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탓'을 하고자 해서 받았던 풀배터리 검사는 역시나 '나의 탓'-
내 우울증의 2할 정도는 육아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시험관을 하며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아이였지만, 육아는 정말 녹록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가 그렇게 자주 깨서 수면부족에 시달릴지도 몰랐고, 가슴만 물리면 아이가 쪽쪽 젖을 빨 거라는 환상과는 달리 수유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비굴했다.
육체적으로 탈탈 털리는 영유아기를 지나, 첫째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했다.
보통 이상의 예민함과 짜증을 탑재하고 있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적응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너무나 모범생이지만 가장 만만한 나(엄마)에게는 온갖 짜증을 부려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옛날 엄마에게 들은 ‘너 같은 딸 낳아봐’라는 말이 저주가 되어 들어맞고 있는 건가 흠칫하다가도,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지, 역시 생긴 것도 아빠를 빼다 박더니 성질도 비슷하다고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여기에 첫째보다 조금 더 예민한 둘째의 짜증 공격이 더해져서 미치기 일보직전의 나날을 견디고 있었다.
그때 첫째의 틱 증상이 나타났다.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향인데 초등학교에 간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을 테고, 하필 이때 갑자기 아빠의 지방근무로 주말 부부가 되어 아이의 불안이 더 가중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틱 증상이 소아에게 아주 흔한 증상이라고 하나 그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정말 타들어 간다.
틱 증상은 아이에게 교정해 주기보다 무시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려니 거슬리고 신경이 쓰일 뿐만 아니라, 나만 무시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닌데 혹시나 친구들이나 주변 어른들이 이 틱 증상에 대해 무어라 쓸데없이 말을 붙여서 아이의 자존감에 큰 흠집이 나지 않을까 초조했다.
어린이 상담센터에 아이를 데려가 놀이를 빙자하여 아이의 내면에 접근해 보려 했지만, 상담사는 틱 증상도 잘 눈에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이가 똑똑하다고 칭찬했다.
상담센터를 오가며 답답함의 시간을 견뎠더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틱 증상은 나아지긴 했지만, 아이의 짜증과 생떼는 선을 넘기 일쑤였다.
내 육아 방식이 잘못되었나 해서 매일 육아서를 뒤적거려도 보고, 참아도 보고 혼내도 봤지만 아이는 매일 나를 상처 입히려고 작정한 듯 맹수처럼 공격했다.
상담사는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배터리 검사를 권했고, 꽤 비싼 금액에 망설였지만 혹시나 아이에게 내가 모를 정서적인 문제가 있나 해서 받아보기로 결심을 했다.
풀배터리 검사는 정서, 인지, 사고, 행동습관, 생활방식 등을 측정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심리검사를 모아놓은 것이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간 아동심리상담센터에서 임상심리사와 1:1 면담으로 3시간 정도 걸려서 검사가 진행됐고, 아이가 검사를 받는 동안 문장완성검사와 MMPI-2의 부모 검사를 같이 받았다.
검사 결과 아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지능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 부부에게 보였다.
나는 상당한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고, 아동의 양육 및 훈육 과정에서도 충분한 에너지를 투여하지 못한다고 해석했다.
남편은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기분으로 일상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의욕이 저하되고 무기력감을 경험하면서 아동이 바라는 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쏟지는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풀배터리 검사 결과로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명확히 문제가 있어서 정확한 해결책을 바랐던 걸까?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감과 답답함이 같이 들었다.
결국 아이가 부리는 짜증은 충동적이고 제어하지 못하는 그냥 어린아이의 성격적인 특징이었고, 나와 남편은 그런 아이를 포용해 줄 그릇이 되지 않았던 거였다.
어렸을 때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모님의 사랑.
결혼하고도 결코 충족되지 못했던 내 외로움과 애정 결핍에 나보다 작고 약한 누군가를 보듬어줄 사랑의 샘물은 말라있었다.
혹은 나도 모르게 아이와 나의 갈등 관계로 남편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생하고 있으니 나를 좀 봐달라고.
나를 좀 사랑해 달라고.
애매한 나의 메시지와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는 남편 사이에서의 갈등은 애꿎은 아이에게 피해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만큼 외로웠을 아이를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음이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받은 양육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애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유리병에 갇힌 새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너의 탓'을 하고자 해서 받았던 풀배터리 검사가 역시나 '나의 탓'이었구나라는 쓰라린 자책을 하게 했지만, 이 자책이 아이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기는 했다.
아이의 짜증을 표면적 행동으로만 비난하지 않고 그 안에 깔린 감정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정말 화가 나는 순간에도 내가 아이를 더 많이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줘야 하는 존재라는 걸 되뇌었다.
물론 화를 참는데 우울증 약의 도움도 받았지만.
풀배터리 검사로 내가 얻은 건 아이에 대한 이해도 있지만, 결국 나를 돌아보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었다.
더 이상 누구 탓도 하지 않고, 일단 나의 우울증부터 고쳐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더 생겼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해야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아이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구나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