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영어학원 입성기 1부

생존영어에서 LEX Kim 진입기

by 살찐사마귀
얼떨결에 떠난 영국, 뜻밖의 '생존 언어' 혹은 '생존 영어'


아들이 6살이 되었을 때, 그냥 보통의 아이처럼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 영어를 가르칠 계획은 없었다. 모국어가 먼저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영국행(자세한 스토리 : https://brunch.co.kr/magazine/gblife).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했던 아들은 새로운 환경에 놓여 "생존"해야 했다. 원어민이 아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마법처럼 6개월이 지나자 영어가 편해졌고, 이어진 1년은 폭발적인 성장의 시간이었다. 아들은 집에서 모국어로 질문해도 영어로 답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난 막연히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는 잊고, 한국어 금방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순진한 예측이었을까?


귀국 후 딜레마 : 영어를 잊지 않게 하라!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반에서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두 명 있었고, 그중 한 명이었지만, 다행히 적응 속도는 빨랐고, 한국어도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지점이 하나 있었는데, "생존으로 얻은 영어가 녹슬지 않을까?"였다.


조금은 의아한 지점이지만, 아들은 스스로 현행을 유지하고 있었고, 자기만의 방식이 있었다. 왜 그런지 나중에 물어봤을 때, '영어를 잘하는 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는가? 여하튼 유지 방법은 의외로 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었고, CBBC 뉴스를 아침마다 즐기는 수준이었다. 물론 책은 한글보단 영어로 된 책을 계속 보는 것도 한 몫했다. 집 근처의 도서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영국문화원의 리턴이반에 보내며 최소한의 관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 친구를 보러 영국에 갈 수 있다.'과 '친구가 올 수도 있다.'를 강조했고, 실제로 작년에 영국에서 친구가 한국에 놀러 온 데다가 영국까지 다녀왔으니 더더욱 영어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대치동 첫 발걸음 : '7세 고시'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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