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책임, 그리고 가능성을 마주하는 마음
지난 글에서 나는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바보를 바라보았다.
'아직'의 자리에서
가능성을 믿어 보자고,
그 첫걸음을 조용히 남겨 두었다.
그런데 삶은
한 장면에 오래 머물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늘 예고 없이
우리를 다음 순간으로 옮겨 놓는다.
상상의 자리에서 현실의 자리로,
가능성보다 책임이 먼저 떠오르는 시간으로.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바보가 내 하루에 남긴 흔적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한다.
직장인의 눈으로 바보 카드를 바라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명함을 받던
내 신입사원 시절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먼저 앞서가고,
발끝이 늘 가벼웠던 얼굴이
그 카드 속에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반복되는 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게 무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익숙함은 어느새 두터운 벽이 되고,
매너리즘은 마음에 먼지를 채운다.
그때 마주한 바보는
그 시절의 나를 비추기보다,
내 안의 깊이 묻어 두었던
처음의 설렘을 거칠게 깨운다.
이미 다 안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하고,
"이건 안 돼"라는 말로
먼저 닫아 버렸던 길 앞에서,
아직 열지 않은 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게 조용히 손짓한다.
그래서 무언가에 가로막혀 답답한 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것 같은 날이면,
나는 바보를 가만히 떠올린다.
다시 처음의 자리에 서 보라고.
너무 재지 말고,
틀에 갇히지도 말고,
그저 한 번, 그냥 시작해 보라고.
바보는 늘 그렇게
말없이 내 등을 밀어준다.
가장의 눈으로 바보 카드를 바라보면
그는 더 이상 철없는 모험가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 걸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내 선택 하나에 가족의 내일이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의 작은 배낭을 볼 때면,
오히려 내 어깨에 얹힌 묵직한 책임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바보가 절벽 끝에서 위태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가장인 내게 유난히 선명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짐이 무거울수록 사람은
현실적인 걱정부터 먼저 헤아리게 되고,
결국 고개를 숙인 채로 하루를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바보는 그 순간
딱 한 번만이라도
고개를 들라고 말하는 듯하다.
가장에게는 늘 확실한 정답이 없다.
하지만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면
흔들려도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바보 카드는
지키고 힘겨운 하루의 끝에서,
"오늘은 오늘만큼"이라며
나를 조용히 일으켜 세운다.
바보는 그렇게
가장에게 하늘을 한 번 더 보게 한다.
나는 바보(THe Fool)를
조경가로서는 창조의 낭만으로,
직장인으로서는 초심의 용기로,
가장으로서는 순수한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서 있는 자리와 역할은 저마다 달라도
그 시선들은 결국 하나의 태도로 모인다.
그것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현실을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마주하려는 마음.
바보는 0번 카드다.
0은 아무것도 없는 숫자가 아니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다.
비어 있는 '아직'의 자리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하나로
오늘의 한 걸음을 기꺼이 시작하게 하는 힘.
나는 그 믿음을,
낭만이라 부르고 싶다.
오늘 같은 날,
누군가 바보 카드를 내밀며
이렇게 조용히 묻는다면.
"이 카드가 지금 내게 머무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적어 둔다.
오늘 당신이 마주한 바보는
정해지지 않은 자리에서도
가능성을 향해 마음은 열어 두는 카드다.
완벽한 답을 기다리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아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그 서툰 발자국 하나가
멈춘 듯한 당신의 오늘을
다음 장으로 넘길 테니까.
그러니,
지금 시작해도 된다.
오늘 하루만큼은,
바보처럼 망설임을 내려놓고
마음이 닿는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