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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5. 2022

왼손잡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왜 성소수자와 왼손잡이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대학 3학년생일 때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카오산 로드에서 난생처음으로 깜짝 놀랄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설픈 여장을 한 태국 남자들이 외국인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길거리에서 호객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만 해도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의 성 소수자들을 직접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남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냥 숫기 없는 남자인 척, 터프한 여자인 척 살아야만 했다(우리 동네 허름한 극장에서는 성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 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활보하는 태국의 트랜스젠더들이 너무 신기하게 보였다(난 그때 그들을 피해 다녔다. 커톳 카~). 


***


 우리나라에 성 소수자가 몇 명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확히 조사된 바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저 전 인구의 최소 1%에서 최대 7%가 성 소수자일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한 반에 6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본다 (엄밀히 말하면 ‘초등학교’다). 어림잡아 남자아이 30명 중 1명 정도는 여성성이, 여자아이 30명 중 1명 정도는 남성성이 눈에 띄게 나타났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성 소수자가 그다지 드물지 않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신체, 즉 성기를 기준으로 남녀를 나누면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의 0.05%~1.7%는 간성인의 특징을 갖고 태어난다. 즉, 일종의 자웅동체다. 그런데 부모는 이를 기형이라고 생각해서 아주 어렸을 때 수술을 통해 성기 중 하나를 제거한다. 그래서 아기는 자신의 정신적 성별과 상관없이 육체적으로 남성 아니면 여성이 된다 (아이가 커서 잘못 찍었다고 부모 탓할 확률이 50%가 넘는다는...). 


 올림픽 때마다 이슈가 되는 성 호르몬 수치까지 따진다면, 성의 구분은 더욱더 모호해진다. 게다가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살펴보면 남녀의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마치 무지개 일곱 색깔의 경계처럼 그 구분선이 없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남자고 어디까지가 여자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주관식 문제보다 4지선다형 문제를, 4지선다형 문제보다 OX문제를 좋아하는 인간의 게으른 본성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남자와 여자로만 구분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 소수자를 정신 질환자로 취급한다. 심지어 전염력 있는 보균자처렴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종교는 신의 섭리에 위배된다며 배척하기도 한다. 신이 허락하지 않는 존재라면 아예 창조되지도 말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을 질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 소수자는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을까? 20억 년에 가까운 유성 생식의 진화 역사 속에, 생존에 불리하기 이를 데 없는 성 소수자는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 번식이 불가능한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넘겨주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대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소수자가 꽤 많이 존재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인간을 제외한 생물에게는 성 소수자란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생물들은 성 정체성을 굳이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인간이 생물들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라고 요구하면 그들은 ‘성 정체성? 그게 뭣이 중헌데?’라며 반박할 것이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흰동가리 아빠 멀린은 니모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런데 니모는 아들일까? 딸 일가? 정답은 아들이면서 또 딸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흰동가리는 모계 사회이다. 그래서 덩치가 큰 암컷이 우두머리다. 우두머리 암컷이 죽으면 수컷이 자연스럽게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생존을 이어 나간다. 


 하와이안 놀래기는 태어날 때 다 암컷이다. 그런데 무리 내 수컷이 죽으면 암컷들은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암컷들과 자신의 덩치를 비교한다. 그리고 무리 중 가장 덩치가 큰 암컷 개체가 자연스레 수컷으로 성전환한다. 이런 성전환과 자웅동체의 사례는 자연계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몇몇 인간들은 부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자연선택설에 따른 진화를 계속했다면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성 소수자는 소멸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 소수자는 이성과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녀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할 확률이 높다. 보수적인 문화권에서 성 소수자는 좋은 직업을 갖기도 어렵다. 생존에 불리한 환경 속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따라서 성 소수자의 유전 형질과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야 한다. 하지만 성 소수자가 전체 인구 중에 차지하는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공포증이나 알레르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즉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어떠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생존하고 싶다는 본성 때문이다. 그런 생존 본능은 정도와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


 흔히 성 소수자는 생존에 있어 여러모로 불리한 점만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의 낙오자로 힘겹게 사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하지만 성 소수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성 소수자에게도 생존에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성 소수자의 상당수는 출산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이성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다른 동성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수컷의 수가 적으면 암컷끼리, 암컷의 수가 적으면 수컷끼리 경쟁을 해야 한다.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과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한다 (물론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반대로 수컷을 두고 암컷끼리 다투는 다툼도 흔히 발견된다 (물론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의 남녀 비율은 1:1이라 이성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이 적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남녀의 성비율은 정확히 1:1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성비율은 주위의 환경에 따라 계속 변하게 되어 있다 (그럴싸해 보이는 음양의 조화 따위는 생존 앞에서 의미가 없다). 통계에 따르면 생존하기에 열악한 환경에서는 여아가,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남아가 태어나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카멜레온이 환경에 적합한 보호색을 띠는 것처럼, 인간도 그때그때 생존에 유리한 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1:1이란 비율을 무조건 고집했다면 인류는 개체수가 많지 않던 초창기에 멸종했을 것이다.


 설사 출생하는 남녀의 성비율이 1:1에 가깝다 할지라도 전쟁, 질병, 경제, 문화, 종교적 요인 등으로 인해 결혼 상대가 일시적으로 부족해질 수 있다. 이 경우 몇 안 되는 이성을 두고 동성끼리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은 이런 경쟁에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 또 그들이 경쟁 대열에서 빠져주기에 집단 내 경쟁 총량이 낮아지는 효과도 발생한다. 


 둘째, 때론 이성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위험한 경우도 있다. 겉보기에 멀쩡한 배우자가 알고 보니 난폭하고 위험한 존재로 밝혀질 수도 있다 (내 와이프를 얘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 허우대는 멀쩡한데 생산 능력이 형편없어 협업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성보다 동성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높은 정확도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성격이 안 좋고 능력도 별로인 친구가, 이쁘고 돈 많은 여자 친구와 사귀면 ‘그 여자 참 남자 보는 눈 없네’라고 말한다. 이는 이성을 제대로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차라리 신뢰할 수 있는 동성과 협업 관계를 맺는 것이 어쩌면 생존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셋째, 이성 배우자는 결혼이나 동거 중에도 쉴 새 없이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다(나 빼고…). 심지어 배우자와 공유하는 생존 자원을 모두 훔쳐 새로운 이성 연인을 찾아 도망가기도 한다. 반면 동성 배우자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성 소수자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성 소수자는 꽤 드물다. 게다가 서로 맘에 드는 상대를 찾을 확률은 더더욱 높지 않다. 그래서 동성 간 협업 관계는 이성 간 협업 관계보다 더 강력하고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넷째, 성 소수자 커플은 출산을 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큰 장점이 되고 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해 에너지나 자원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획득한 생존 자원은 온전히 자신들만을 위해 다 써도 된다. 당장의 생활이 더 윤택해진다. 어차피 결혼과 출산도 개체의 생존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조건 하에 이뤄진다. 따라서 이성 배우자나 자녀가 없어도 생존 유지가 가능하다면, 값비싼 대가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이성과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학 기술과 경제 시스템의 발달은 젊었을 때 모은 소득으로 노후까지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한마디로 자녀가 불필요해진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협업 파트너와의 동거는 여전히 생산성 향상과 생존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성 소수자라 할지라도 동성 연인과의 동거, 연애, 결혼은 하려 한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 대부분은 젊었을 때 고소득을 거둘 수 있는 선진국들이다). 이성과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족 등이 증가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그리 곱지 않다. 현재 성 소수자에게 보수적인 종교들이 널리 퍼져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언젠가 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다르듯, 역사 속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그때그때 달랐다. 그리스의 고대 도시국가 테베 Thebes에는 150쌍의 동성연애자로 구성된 전투 보병 부대 ‘신성대’가 있었다. 당시 보병 부대는 2인 1조가 되어 1명은 창을, 1명은 방패를 들고 전투대형을 이루어 싸웠다. 같은 조를 이룬 둘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리라 믿고 싸워야 했다. 그런데 동성연애자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래서 자신이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더라도 연인을 지켜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이는 막강한 전투력으로 발현되었다. 그래서 테베는 신성대의 병력 수 유지를 위해 동성연애를 장려할 정도였다. 


 한반도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동성연애에 대해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차별을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목종, 충선왕, 공민왕 등이 동성애자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아마 왼손잡이도 성 소수자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고대 인류나 현대 인류나 전체 인구의 약 90% 정도는 오른손잡이이고, 나머지 10% 정도는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는 소수이기에 생활하기에 여러모로 불편하다. 세상은 다수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를 우선적으로 배려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왼손잡이용 악기나 운동용품이 출시되기도 한다. 그래도 오른손잡이용과 비교하면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 출입문의 개폐도 오른손잡이가 편하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고깃집의 가위도 왼손잡이가 쓰면 잘 썰리지 않는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을 때도 불편하다. 스마트폰의 버튼 위치도 여전히 오른손잡이에게 맞춰져 있다. 이처럼 왼손잡이는 여러모로 생존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날에는 아이가 어렸을 때 왼손을 못쓰게 하여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바꾸기도 할 정도였다. 왼손잡이의 생활이 이처럼 불편하면 자연선택에 의해 왼손잡이는 도태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오른손잡이만 남아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왼손잡이의 비율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건 왜 그런 것일까? 


 옛날, 오른손잡이는 왼손에 방패를 들어 심장을 보호하고 오른손에 칼이나 창을 들어 적을 공격했다. 그런데 왼손잡이는 방패로 심장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적들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잡이의 공격만 예상하고 그에 맞춰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왼손잡이의 공격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 전장에서 왼손잡이 전사들은 나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야구, 복싱, 축구 등의 스포츠 분야에서 왼손잡이와 왼발잡이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왼손 투수다. 그런데 류현진은 원래 왼손잡이가 아니라 오른손잡이였다. 투구를 할 때는 왼손으로 던지지만, 타격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는 오른손을 쓴다. 그가 야구를 시작하던 열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왼손잡이용 야구 글러브를 사주면서 왼손잡이 투수가 되었다. 아버지는 야구에서 왼손잡이가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석기시대, 누군가 며칠 동안 돌을 열심히 갈아 돌도끼를 만들었다. 완성 후 오른손으로 쥐어 보니 영 불편해서 그냥 내다 버렸다. 그런데 지나가던 이가 이 돌도끼를 주웠다. 오른손으로 쥐어보니 영 불편했다. 하지만 왼손으로 잡아보니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왼손잡이와 함께 회식을 하면 무척이나 불편하다. 왼손잡이의 왼팔과 그의 왼편에 앉은 오른손잡이의 오른팔이 불판 위 한우 토시살을 두고 계속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왼손잡이는 항상 테이블의 맨 왼쪽 끝에 앉게 된다. 그럼 왼손잡이의 존재가 누구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왼손잡이의 오른편에 앉은 오른손잡이는 더 편하다. 왼손잡이가 한두 명 있음으로 해서 일행 전체의 편익이 더 증진된다. 이처럼 왼손잡이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 전체적으로도 유리한 점이 분명 존재한다. 


 과거 수백만 년을 살펴보면 성 소수자와 왼손잡이가 다수의 보통 사람들보다 생존에 오히려 유리했던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이를 눈여겨본 선조들은 그 정보를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잘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생존 비결의 하나로 알려주고자 유전자 속에 담았다. 그래서 성 소수자와 왼손잡이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생겨난다. 당연히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성 소수자와 왼손잡이는 조상이 물려준 부적 한 장씩 갖고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


 단지 지금은 쓸모가 그리 많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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