의 소재로 킬킬거리거나.
차브 이미지를 악용해 사업을 하거나.
차브로 선동해 정치적 이득을 보거나.
언론과 매체에서는 한심한 '차브'에 관해 매일 떠들어댄다.
저자는 노동계층의 실태를 차근차근 설명하며 '차브'라는 편견과 실제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일말의 사실이 있다면 그 배경과 과정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수많은 관계자들의 인터뷰와 적절한 자료들을 제시하여 조목조목 증명한다.
영국에서 노동계급은 산업혁명 이래 영국의 산업을 떠받친 중추세력이었지만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가 찾아왔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정당인 노동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영국의 양대 정치세력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노동계급의 관심사와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전면적인 사회개혁 조치들이 도입되었고, 노동조합은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계급은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부상했다. (152쪽)
노동계급이 발언권을 가지면서 노동계급의 지위와 생활이 향상되었다.
노동자들은 제조업이 활발한 도시에서 대대로 노동자로 일하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치적 영향력, 조직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자신이 속한 계급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 대처 집권 이후 정책적으로 영국에서 제조업은 단기간에 갑작스럽게 몰락했고 노동조합은 철저히 박살 나게 된다.
노동계급은 산업과 문화와 조직력이 일거에 사라진 폐허에 놓이게 되어
일자리를 잃은 가장이 심리적, 물질적으로 무너지면서 가정이 붕괴되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라난 자녀 세대는 기껏해야 지역에 몇 없는 서비스업체에서 시간제로 일하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이에 더해 궁지에 몰린 그들을 '차브'라는 표현으로 마음껏 조롱하고 폄하하면서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정치권, 특히 보수당 정권이 자신들의 정책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붕괴 원인을 은폐하고,
복지 정책의 범위와 규모를 축소하려는 의도에서.
또한 자신들이 누리는 부유함을 정당화하려고 의도적으로 가난의 원인을 '열망의 부족', 즉 개인적인 결함으로 돌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처는 영국에서 "계급은 사라졌다"라고 선언했다.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최근 몇 년간 빈곤층은 실제로 더 가난해지는 상황에서 최하위 계층에 대한 적대감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은 비극적인 동시에 불합리한 일이다. 차브 혐오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부와 성공을 거둔 경우라면? 또는 운이 나빠서 더 가난해진 경우라면? 이런 가능성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소수 부유층 사람들은 자신감에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런 가능성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조치-즉, 우리들이 누리는 혜택을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하위계층 사람들이 원래 천성이 더럽고 우둔하며, 인종차별주의자에다 무례한 인간이라고 믿게 되면, 그들이 사회의 밑바닥에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차브에 대한 혐오감은 그것이 사람의 가치를 실제로 공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조작된 주장을 근거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서열 존속을 정당화한다. (203, 204쪽)
그러니까 보수당 정권은 영국에서 계급은 이제 사라졌고 지금 보이는 사회적 불평등은 오직 개인의 실력과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처는 사회계급을 없앨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단지 모두가 사회계급에 속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감추고 싶어 했던 것이다. 1976년 보수당의 공식문건에는 “국가의 연합을 위협하는 것은 계급이 아니라 계급 감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같은 순간 대처리즘은 영국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계급전쟁을 수행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두들겨 쓰려트렸고,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노동계급과 빈곤층에 전가했으며, 기업을 정부의 규제에서 풀어주었다. (71쪽)
대처리즘은 성공이 소유에 따라 측정된다는 새로운 문화를 촉진시켰다....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인간이라는 열망은 사라졌다. 그것은 사회적 희생과는 상관없이 개인으로서 자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88, 89쪽)
어떻게 정부가 부자들의 뒤를 밀어주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대처 주의자들은 낙수효과 즉, 최고위층에 쌓인 부가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현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처리즘은 실패한 경제정책 대신 희생자들을 공격했다. 희생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건 희생당한 개인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대처 철학의 핵심에는 가난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가난하다면, 그건 그들의 개인적인 실패 때문이다. (93쪽)
매우 과장되거나 왜곡된 '차브'라는 편견이 사회적으로 호응을 얻는 데에는 언론, 정치권, 기업체 등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의도적으로 '차브' 이미지를 악용하는 것에 더해,
가난의 실태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계급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언론이나 학계, 정치권, 기업체, 행정부 모두 사립학교 출신의 중산층이 장악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가난한 이들의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이다.
더해서 자신들이 누리는 부유함은 자신들이 유능하기 때문이지 사회적 불평등 때문이 아니라면서.
사회의 주요 기관을 장악한 권력층이 부모의 연줄과 금전적 지원으로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도록 도울 수 있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태어나서부터 생계에 허덕이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못나서 못 사는 것이니 입 닥치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기자들은 모두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구제할 길 없이 동떨어져 있다..... 노동계급 출신들이 신문사나 방송사에 자리를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은 학위를 따야 하는데 그 수업료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참 시절 끔찍하게 낮은 급료를 받는 직업의 특성상 그것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44쪽)
뉴스를 전달하는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권력의 회랑은 특정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하원은 대표성을 상실했다. 전체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다.”라고 케빈 맥과이어는 말한다. “그곳은 변호사, 정치적 언론인, 여러 전문직업인, 특히 교수들로 넘쳐난다. 반면 콜센터 직원이나 공장 노동자, 의회 공무원 같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 (45쪽)
그러므로 영국은 상당히 경직된 사회가 되었다.
... ‘차브’ 우화가 영국 사회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정작 사회적 문제의 희생자들을 문제의 원인제공자로 믿으려고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계층상승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데 쓰이는 지니계수는 1979년에 0.26이었는데 2011년에는 0.39까지 올랐다.... 이미 보았듯이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악마화 하는 것 역시 전례 없이 상승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 사회에 내재된 사회적 불의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더 가난해진다면 당연히 정부의 행동이 요청될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이 그들의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반대의 결론을 끌어낸다. (56쪽)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명문 대학 학생들 대부분은 출신도 그렇거니와 곧 특권층에 속할 것으로 기대하므로 마음은 이미 특권층이다.
저자가 졸업반 시절, 비교적 온건한 계파의 보수당 정치인이 학생들에게 비공개 연설을 하면서 '우리끼리' 속마음을 드러냈나 보았다.
보수당 고관은 마치 하찮고 시답잖은 말을 하듯이 입을 열었다.
“보수당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그 당이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겁니다.... 또한 그들이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은 딱 필요한 만큼을 딱 그만큼의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죠.” (60쪽)
그렇다. 보수당은 늘 온순한 개혁을 내세우며 서민들에게서 표를 얻어, 사실은 특권층에게 유리하게 권력을 행사해왔다.
보수당은 언제나 사회적 조직으로서의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아주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으로서의 노동계급을 회유하여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62쪽)
그러니까 영국 사회의 중추적인 위치에 있는 사립학교 출신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서로 공감하여 일사불란하게 결탁하고 협력한다.
서민계층에 대해 생각할 때는 선거에서 얻을 득표수와 세금을 걷어들일 때뿐.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하게끔 제도를 바꾸고 정책을 집행하며 자원을 배분한다.
그러면 원래 노동조합에서 비롯된 노동당은 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보수당 지도층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권층이었고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를 뿌리 깊게 옹호했다. 노동당은 어떠한가? 전 내각 관료로서 철두철미하게 신노동당 계열인 헤이즐 블리어스 같은 정치인조차도 노동당의 목표가 무엇보다 노동계급이 의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것이 노동당이 설립된 근거입니다. 그전에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보건의료제도에서 노동자의 인권까지 전후 노동계급의 복지를 증진시켜온 굵직굵직한 개혁은 모두 노동당 정부에서 시도된 것들이다. (121쪽)
하지만 신노동당이 되면서 변질되었다.
신노동당의 지도부 역시 중산층 출신이어서 고정 지지층인 노동계층은 제쳐놓고 중산층에 집착하는 중이다.
신노동당의 철학은 노동계급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 뿌리박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철학은 노동계급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고든 브라운은 2010년 총선에서 ‘어느 때보다도 확대된 중간계급’을 만들어내는 데 매진했다..... 신노동당의 시각에서 열망 있는 노동계급이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126, 127, 128쪽)
물론 신노동당은 세습된 부와 사립학교를 철폐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신노동당은 중간계급의 입맛에 맞는 범위 내에서만 ‘실력 사회’를 주장했다. 실력 사회는 현존하는 불평등에 승인도장을 찍어주고 그것을 가치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주고 말았다.... 실력 사회는 최상층의 사람들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며 바닥층 사람들은 그저 충분한 재능이 없어서 그런 자리를 차지한 거라는 주장에 이용될 수 있었다. 교육적인 면에서는 학구적인 것을 선호하고 직접적인 교육을 무시하는 데 이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치’의 기준조차 흔들렸다. 가령, 백만장자 광고 컨설턴트가 서열에서 병원 청소부보다 상위에 있을 가치가 있는가? (137쪽)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중산층이나 보통 사람들의 상상 속 중산층은 사실 영국 사회 상위에 속하는 소수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실제 영국 중산계층 대부분은 살림이 쪼들리는 서민들이다.
중산층 당사자인 바로 그 서민들은 자신들이 현실적으로 노동계층에 속한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상위 중산층인 소수의 그룹에 유리한 정책을 찬성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오늘날 손을 쓰는 블루칼라와 단순 사무직 화이트칼라 인구는 총노동인구의 반을 넘어서 2천8백만 이상에 이르다. 영국은 비서와 상점 점원, 단순 관리직의 나라다. 이 다수의 삶은 언론과 정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된다. (50, 51쪽)
복지 정책에 늘 따라붙는 부정 수급 문제가 있다.
부정하게 복지 대상자가 되어 세금을 좀먹는 사람들이 있으니 복지 정책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엉터리 복지금 수령으로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10억 파운드로 추정된다. 그러나 공인회계사 리처드 머피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탈세로 새 나가는 1년 예산은 700억 파운드에 이른다.... 정말 치명적인 모순은 듀스베리 모어 같은 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언론인보다 수입 대비 많은 세금을 낸다는 사실이다.
(48쪽)
그래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부모덕에 정치인으로 성장한 캐머런은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한다.
“비만과 가난? 그건 당신의 잘못이라고”,
“(개인이) 책임감을 가져라” (106쪽)
권력을 쥔 특권층은 가난뱅이의 고생에는 아랑곳 않는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느라 바쁘기 때문에.
불황이 경제를 강타하기 전부터 영국 노동계급의 임금은 나아지지 않았다..... 2005년 기업의 이윤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노동자들의 주급은 오히려 거의 0.5% 감소하는...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자, 노동자들은 부유한 은행가들의 탐욕이 초래한 이 위기의 대가를 대신 짊어지도록 내몰렸고, 임금동결은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 (230쪽)
과거에 생산성 증대는 곧바로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영국에서,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임금 상승률의 두 배를 기록하고 있다.(232쪽)
가난하다고 특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공정한 규칙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일의 가치가 아니라 특권층의 직업에 심각한 가중치를 더한다.
많은 비(非) 산업부문 일자리들에 부과된 낮은 지위는 대체로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사회적으로 유익하지만 임금은 형편없는 일자리들에 대해 우리가 키워온 혐오에서 비롯된다. 이는 실력주의라는 신흥 종교의 부산물로,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의당 그의 ‘실력(merit)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 실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싱크탱크(NEF)는 2009년 여러 직업들의 사회적 가치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병원 청소부들은.... 임금 1파운드를 받을 때마다 10파운드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다.
폐기물 재활용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방위적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자원의 낭비를 막고, 재활용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상품을 재사용하고, 탄소 배출을 억제한다.... 이들에게 임금을 1파운드 줄 때마다 또 다른 12파운드가 창출되는 셈이다. 이 싱크탱크가 똑같은 모델을 런던 금융가의 은행가에게 적용해보았더니, 그곳의 금융활동이 초래한 손실을 고려할 경우, 그들은 임금으로 1파운드 받을 때마다 7파운드에 달하는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광고대행사 임원들의 경우는.... 그들의 은행 계좌에 1파운드가 입금될 때마다 11파운드가 사라진다. 결국, 당신은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저임금에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일자리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234,235쪽)
개인의 운명은 본인들이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좁은 영역이 있고,
태생적으로, 사회적으로 이미 한계가 그어진 더 크고 강력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 내가 해낼 수 있는 범위인가, 사회적 문제인가, 그 원인을 먼저 정확히 분석해야 할 것이고.
답을 얻은 뒤에는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우리라는 단위에서 개선하고 혁신해야 하는 것에 눈을 돌리고 연대하고 힘을 쏟아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