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다 이해해 줄게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이물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모님의 간병이나 수술 문제로 형제끼리 돈을 나누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살림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형은 왜 그것밖에 안 내지?"라는 불만이 생기지만, 자신의 상황이 여유로울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중 화자는 큰 성공이나 호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그런 순간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평소 환자분들께 자주 드리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갈등의 원인이 문제 그 자체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갈등이나 친구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많은 분들이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상담을 받습니다. 물론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에 여유가 있는가'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나 거슬리는 행동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거슬리게 됩니다.
'마음의 여유'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기분이 좋다'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져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지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마음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져 모든 것이 예민하게 다가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같은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평소 성격이 좋았던 사람도 이러한 심리적 문제로 인해 예민하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만약 최근 들어 자신의 성격이 변했다고 느껴진다면, 단순히 기분 탓으로 넘기지 마시고 혹시 나에게 우울증이 생긴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속 화자는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마음속에 심리적인 여유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각박하고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심리적 여유입니다. 심리적 여유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넘어,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관계의 갈등 속에서 '문제'를 찾기 전에, 먼저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기분 앞에서는 사소한 이유 따위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