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캡. 내가 기타를 치기 어렵다는 의미를 선생님은 완곡하게 표현해 주셨다. 곤란해 보이는 눈빛, 피씨 윈도 화면에 뜬 버퍼링 마크처럼 규칙적인 템포로 테이블 위에서 까딱거리는 손가락들. 선생님의 다음 한마디를 기다리는 동안 내 왼손은 벌거벗은 채로 기타를 꼭 쥐고 있었다. (물론 내 손이 평소에 옷을 입고 다닌다는 뜻은 아니다.)
다섯 살에 사고로 왼손 검지 반마디를 잃었다. 도마 위에서 식칼로 식재료를 숭덩숭덩 썰던 엄마를 따라 하고 싶었던 나는 숨겨놓은 칼을 어떻게 찾아내서 여리디 여린 다섯 살짜리의 작고 얇은 손톱을 애당초 목표로 했던 분홍 소시지와 함께 숭덩 썰어버렸다. 고통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몇 장의 낡은 사진 같은 병원의 풍경이 어렴풋이 뇌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오른손잡이인 나에게 왼손 검지 반마디의 부재가 큰 불편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단지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자 나 스스로 왼손 검지를 요리조리 숨기는 불편함을 떠안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특출 나게 아파본 적 있는 손가락은 그렇게 살면서 내내 특별 관리대상이 되었다. 휴대폰을 조작할 때에도 키보드를 두드릴 때에도 나의 작은 결함이 노출되지 않도록 묘한 자세를 취하는 습관은 30년간 고스란히 내 몸에 아로새겨져서 내 무의식을 감싸 쥐는 붕대가 되었다. 아마도 이 때문이겠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신체의 이 작은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손이라는 굉장히 노출된 부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7살에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 느꼈던 창피함과 37살에 처음 만져보는 기타를 안고 느끼는 이 당혹스러움 사이에는 30년의 간극이 있었음에도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아주 흡사한 그 어떤 씁쓸함이. 내 평생 왼손 검지 반마디가 없어서 할 수 없었던 일은 고작 검지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뿐이었는데 기타 코드를 잡기에는 생각보다 어려움이 크다니. 취미로 새롭게 배워보려던 기타야 다른 악기로 바꾸면 그만이지만, 그 어떤 악의도 없는 선생님의 고민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덮어두었던 베일이 의도치 않게 벗겨지는 감정적 변화를 맛보고 있었다. 30년간 지켜왔던 나의 대처법은 이토록 견고하지 못했다.
마침내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하셨고 다음날 카드 사용내역에는 40만 원이 대차게 찍혔다. 나의 첫 왼손잡이 기타.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취미에 거금을 쓴 것은 아직도 흉터가 되지 못한 채 가려져있던 상처를 제대로 마주해 보겠다는 일종의 투쟁심 같은 것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구하기도 힘든 비싼 왼손잡이 기타를 대뜸 사서 나타난 신입을 보고서 놀란 눈을 한 선생님의 앞에 서있던 나는 지미 핸드릭스가 되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에도 왼손 검지가 많이 쓰여서 25만 원에 팝니다. 구매한 지 한 달 이내. 사용감 거의 없음. 튜닝기랑 초크 다수 서비스로 끼워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