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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Sep 26. 2024

3. '부부 상담' 받아보실래요?

 개인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과 벽 같았던 남편에게서 답답함을 느꼈고, 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열 번의 개인 상담을 통해서 내가 살면서 했던 선택들의 이유를 반추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결정하고 힘을 얻었었다. 하지만 혼자서만 생각을 바꾼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가자고 말했었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걸 매우 힘들어하는 남편은 강경히 거부하고는 했었다. 언젠가 생일 선물이나 결혼기념일 선물로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가자고 해봐야지, 하면서 남편과 나의 어긋나는 감정의 시간들을 견뎌왔었다. 직면해서 상황을 바라보고 해결하고 싶어 하던 내 성향을 남편처럼 회피하는 성향으로 바꿔가며 남편과 나 사이의 불협화음을 귀를 막고 외면했다. 깊은 감정적인 교류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부부 사이는 아니더라도, 표면적으로 두 아이를 둔 지극히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혼자 믿었었다. 지독한 외로움을 외면한 채. 


 먼저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가자고 했던 건 남편이었다. 부부 사이를 유지할 마지막 지푸라기라고 생각했었던 걸까?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흘러갈 대로 가버려라,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었지만 이대로 끝내면 그려지는 아이들의 미래 때문이었다. 가정의 유지와 포기라는 갈림길에서 운전대를 쥐고 있었지만, 뒷좌석에는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도착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와 올곧은 판단은 남편을 따라 부부 상담에 가는 것이었다.


 상담실 테이블엔 어느 상담실이 그럴 듯 네모난 티슈가 놓여있었다. 마음껏 이야기하면서 눈물 콧물 다 쏟아도 됩니다,라는 확인을 받은 듯 안심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하며 몇 번씩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았고, 남편은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상담사가 넣어주던 적당한 공감과 위로의 추임새보다, 가끔 남편을 야단치듯 봐주는 경멸의 눈빛에 더 마음이 편해진 건 왜였을까. 비밀을 보장한다는 서류에 사인을 했지만 가끔 상담사의 가십거리에 내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까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불편함은 금방 잊었다. 나름 상담사와 한 편을 맺었다는 동질감으로 갖고, 언젠가 읽었던 심리학책에서 배운 짧은 심리학적 식견을 섞어 현 사태에 대한 나름의 원인분석까지 해가며 스스로 내 상처를 조금씩 치유했다. 


 물론 상담사는 일방적으로 누구 편을 들어주진 않는다. 균형을 가지고 남편의 이야기도 듣고 그의 이야기에도 공감을 건넸다. 내 상처와 우울의 큰 부분이 남편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때론 상담사가 남편에게 건네는 공감이 불편하긴 했지만 남편이 속마음을 타인에게 말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신선했다. 남편의 모습에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꼈던 건 그에게 남은 애정 때문이었는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내 나름의 정신승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10회의 상담 기간 동안 무엇이 달라질지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상담 기간 동안 과거에 대한 한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부부 관계에 문제원인을 찾아서 직면해 보는 연습도 하고, 대화를 하는 방법도 배웠다. 대화를 하는 방식을 배운 다는 것이 아기 걸음마를 학원에서 배우듯 쓸데없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막상 배우고 나면 그동안 얼마나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는지 많은 부부들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이런 걸 미리 배우고 실천했으면 지금까지 내가 겪은 상처는 없었을까? 나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미련이 마음에 질척거려 쓴 맛을 냈다.

 

 즐겁다, 슬프다, 화가 난다 정도의 단순한 감정체계만 가지고 있었던 남편과 상담사가 알려준 무드 미터 종이를 뽑아 들고 매일 그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연습을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늘고 감정을 꺼내 마주 보았다. 꺼내 보이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감정은 정작 꺼내 놓고 이리저리 건드려 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감정을 공유해도 불편해지는 일은 없다는 걸 서로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감정을 더욱 다양하게 느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회피 성향의 남편에겐 정말 큰 변화였다는 걸 알기에 돌처럼 굳어진 내 마음도 조금은 열렸겠지만,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대화를 그동안 해오지 못하고 살아온 내 세월이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상담 시간에 연습했던 것처럼 상대방의 말을 되풀이해 맞게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공감의 말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게 아니지’가 먼저 나오는 내 말 습관도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었다. 처음엔 나한테 그런 말 습관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의식을 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억울한 마음에서인지 급한 마음에서인지 나도 남편의 말을 쉽게 부정하고 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말로 곱씹어 보면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당신은 그런 감정이 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템포 늦어도 깨달음처럼 진짜 공감이 오고 가기도 했다. 공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일인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일인지. 연애와 결혼 생활을 통틀어 약 20년의 시간 동안 느끼지 못한 공감(그게 혹은 공감하는 척일지라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담사에게 배운 부부 대화법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부부 상담을 받으며 배운 것 중 가장 효과를 많이 봐서 추천하고 싶다. 이런 대화의 장으로 서로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투우사적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누군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잘못을 저질러서 끌려오기 전에, 더 발전적인 부부 관계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부부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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